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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르쥬 Apr 12. 2024

펫로스 증후군... 상실이라는 가장 잔인한 고통

별고나 2024년 4월 12일 금요일

막둥이 뀨가 고양이 별로 떠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오열하면서 보냈던 거 같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감기몸살과 지독한 목감기로 컨디션 난조를 겪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삶의 의미 중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상실감과 고양이 집사 이전에 보호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심신이 많이 지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펫로스 증후군을 처음 들었을 때는 미래의 일이라는 생각에 막연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현실에서 몸소 체험하게 되니 좀 더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게 되었다. 반려동물에게 막대한 유산을 안겨주는 경우뿐만 아니라 냉동인간과 함께 급속 냉각되어 보관 중인 반려동물이 있다는 것도 이제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2024년 3월 9일 오후 4시... 그때는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어떻게든 뀨를 살리고 싶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집 안에는 나와 고양이 둘만 있었는데 다른 고양이들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지 조용하게 쉬고 있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엄마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내가 거주하고 있는 집과 본가를 오가면서 뀨와 많은 추억과 교감을 갖고 있었던 상태였고 나머지 지인은 어렸을 때 모습을 기억하거나 종종 집에 오면서 얼굴을 봤던 기억이 있었고 고양이 집사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전화가 한 번의 통화만에 연결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그 시간을 보낼 자신이 없었다. 생애 처음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댈 수 있는 언덕이 필요했다. 엄마는 뀨의 상태를 물어보면서 계속 몸을 주물러 봐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셨다. 겉으로 볼 때 너무나도 건강해 보였던 아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을듯하다. 이미 늦었다는 걸 알았지만 엄마의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마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 뀨가 눈을 뜨고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힘차게 안기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평소 가던 동물병원에 연락해서 왜 이렇게 되었는지 물어보라고 얘기했는데 좌초지종을 따진다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왜 이와 같은 황망스러운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부검을 하는 건 결국 두 번 죽이는 일이었고 내 책임만 더욱 명확해질 것 같았다.


나머지 지인들에게도 황망스럽게 뀨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것에 대해서 얘기를 했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와 더불어 장례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했는데 경기도 외곽 쪽 거주한 지인은 산에 매장을 했다고 말했다. 종량제 봉투에 넣거나 매장을 하는 방식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 강아지 둘을 키웠던 또 다른 지인은 반려동물 장례업체를 통해 화장을 했다고 했는데 몇 군데 연락처를 받았다. 서울에서는 이와 같은 시설이 없기 때문에 파주, 포천과 같은 경기도 외곽 지역으로 가서 지정된 곳에서 화장을 해야 했다. 염습과 추모실 그리고 화장이 기본인데 여기에 오동나무관, 수의에 따로 추가 비용이 붙는 방식이었다. 스톤, 루세떼와 같은 화장 후 반려동물의 유골을 추모 소장품으로 만드는 서비스도 있었다. 또한 차량 픽업도 가능했는데 도저히 그곳까지 맨 정신으로 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용하기로 했다.

대략적인 절차를 확인한 후 엄마한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화장하고 보내는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사실 본가와 서울 간의 거리가 차량으로 5시간 정도 되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선약을 취소하고 다음날 첫차로 올라오겠다고 해주셨다. 너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한줄기 희망이 보였는데 마치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전화를 모두 끝낸 후 장례업체와 반려동물병원을 통해 들었던 내용을 토대로 행동을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나머지 고양이들이 놀라지 않도록 부드러운 타월로 뀨의 몸을 감쌌다. 아직까지 온기가 느껴졌던지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다. "뀨가 정말 죽었구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리고 부패를 최대한 막기 위해 500ml짜리 물병을 냉동고에 넣은 후 차가워진 상태로 타월 위에 빼곡히 놓았다. 마치 돌무덤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고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계속 오열했다. 3~4시간 정도의 간격으로 500ml 물병을 2교대로 교체하면서 체온을 차갑게 유지했는데 따뜻하고 말랑했던 뀨의 촉감이 차갑고 딱딱해진 게 느껴졌다. 불과 반나절만에 생사의 갈림길이 오간 걸 보면서 참으로 삶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달리 작은 방의 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호기심 많은 삐쥬와 뚱이는 방에 들어왔고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올라왔다. 하지만 뀨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올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같은 침대에 고양이 3남매와 함께 잠을 자고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기관지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에 1년 전에 이사를 온 후 문을 닫고 고양이들과 각방을 썼었다. 고양이 집사의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에 3남매들은 방문을 긁고 울면서 투정 부렸지만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달라진 상황에 적응했다. 만약 각방을 쓰지 않고 같이 동침을 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설령 운명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이렇게 한스럽지 않았을 텐데 과거의 모든 선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눈을 감으니 잠이 찾아왔지만 그 순간은 오래가진 않았다.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 정도 유지가 되었는데 나머지 고양이들도 갑자기 나를 떠날지 모른다는 공포로 인해 계속 상태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뀨가 죽기 전에 나한테 하지 못한 말이 있을까 봐 듣기 위해 문을 열어놓았지만 찾아 오진 않았다.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매일 애타게 뀨를 그리워하고 있지만 단 한 번도 꿈에 나타난 적이 없다. 필자 같은 경우 꿈을 남들보다 상당히 자주 꾸는 편이라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뀨가 꿈에서라도 만나는 것을 원치 않는 게 아닐까... 몸 상태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 원망이 너무 커서 피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너무 슬퍼할 것 같아서 배려하는 차원에서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을듯하다. 어차피 의미부여일 뿐이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고양이 뀨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그리고 상실이라는 가장 잔인한 고통은 결국 연이 닿은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나 스스로 납득되지 않은 황망한 죽음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인데 거짓된 위안과 자기 합리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펫로스 증후군과 같은 증상을 이겨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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