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고나 2024년 7월 12일 금요일
나는 '고양이 집사'라는 말은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수평적인 관계로 보는 고양이를 두고 과연 상하관계를 연상시키는 표현을 쓰는 게 과연 적절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도도한 고양이를 애지중지하면서 모시는듯한 모습을 담은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해도 고양이와 동고동락한 경험을 미루어 볼 때 가족이나 동료라는 인식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대장 고양이라는 표현이 좀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여기서 대장은 상명하복과 같은 위계질서로 서열화된 표현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의기투합한 리더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루피와 같은 존재라고 할까... 배의 선장이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동료들과 의기투합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낭만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들은 과연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어떤 고양이는 엄마 고양이로, 어떤 고양이는 동료로 인식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격성은 없지만 밥을 주고 덩치만 큰 고양이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분명한 건 집고양이와 길고양이에게 있어 대장 고양이의 판단 기준은 많이 다를 것이라는 것이다. 길고양이들에게 있어 대장 고양이는 다른 고양이보다 서열이 높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집고양이라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만큼 꾹꾹이와 골골 송 그리고 배를 까면서 느긋하게 있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나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고양이들은 어렸을 때 서로 장난치면서 놀던 모습과 달리 성묘가 된 이후에는 유독 심하게 신경전을 펼쳤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덩치가 상대적으로 작고 운동성이 떨어지는 스코티시폴드 뚱이가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었다.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여동생 삐쥬에게도 시달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고양이 별로 간 뀨에게도 심각할 정도로 괴롭힘을 당했다. 뚱이를 좋아했던 것인지 아니면 괴롭히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곤히 자고 있는 누나를 깨우고 결국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얄미울 지경이었다. 이는 명백한 일방적인 괴롭힘이었기에 뚱이가 하악질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걸 목격했다. 결국 중간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고 적당하게 타이르거나 아니면 훈육을 할 정도로 중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많은 추억들이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 고양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고양이 집사가 아닌 인간의 탈을 쓴 대장 고양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말이다. 바닥에 누워 있으면 고양이 삼 남매가 내 주변에 모여서 각양각색의 자세로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내가 고양이인지, 고양이가 나인지 모를 정도였는데 장자가 말했던 호접지몽의 경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고양이 삼 남매들은 나의 일상 속에 스며든 정도가 아니라 나의 분신이자 상징과도 같은 같은 페르소나였다. 물론 필멸의 존재인 만큼 이러한 관계가 영원히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막둥이 뀨는 최소 10년은 더 나와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둥이 고양이 뀨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모습이 선하다. 처음 나와 만났을 때부터 내 품에 쏙 안기던 고양이, 시도 때로 없이 나에게 와서 힘차게 꾹꾹이를 하면서 골골송을 부르던 뀨를 보게 되면 자신의 생명을 맡겨도 되는 보호자로 생각했을 것 같다. 오롯이 나의 부주의와 오판으로 인해 막둥이 고양이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으니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온 세상이 무너지는듯한 느낌을 받는 건 당연하다. 나는 충분히 기회가 있었음에도 소중한 가족이자 동료를 지키지 못했다. 틸틸과 미틸이 그렇게 찾던 파랑새가 정작 집안의 새장 안에 있었던 것처럼 나한테 일상의 행복을 줬던 하얀 나비를 지키지 못했다. 고양이 집사로도 대장 고양이로도 자격이 없는 나 자신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