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고나 2024년 4월 5일 금요일
막둥이 뀨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다. 일단 동고동락을 하고 있는 고양이 3남매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다. 2018년생으로 2015년생인 누나들에 비해 3살 어렸는데 인간 나이로 치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라고 보면 된다. 또한 워낙 활동적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사교적이고 원기왕성했는데 영역동물인 고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붙임성이 좋았다. 이미 터줏대감이 되어 버린 뚱이와 삐쥬는 낯선 존재를 경계하면서 하악질을 했지만 뀨는 그런 게 아예 없었다. 꼬리를 흔들면서 누나들을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누나들을 이를 도저히 받아줄 수 없었고 작고 약했던 뀨는 서열 싸움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합사 적응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 달 정도는 다른 공간에서 뀨를 케어했다. 다른 고양이들은 거실에, 뀨는 내 방에 있었는데 내 침대 위에서 하루 절반 넘게 잠을 자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한 때는 침대 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누운 적이 있는데 백설기와도 같았던 뀨가 흰색 이불 위에 누워 있어 덮친 꼴이 된 적이 있다. 난청이었던 뀨는 엄청나게 놀랐고 나 또한 혹시나 다친 적이 없는지 몸을 만져줬던 적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즉시 흰색 이불을 치우고 색이 있는 이불로 교체했다.
뀨와 함께한 6년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뀨가 아직 한 살이 되기 전에 가슴을 철컹하게 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바로 의자에 꼬리 같은 부분이 밟혔던 것이다. 유독 나를 좋아했던 탓인지 뀨는 항상 내 주변에 있으려고 하는 성향이 강했다. 본업을 위해 컴퓨터에 앉아서 작업을 해야 했는데 누적된 피로를 덜어내기 위해 자세를 고쳐 앉는다고 의자를 살짝 뒤로 뺐다. 그 순간 뭔가 걸렸는데 동시에 뀨가 괴성을 지르면서 도망갔다. 너무 놀라서 뀨가 앉아 있던 자리를 보니 털이 한뭉큼 빠져 있었다. 나의 체중이 실린 채로 바퀴에 밟혔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꼬리를 만져보려고 했는데 하악질을 하면서 심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렇게 앙칼진 모습은 처음 봤던 것 같다. 아마 뀨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아빠가 돌변해 엄청난 고통을 주는 체벌을 준 것처럼 느껴졌지 않았을까... 골절이 의심되는 만큼 바로 동물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봤는데 다행스럽게 그러한 증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선천적인 장애로 인해 유독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기 때문에 나한테 뀨는 아픈손가락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에게는 2가지의 루틴이 생겼다. 첫 번째는 작업할 때 의자의 바퀴를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마치 고정된 의자인 것처럼 사용한다. 두 번째는 일어나기 전에 고양이가 혹시 붙어 있는지 확인한다. 다행스럽게도 뀨도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너무 가깝게 붙어 있지 않아서 그와 같은 일이 재발하진 않았다. 하지만 난청이다 보니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꼬리를 발에 밟히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아무래도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어머니는 그런 부분까지 주의하면서 이동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좀 조심해"라고 투덜투덜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처럼 뀨는 일상생활을 하기에 불편함이 많았던 난청 고양이였지만 너무 씩씩하게 자라줬고 나뿐만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애정도 유독 각별했었다. 하지만 몸이 점점 커지면서 누나들과의 서열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고 워낙 힘이 좋고 운동신경까지 타고났던 뀨였기 때문에 일인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노르웨이 숲 특유의 갈기 털이 더해지면서 이제 예전의 꼬물이 모습과는 상당히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때때로 뀨가 마치 폭군처럼 뚱이가 자고 있는 자리를 빼앗기도 했는데 도가 너무 지나쳐서 심하게 혼내기도 했다. 이렇듯 외관으로 보기에는 너무 건강해 보였고 20살까지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건 나의 허무맹랑한 망상이었고 전형적인 헛똑똑이의 궤변이나 다름없었다. 초심을 잃고 건강검진과 같은 케어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천추의 한으로 남게 되었는데 다 이게 모두 자업자득이지 않을까...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 그저 가볍게 들었던 거 같다. 그 존재가 이 세상에 없을 때는 정작 해 주고 싶어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는 부모님과 같은 혈연으로 맺어진 존재뿐만 아니라 강아지,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비록 반려동물의 죽음에는 경조사가 허락되지 않지만 비교하고 조건을 내세우는 인간과 달리 반려동물은 무조건적인 애정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더 깊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는 인간일지 몰라도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바로 나의 반려동물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 지내면서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MBTI로 치면 원래 성격은 INTJ인데 이제는 INFJ로 나오고 있는데 그만큼 감정 표현이 풍부해진 것 같다. 고양이들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유독 감정 표현이 적극적이었던 뀨였기 때문에 고양이들도 나와 함께 있는 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는 게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거 같다. 한편으로는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게 최고의 행복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이와 같은 모순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탄스럽다. 막둥이 고양이 뀨가 응당 누려야 할 미래를 내가 빼앗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정도이다. 이와 같은 죄책감에서 과연 내가 벗어날 수 있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열하게 되는데 과연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