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의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교장으로서의 첫 출근을 앞두고 잠을 설쳤다. 아마도 '학교의 長'이라는 직책(職責)이 주는 무게감 때문일 것이다. 법에 명시된 교장의 책무는,
교장은 교무를 통할(統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 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한다(초중등교육법 제20조1항).
아무리 훌륭한 장인(maestro)이라도 처음부터 그 일에 통달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서투른 초보자의 길부터 시작한다. 나도 교장은 처음이고 이제 시작이다. 내가 생각하는 교장으로서의 역할과 리더십은 경험하지 않은 관념상의 다짐일 뿐이다.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멋진 양복이라도 내 몸에 맞아야 비로소 빛이 나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 9월 1일 취임식을 강당에서 대면으로 할까요? 아니면 TV 방송으로 할까요?"
며칠 후면 정식 출근할 학교의 교감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대체로 교장이 바뀌면 강당에서 전교생이 모여 취임식을 한다. 그런데 강당 또는 방송으로 양자택일을 묻는 의도는 아마도 TV 방송을 하면 좋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을 알았다.
"혹시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취임식을 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는지요?
나는 강당에서 취임식을 하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물었다.
"사실은 8월 말에 현 교장선생님 퇴임식을 하느라 수업 1시간을 뺐는데, 취임식 하기 위해 또 1시간을 빼면 수업결손이 생길 것 같아서요."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생각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바로 답변을 주지 않고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거창하게 취임식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나 그래도 공모교장으로 4년 동안 학교를 책임질 사람이 처음 왔는데 학생과 교직원의 얼굴을 직접 보고 인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주변의 친한 교장선생님 몇 분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자문을 구했다.
A 교장은 새로운 교장이 오면 당연히 학생, 선생님들과 직접 대면하여 취임식을 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반면 B 교장은 굳이 대면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어차피 학생들은 교장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TV 방송으로 나왔을 때 집중해서 본다는 것이었다. 또한 수능을 코 앞에 둔 고등학생이니 수업결손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나는 고민 끝에 취임식을 TV 방송으로 하자고 전했다. 그랬더니 교감 선생님은 좋아하면서 화면에 멋지게 나오도록 준비를 잘하겠다고 대답했다. 막상 9월 1일 취임식을 해보니 방송으로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교직원이 신임 교장은 권위적이거나 자기 고집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닌 상황에 따라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임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자리에 앉아 있을 시간도 없이 취임 첫날의 하루가 빨리 지나갔다. 오후가 되자 조금 한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그때서야 내가 4년을 근무할 교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교장실은 혼자 있기에 너무나 넓었다. 알아보니 원래 이 학교는 처음에 고등학교 건물이 아닌 전문대학 건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고등학교가 된 것이다. 그러니 지금 교장실은 전문대학의 총장이 지낼 곳인 것이다.
이 넓은 공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나이 지긋한 남자 선생님 두 분이 쇼핑백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학교 상조회 총무와 간사라고 소개하면서 상조회 규정상 교장 선생님이 바뀌면 선물을 주기로 돼 있다면서 와인 한 병이 든 쇼핑백을 건네주었다. 고맙게 받기는 했으나 그 상황이 매우 어색하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이런 선물까지 주시네요.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그런데 상조회 회장님은 안 오셨나 봐요?"
상조회 회장이 보이지 않자 나는 물었다. 사실 이 학교에 오면 첫날 해야 할 일 중에 경력이 제일 많은 선생님을 만나기로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상조회 회장은 나이와 경력이 제일 많은 선생님이었기 때문이다.
"네 상조회 회장은 지금 바빠서 저희 둘만 왔습니다."
"그럼 오늘 퇴근 전까지 상조회 회장님을 꼭 만나고 싶은데 대신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일부러 오늘 퇴근 전까지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런데, 퇴근 30분 전까지도 상조회 회장은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직접 전화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교장입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면 잠깐 뵙고 싶습니다만... 혹시 여의치 않으면 제가 올라가도 되고요."
