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mall talk May 21. 2020

9. 오찬다(Otxanda)

가브리엘을 낳은 바스크의 여인

가브리엘은 사랑의 지원군을 얻기 위해 아버지의 여인들, 앤과 클라라(자매)를 만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해명한다. 그 해명은 40여년 전 아버지 가브리엘이 단 한 번 만나 사랑을 나눈, 가브리엘의 어머니 될 사람인 한 바스크(Basque)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엄밀히 따지면 가브리엘은 바스크인 어머니를 가진, 바스크에서 태어난, 바스크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듣기로 바스크 사람들은 매우 독특한 지리에 단단히 기반한, 아주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가브리엘의 정체성, 가브리엘이 가진 범상치 않은 '사랑의 자질'의 근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스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


바스크에 대해서는 그 동안 들었거나 읽어본 것이 사실 거의 없었다. 바스크 지방의 음식과 요리에 대한 책을 한 번 본 적이 있을 뿐인데, 스페인 지방색이 강한 소박한 음식들이라는 것이 그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의 대략이었다. 만인의 친구 위키피디아를 시작으로 검색을 해보니 바스크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바스크는 낭만과 해학, 실용, 비극과 희극,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산(목동)이자 바다(어부)의 지역이며, 유럽이면서도 유럽이 아닌 지역이라는 것이었다. 자료들을 선별해야 했다. 나는 프랑스와의 연관성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스크 지도. https://picryl.com/media/the-basque-lands


바스크는 피레네 산맥을 기준으로 크게 남쪽의 스페인과 북쪽의 프랑스로 행정구역이 나뉜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된 구역도 한 곳 있는 것 같다.) 스페인령 바스크는 넓고 인구가 더 많은 만큼 자료들이 많고 복잡했지만 프랑스령 바스크의 자료들은 매우 적고 덜 복잡했다.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오래오래>는 프랑스어로 쓰인 책이며, 바스크에서는 멀리 떨어진 파리까지 와서 독립 요구 시위를 벌였다면 아무래도 가브리엘의 어머니 될 사람은 프랑스령의 바스크 사람일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나의 치밀하고 단순한 추론상, 스페인령 바스크에서 파리까지 오려면 일단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니 프랑스령일 경우보다는 확률이 떨어진다.) 더하여, 스페인령의 바스크 독립운동과 전쟁의 역사는 파시즘의 시대부터 지금까지도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는 자료들이 많았다. 나는 당장 그것들을 피할 수 있다는 것도 조금은 다행스러웠다. (나는 '지금의' 회피반응이 비겁하다기보다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아픈 것들을 '봐야 할 때'가 오면 볼 용기를 낼 것이다.)


Robert Laxalt라는 미국 네바다 주의 작가가 1960년~1961년, 1965~1966년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 부인 Joyce Laxalt(사진)와 함께 바스크와 바스크인에 대한 기록(글)을 남긴다. <The Land Of My Fathers: A Son's Return To The Basque Country>라는 책으로, 바스크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길지 않은 분량으로 모았다. 작가의 아버지는 Soule 지역(프랑스령 바스크)의 목동(shepherd)이었는데, 미국으로 양치기 일을 찾아 이민하였다고 했다. 덕분에 작가는 외부인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바스크인의 자격을 얻어 배타적인 바스크 내부의 거칠고 다양한 모습들을 관찰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Robert Laxalt의 책에 그려진 바스크는 아주 오래된 공동체의 맛이 강하게 났다. 예를 들어 바스크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구분이 확실하며, 시장(market)조차 남성과 여성의 참여시간과 시장의 성격이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 구분이 유연해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송아지를 팔러 나온 한 농사꾼과 매수자가 흥정을 하는데, 참여자격이 없는 농사꾼의 마누라가 그 옆에서 강렬한 눈빛으로(?) 남편을 조종하여 원하는 가격을 쟁취하는 이야기였다. 흥정이 끝나자 농사꾼은 마누라가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며 투덜거린다. 이에 마누라는 집안을 유지하기 위한 돈이 필요할 때에는 자존심이며 품위 따위는 끼어들 곳이 없으며, 가서 친구들이랑 술이나 한두잔 하고 나면 상처받은 자존심은 금방 치료될 것이라며 보내버린다. 멋진 마누라님. 바스크의 문화는 다소 거칠고 원형적(元型的, archetypal)이다. 하지만 바스크에는 오랜 세월 동안 다듬어진 굵직하고 분명한 삶의 규칙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규칙에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스크의 여성은 (남성만큼 혹은 그보다 더) 강력하다.


