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thos Nov 10. 2022

이렇게 학부모 요구를 무시해도 되는 건가요?

교장이 학부모 민원를 대하는 자세

"당신처럼 싫은 소리 못 하고 사람들의 모든 감정을 살피는 사람이 어떻게 교장 노릇을 할까?

그것도 대다수가 여자인 학교에서..."


불안해하는 아내와는 달리 나는 교장 노릇을 잘할 자신이 있었다.

수십만 명 교원의 교육행정을 지원하는 장학사로 그 많은 교육청 행사를 매끄럽게(?) 진행하였고, 다수의 민원들을 처리한 경험을 믿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부임한 교장 000입니다.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여기 계신 교직원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터질 듯한 심장을 부여잡고,

떨리는 손과 목소리를 감추고,

식상하고 뻔하고 영혼 없는 부임 인사를 마친 후 살포시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굳게 마음먹었지만, 익히 경험한 적 없는 무표정한 박수 소리는 상상 그 이상으로 잔인하게 들렸다.


40대 후반 교장이

대도시 소재 20년 이상 경력이 다수인 학교에서 100개의 눈(50명×2개)을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찼다.

이렇게 나의 초짜 교장 생존기는 시작됐다.


"교장 선생님 안녕하세요? 좋은 학교(?) 발령 난 거 축하드려요. 관내에서 학부모 민원이 제일 심한 학교인데, 어떻게 알고 적임자를 보냈을까요? 아무튼 잘 부탁드려요. 호호호~"


3월 첫날, 교육지원청 담당 장학사의 말이다.

그렇잖아도 첫날부터 교무부장이 민원을 많이 제기하는 학부모가 있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한 터였다.


드디어 3월 말 온라인 학부모 총회에서 기대했던(?) 학부모를 만났다. 총회가 끝날 무렵 학부모 한 분이 건의사항이 있다면서 발언하였다.


"... 그런데 교장선생님 작년부터 요구한 @@@@ 사안에 대해서는 왜 들어주지 않으신 거죠?"

"이렇게 학부모 요구를 무시해도 되는 건가요?"


스피커를 통해 불쑥 들어온 목소리는 온라인 총회를 침묵의 바다로 만들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학부모 총회에서 학부모는 주로 듣기만 하는 입장이었는데, 요즘 학부모는 MZ 세대 자녀들처럼 본인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한다)

침묵을 깨기 위해 교장인 내가 나섰다.

"학부모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학부모님의 요구를 무시했다고 생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다만 요구사항이 지금 당장 결정 내리기 어려운 내용 같습니다. 학교에서 관련된 분들과 충분히 협의한 후 최대한 빨리 답변드리겠습니다."

이후 담당자와 협의하여 그분께 전화로 말씀드렸다.

'관련 규정과 학교상황을 고려하여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줄 수 없지만 지금은 여기까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여건이 만들어지면 개선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학부모가 진정 바라는 것은 요구사항의 관철이 아니라

학부모의 요구를 무시하지 않고 귀담아 들어

진정 우리 학생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여 결정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날 이후 이 학부모는 인터넷 맘카페 등에 우리 학교가 너무 좋다고 적극 홍보하고 다니신다고 한다.  ^^















이전 07화 코로나 이후 첫 교사와 학부모 상견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