나는 정중하게 전화를 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딱 봐도 우리 학교에서 제일 나이 많고 경력이 높은 선생님 같은 분이 교장실로 들어왔다. 나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내가 지금껏 만난 교장은 협의나 보고를 받을 때 상석에 앉았다. 하지만 나는 상석에 앉지 않고 상조회 회장과 마주 보며 앉았다. 나름 선배 교사에 대한 예우를 하기 위해서였다.
"大 선배님을 이렇게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취임 첫날에 그래도 상조회 회장이면서 우리 학교에서 제일 경력이 많으신 분께 인사드리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정중하고 깍듯이 선배 교사에 대한 예우를 해드리는 것에 사뭇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선배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교장입니다.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배님의 지혜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많이 협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상조회 회장은 처음엔 무뚝뚝한 표정이었으나 선배교사에 대한 예우의 언행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별말씀을 하십니다. 적극 돕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도 학교생활하면서 어려운 점 있으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photothink/796
브런치 작가분 중에 '마음씀'이란 분이 있다.
삶의 지혜를 매우 간결하고 산뜻한 어투와 필체로 전해주시는 분인데, 공교롭게도 내가 교장으로 첫 출근하기 전에 <리더라는 사람>이란 글을 남겼다.
마치 작가님이 교장으로 첫 출근하는 내게 주는 선물 같았다.
리더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리더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나침반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또 이런 재치 있는 말도 건네준다.
리더란 '니가 더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나의 성격과 삶의 경험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하자. 그건 바로 내가 지닌 나만의 결을 따르는 리더십이다.
교장의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교장선생님, 교장이 되니 좋은 점이 뭔지 궁금합니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앉은 젊은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글쎄요. 교장 된 지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런지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랬다. 교장을 몇 년 했다면 질문에 금방 답을 했을지 몰라도 초짜 교장 입장에서는 아직 좋은 점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선생님은 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장 하면 앉아서 결재와 결정만 하는 사람과 가끔 잡초나 뽑고 나무를 손질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왜 교장이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을까? (아직 좋은 점을 찾지 못했을까?)
고작 일주일 교장 직을 수행한 내가 느낀 바는 이것이다.
책임감
상상만 했던 교장의 책임감은 가히 측정 불가능한 무게라고 생각된다.
책임감은 타자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발생한다. 그래서 오직 생존의 욕구만 있는 유아에게는 책임감이 없다. 그러다가 성장하면서 부모형제라는 타자를 인식하면서 책임감이 싹 띄기 시작한다. 하지만 단순히 내 주변에 누군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책임이 생기지 않는다. 타자의 존재가 나에게 선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비로소 책임감이 생긴다. (모든 성인이 책임감이 있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높은 수준의 책임감은 불교의 연기(緣起)를 깨달을 때다. 왜냐하면 사람만을 타자라고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타자라고 인식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그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그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기 때문에 그것이 멸한다.”
아무튼,
교장이 되는 순간 학교에 존재하는 모든 구성원은 나와 관련 있는 타자들이며 서로가 서로에게로 선한 영향력을 주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무한 책임감이 생긴다. 왜냐하면 최종 결정권자는 교장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주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교장도 마찬가지다.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교장이 아니라 소통과 공감으로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조성하는 교장도 결국 그 문화를 만든 책임은 져야 한다.
불안감
다음은 불안감이다.
불안감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깨닫는 순간 발생하는 감정이다. 즉 알 수 없는 미래의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이 불안감은 책임감이 크면 클수록 나타나는 두려움이다. 교장으로서의 나는, 수많은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과 행복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이로 인한 미래의 불안감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혼자 있는 교장실에서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을 고민하고 있다.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변명(?)을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을 실천에 옮길 때는 '진정 그것이 학생을 위하는 것은지?'와 '자칫 교직원의 맹목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지?'를 잊지 말아야 함도 잘 알고 있다.
교장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감과 교장이니까 가져야 할 불안감은 아마도 이 직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함께 할 것이다. 다만 상상하건대, 교장의 경력이 쌓일수록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감정이 되지 아닐까? 이런 시기가 올 때 비로소 내 삶을 들여다보는 여유가 생길 것이고, 점심시간 내게 물었던 젊은 교사의 질문에 온전히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