'Gernikako Arbola(Tree of Gernika)'라는, 바스크 고래(古來)의 자유(traditional freedom)를 상징하는 아주 오래된 떡갈나무가 있다고 한다. '아버지나무(the father tree)’는 14세기에 심어져 450여년을 살았으며, 현재는 5대째의 나무가 2015년에 다시 심어져 올해로 20세를 맞는다. Laxalt의 글에 따르면 이 게르니카의 나무는 '삶의 질서와 규칙, 강인함, 인내, 고정성(固定性, immoveability), 존엄, 전통에 대한 존중, 폭군에 대한 저항 같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한 종족으로서 살아남아 삶을 이어가기 위해 가장 필수적이고 중대한 요소들(the sources of inner renewal)'을 상징한다. 바스크를 통제하기 위한 시도는 역사적으로 무수히 많았으나 바스크 사람들은 때로는 유연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저항하여 침략자들에게 작지 않은 피해를 입히고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불행이 비극이 아니며 죽음이 삶의 일부인 사람들. 자유란 개인의 방종(放縱)이 아니라 전통과 공동체의 질서를 존중하는 기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깊게 뿌리내려 수백년을 민족과 함께 살아가는 떡갈나무를 통해 가슴에 새기는 사람들.

 

게르니카 나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ernikako_arbola.jpg


바스크 사람들이 참치떼를 따라 먼 아프리카 서쪽 연안까지 배를 타고 나가게 될 때, 그 출항의 장면이 인상깊다. 나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배들이 출항하는 날은 축포 속에서 흥분(excitement)과 축원(celebration)이 가득하다고 했다. 어부들의 부인과 아이들 뿐 아니라 검은 상복을 입은 나이든 미망인 할머니들도 모두 나와 사랑하는 이를 배웅한다. Laxalt는 덧붙이기를, 출항하는 날 모든 관심이 어부들에게 집중되는 것은 맞지만 마을의 진짜 영웅들(unsung heroes)은 어부들의 부인들이라고 하였다.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바스크 사람들의 마음은 이루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다원적이고 입체적이다. 이들은 (죽음과 비극까지도 포함한) 삶의 요소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그 이해와 함께 살아나가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이해는 순간의 깨달음 같은 것에 의해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나는 이들의 유서 깊은 낭만이 무한히 부러웠다.


바스크에서는 투쟁의 시기에 옳지 않은 무리에 협력한 사람들을 법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고립시켰다. 이와 관련된 한 일화는 바스크의 '실용(practicality)'과 '이상주의자(idealist)' 같은 구분이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르고 복잡하다는 느낌을 준다. 책과 글을 좋아하는, 이상주의자(비실용, 非實用)라는 평가를 받던 한 바스크 사람이 젊은 시절 (그러니까 시간으로부터 배운 것이 아직 적은 시절) 이상적인 것처럼 보였던 선전에 속아 독일군에 협력하였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여 퇴각할 때 이 사람은 독일까지 따라갔다가 바스크에 다시 돌아온다. 돌아온 이 사람은 면전에서 욕을 먹거나 돌을 맞지는 않으나 사회적으로는 철저히 고립된다. Laxalt는 이에 대해 바스크 사람들이 유난히 복수심이 강한 것은 아니지만, 쉽게 용서하는 사람들 또한 아니라고 평한다. 다수의 누군가에게 '실용'이란 독일군에게 협력하여 살아남는 것을 뜻할 수 있다. 또한 '이상주의자'란 독일군에게 끝까지 저항하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스크 사람들에게 '이상주의자'란 겉만 번드르르한 글을 현실로 착각하는 어리숙한 존재를 가리키며, '실용'이란 옳지 않은 일에 가담하여 살아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스크 사람들은 '실용적'으로 '낭만적'인 존재들이다. 나는 이렇게 철저한 낭만을 목격해 본 적이 없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바스크 사람들의 악(惡)은 어리숙함에서 기인할 뿐이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바스크의 폭력과 악(惡)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다.)


