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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르쥬 Jul 26. 2024

별이 된 별난 고양이... 뀨는 이런 아이였습니다

별고나 2024년 7월 26일 금요일

2018년 4월 뀨를 처음 본 날 찍었던 사진이다. 태어난 지 2달이 넘었는데도 유독 몸이 작아 그야말로 꼬물이었다. 성인 주먹만 했을 정도였는데 하얀 털에 파란 눈 그리고 머리에 살짝 난 검은색 털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실 그것보다 놀라웠던 것은 친화력 만렙이라는 것이다. 처음 본 나에게 몸을 안기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별난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뀨라는 이름을 붙여주기 전까지 별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줬는데 이는 '별나다'는 단어에서 따온 것이다.

뀨는 직설적으로 애정을 표현해 준 아이였다. 시도 때도 없이 핥아줬는데 나뿐만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들의 손도 예외가 없었다. 나한테는 정말 무한한 애정을 줬다고 생각한다. 손가락, 발가락, 코, 입술 등 부위를 가리지 않고 마구마구 혀로 핥아줬다. 고양이 혀는 가시가 있어서 따끔한 편인데 그나마 먼치킨과 노르웨이숲 품종으로 태어난 덕분인지 그렇게 따갑지는 않았다. 문제는 깨무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같이 깨물곤 했다. 말 못 하는 짐승인 고양이였지만 어렵지 않게 버릇을 고칠 수 있었다.

뀨는 내 몸 위에서 곤히 잠을 자던 아이였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인터넷 공유기 위에서 잠을 잤다. 오기 전에 목욕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몸을 덜덜 떨었는데 작고 작은 몸에 공유기가 마치 온돌방 같은 역할을 해줬던 것 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지라 어렸을 때는 같은 침대에서 자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내 가슴 위에 올라오면 축 늘어지면서 잠을 잤다. 과연 고양이의 탈을 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뀨가 정말 별난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고양이 집사가 시도했던 다양한 동작들을 허용해 줬다는 것이다. 어깨 위에 올렸을 때도 거부감 없이 소화해 줬고 심지어 집사의 팔베개에도 머리를 편하게 올렸다. 사냥 본능이 있는 고양이를 생각하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내 인생에 있어서 나를 이렇게까지 믿어주고 사랑해 줬던 존재는 없었다. 나의 MBTI는 원래 INTJ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INFJ로 바뀌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해줬던 것은 고양이였고 그중에서 뀨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했다고 본다.

뀨는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아이였다. 유독 나와 가까이 붙어 있으려고 했다. 뀨가 아주 어렸을 때 의자 뒤에 바짝 붙어 있었는데 그걸 몰랐던 나는 뒤로 움직이다가 뀨의 날카로운 비명을 듣게 되었다. 꼬리 같은 곳에 의자 바퀴가 지나간 거 같은데 어디인지 모르니 바로 동물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골절과 같은 이상은 없었지만 그때서야 뀨의 귀가 안 들린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뀨가 항상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아빠가 언제 부를지 모르기 때문에 그걸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항상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막무가내와 같던 별난 고양이도 나이를 먹으면서 눈치라는 게 생긴듯하다. 의자에 앉아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가슴 위에 올라오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았기에 그때는 나름대로 자제를 했다. 일이 끝날 때 자세가 바뀌는 걸 알았던 뀨는 어김없이 가슴 위에 올라와서 꾹꾹이를 하거나 편안하게 몸을 맡겼다. 그런데 뀨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일주일 전쯤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올라와서 애정 표현을 했다. 그 당시는 그냥 변덕이라고 생각했지만 유달리 샘이 많고 질투가 심했던 뀨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케어도 못한 것도 후회되지만 죽기 전의 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도 한스러울 정도로 미안해진다.

뀨는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아이였다. 작은 몸과 달리 먹성이 유독 좋았다. 거침없이 고양이 사료를 먹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 살 거라는 생각을 했다. 최소 15년, 최대 20년은 살지 않을까... 이런 얘기를 엄마에게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와서 보면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하루 전까지도 사료와 물을 너무나도 잘 먹었던 걸 보면서 그런 판단을 한 것인데 그건 뀨가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3살 더 많은 삐쥬와 뚱이의 남은 시간보다 뀨의 시간이 훨씬 더 길다고 생각했다. 뀨가 성묘가 된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가장 뒤로 밀렸다. 지금에서야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지만 뀨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별난 고양이가 참으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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