구민 게시판에서 봤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이상형에 대한 기준이 뚜렷했다.
'세상사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인 사람.'
나 자신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성격을 감추며 살아오다 보니, 늘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을 동경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꽤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과 결혼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던 날, 그는 여기저기에 말을 걸고, 뭐든지 알려고 하고, 지나치다 싶을 만큼 오지랖을 부렸다. 처음엔 사람 좋은 척 연기하는 건 아닐까 의심했지만, 몇 번 더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본래 타고나기를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그런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돌이 되기도 전부터 낯가림이 뭐냐는 듯 누구에게든 주저 없이 다가갔다.
사람의 타고난 성향이란, 참.
아이의 언어 퇴행을 바로잡고자 시작한 한 시간짜리 '걸어서 등하원'. 그 발걸음은 봄의 끝자락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 아이는 세 살을 맞았다.
아이의 말은 또래에 비하면 여전히 반년이상 더디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표현은 다양해지고 문장도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 서툴게나마 한국어와 일본어를 구분하게 되면서, 두 언어가 뒤섞인 '한본어'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주 가끔, 무심결에 꽤나 기묘한 말을 만들어 내뱉기는 하지만.
“죠죠야, 저거 예쁘지?”
“아니, 별로. 예쁘쟈나이!*”
*예쁘다+쟈나이(じゃない:아니다)
아이는 입이 트이자, 기다렸다는 듯 그동안 길에서 친해진 어르신들에게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맥락 없이 시작되는 날씨 이야기, 좋아하는 캐릭터, 싫어하는 음식…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튀어나오는 주제는 바로 '달' 이야기다.
도쿄는 도심 치고도 하늘이 맑은 편이라, 새벽녘까지 남아 있는 잔월(殘月)이 무척 자주 보인다. 아침부터 달이 희미한 빛을 뿜는 날이면, 아이는 귀신같이 찾아내어 하루 종일 달 이야기를 해 댔다.
"할머니! 달 봤어요? 제가 일등으로 찾았어요."
"우와, 그래?"
"밤에도 있고 아침에도 있어요. 달이 저를 좋아해서 따라오는 거예요."
"죠죠짱, 이제 말을 참 잘하네!"
동네 골목을 휘젓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아이에게 또 한 가지 루틴이 생겨났다. 바로, 동네 게시판 체크하기.
상점회, 자치회 같은 지역 주민 커뮤니티를 유독 중시하는 일본의 골목에는 게시판이 참 많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게시판이 나올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이 동네 소식은 내가 다 접수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몇 개월 전에는 말도 못 하면서 동네 어르신들과 시시덕거리더니, 이제는 읽을 수 있는 건 숫자뿐이면서 동네 게시판을 정독하는 척한다. 열정이 능력을 앞서는 것도 참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하원하던 길, 동네 마마토모를 만났다.
"도서관에서 그림책 읽기(お話会) 프로그램이 있던데, 죠죠짱도 가요?"
"그게 언제였죠?"
"엄마, 15일! 15일!"
"죠죠가 어떻게 알아? 어린이집에서 들었어?"
"거기서 봤지. 학교 앞에."
"학교 앞? 구민 게시판 말하는 거야?"
"응! 거기, 거기. 책(그림)이랑 15일."
"죠죠짱, 게시판도 볼 줄 알아요?
대단하다! 진짜 동네 소식통(情報通)이네."
사람의 타고난 성향이란, 참.
다행이다.
무작정 동네를 걸으며 보고, 느끼고, 말한 것들이, 타고난 동네 반장 성향인 아이의 구겨진 날개를 조금씩 펴 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