이렇게 강인하고 무서운(?) 바스크의 여인, 가브리엘의 어머니 될 사람은 어떻게 아버지 가브리엘과 첫 만남이자 유일한 만남에 사랑을 나누어 가브리엘을 낳게 되었을까? 바스크 사람들의 일탈 혹은 도덕적 유연성(?)을 가능하게 하는 자연요소 한 가지가 Laxalt의 책에서 확인된다. '마녀의 바람(witche's wind)'이라는 별명을 가진, 스페인과 아프리카로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불어오는 'sorgina'라는 남서풍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태백산맥을 넘어 부는 '양간지풍'이라는 남서풍이 비슷할 것 같다.) sorgina가 피레네를 넘어 바다에 닿으면 바다 움직임의 반대방향으로 파도를 쓸어주어 바다가 본래 이동하던 경로로 가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이 바람이 불면 바스크 소녀들이 일탈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고 하니, 바스크 사람들의 유전자에 깊이 심어져 있다는 강렬한 호기심과 열정에 피레네를 넘어온 sorgina가 불을 지펴 가브리엘이 태어나는 데 영향을 주었을지 한 번 쯤은 (재미삼아) 따져봄 직 하다.


아버지 가브리엘이 '가브리엘의 어머니가 되어가고 있는' 바스크의 처녀에게 가장 많은 점수를 딴 부분은 그녀가 앉거나 눕지 않고 계속 서 있기를 고집할 때 그녀에게 '당신이 옳아요. 독립 운동가를 바닥에 쓰러뜨릴 수는 없죠.'라며 그녀를 존중하여 서서 일을 치른 대목이었다. (가브리엘의 해명을 듣던 앤과 클라라도 이 대목에서 무릎을 탁 친다.) 이후 알리지도 않고 홀로 가브리엘을 낳아 기른 이 바스크 여인에게는 마음 속에서 빛나는 그 문장과 자신의 등 뒤로 헤엄치던 수족관의 커다란 거북이들에 대한 기억 외에는 더 필요한 것이 없었다. (중요한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가려 투쟁력을 집중할 줄 아는 것 또한 바스크 사람들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이다.) 아버지가 될 가브리엘이라는 처음 본 남자는 바스크 사람으로서 그녀의 정체성에 대해 어설피 아는 척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녀가 훗날(1940년 7월) 석연찮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가브리엘은 10대 후반, 막 성년이 될 나이 쯤으로 추정된다) 아버지 가브리엘은 처음 아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음에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아들을 '은밀하고 아버지답게' 보살폈다. 그리고 그 멋진 두 사람의 아들 가브리엘은 모든 면에서 바스크의 기질, 바스크의 낭만을 물려받았다.


가브리엘을 낳은 어머니, 바스크 여인의 이름은 오찬다(Otxanda or Ochanda)이다. 오찬다는 바스크 어원의 스페인 이름으로 암늑대(she-wolf)를 뜻한다.


나는 또 틀린 것 같다. 가브리엘의 어머니 오찬다는 이름을 보니 아무래도 프랑스령 바스크가 아니라 스페인령 바스크 출신인 것 같다.

이전 09화 8. 오래오래 vs 순간의 지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