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이 선생님을 대하는 자세
왜 선생님이 부탁을 하면 사람들이 기꺼이 그 일을 하죠?
비결이 뭔지 알려주세요?
교장이 되어 아쉬운 점 하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생들과 하루 종일 수업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학생들처럼 키팅 선생님의 말을 잘 듣는 얌전한 학생들을 수업장면으로 상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어떤 주제에 대해 토론(토의)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교사의 생각과 주장을 강요하거나 설득하기보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그런 주장을 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 등을 되물어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너희들 주장에 확신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상대방을 적극 설득시켜야 한다'는 점도 강조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을 설득할 때 주장에 대한 논리적 이유(근거)를 제시하는 능력, 즉 이성적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logos’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설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감정을 잘 헤아리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pathos’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이유와 근거가 논리적으로 탄탄하더라도 서로 간 정서적 공감대가 없는 설득은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을 설득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행동을 하게 했더라도 진심이 아닌 가짜 행동일 가능성이 높으며, 아마 권위나 권력 등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설득의 과정에서 상대방의 감정과 정서를 잘 살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관계의 지속성 때문입니다.
건전한 조직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구성원을 설득시켜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을 얻었다 하더라도 구성원이 느낄 감정과 정서를 무시한 채 얻어낸 결과로는 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직급 체계가 단순한(교장-교감-교사) 학교 조직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설득 과정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은 설득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에너지를 쏟게 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논리적 이성만 내세운 설득은 오히려 쉬울 수 있습니다. 합당한 이유만 찾으면 되고 이를 무기로 상대방의 허점을 찾아 공격하고 주장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감정을 살핀다는 것은 나의 감정과 함께 상대의 감정을 살펴야 하고 때론 나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더 우선시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의 인품입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ethos’라 하였습니다). 아무리 탁월한 이성적 능력을 지녔고 상대방의 감정을 잘 살피는 사람일지라도 본인의 성품이 좋지 않다면 상대방을 설득시키기 힘듭니다. 아마 상대방의 감정을 살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성품도 좋겠지요.
그래서 설득시키는 사람(가르치는 사람)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은 '교행일치(敎行一致)'라고 생각합니다. 가르친 것과 본인의 행실은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행일치(言行一致)를 넘어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사람은 주장하는(가르치는) 바와 자신의 평소 행실에 어긋남이 없어야 진실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파커 파머(Parker J. Palmer)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스승의 힘은 교수방법과 인품이 일치할 때 가장 강력하게 발휘된다. 이를 위해 교사로서의 자기성품을 알아내야 한다.
"000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학습지의 정답만 알려주고 학생들에게 알아서 공부하라고 합니다. 당연히 선생님은 문제에 대한 설명이나 풀이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학부모 민원의 일부분입니다. 당연히 잘못됐지요.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의 이유를 학생의 입장에서 자세히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해당 선생님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생님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신의 수업방식의 잘못됨을 깨닫고 학생을 위해 개선하는 것이니까요. 빠른 해결책은 해당 선생님을 바로 불러 있는 사실 그대로를 알려주는 것이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 점심을 먹고 난 후 조용히 선생님을 불러 이야기하였습니다(저는 주로 안 좋은 말은 점심 이후에 합니다). '선생님의 요즘 학교 생활은 어떠신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교장에게 특별히 부탁할 것은 없는지?' 등을 먼저 물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말을 잘 안 하다가 나중에는 요즘 이러저러한 일들로 많이 힘들었다고 하면서 본인이 먼저 이런 일들 때문에 수업을 소홀히 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에게 딱 한 마디만 했습니다.
"선생님 요즘 많이 힘드셨겠어요. 잘 아시겠지만 우리 교사는 교실에서 학생과의 만남을 통해 전문성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존심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수업만큼은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적극 돕겠습니다."
얼마 전 학교 만족도 조사 서술형 문항에서 어떤 학부모님 의견입니다.
"우리 아이가 000 선생님 수업을 엄청 좋아합니다. 너무 재미있고 알기 쉽게 수업해주신다고 000 수업이 있는 날이면 집에서 신나게 이야기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