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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Oct 15. 2023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

이제는 오해하면 그대로 둔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시간은 정말 빨랐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파도에 휩쓸려 그 물결 안에서 나도 같이 그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손가락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간호사를 하고 있어도, 하지 않음에도 그 연말의 진한 아쉬움과 새해에 대한 기대감은 부풀어서 구름 위를 걷는 듯 붕 떠있었다.


그리고 그 구름 위를 걸으며 새해 관련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연례행사처럼 자리 잡은 습관 하나는 되든 안 되든 작성부터 하는 거였다. 매년 다 쓸 거라는 다짐으로 다이어리를 작성하는 것처럼.


1. 다이어트 (매번.. 왜 다이어트지..)
2. 여행 가기 (빠지지 않는 소재)..
책 읽기. (올해는 꼭 읽고 만다.)





어쩜. 익숙했다.

버킷리스트는 절대적으로 그때뿐이라는 걸. 새해에는 꼭 반드시 이룰 거라는 다짐은 어디 갔는지 1월은 연말에 못 봤던 사람들을 만나는 걸로 가득 채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점점 허해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사람으로 채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서 채워졌던 감정은 정말 그때뿐이었다. 그때만 즐겁고 그 후에는 더 공허해졌다.


깨진 독에 물 붓는 심정이 이런 걸까. 감정을 채울수록 빠져나가는 것들이 더 크게 느껴졌다. 깨진 부분이 더 커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1월이 다 끝나기 전 어느 날, 정말 충동적으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SNS에서 문장이 좋아서 샀다가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그대로 책장에 넣었던 책이었다. 읽기 위해 하는 이 모든 것이 어쩌면 버킷리스트를 위한 충동이었지만, 속으로는 그런 나에게 다짐 아닌 다짐을 불어넣듯 진짜 한 권은 제발 읽자-라고 속삭였다.


그렇게 충동이었던 시작이, 정말 내 인생에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분명 무리하게 읽으면 쉽게 지쳐버릴 것도, 흥미를 잃어서 안 읽을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에 몇 페이지만 읽기로 다짐했다.


10분만 읽자. 무조건 가볍게 읽어야지.

그런데, 그랬던 마음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오해하면 그대로 둔다.
예전엔 너무 억울해서 하나씩 따지고 바로잡기 바빴다. 굉장히 피곤한 소모성 일더라.
더는 그러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나부터 믿고, 나에게 제일 먼저 확인하는 진짜 내 사람이 있음을 안 이후로는.  가만 보니, 그런 보잘것없는 인연이나 멋대로 오해하고 마음대로 떠들고 다니더군. 그런 사람은 부디 오해한 채 그대로 멀리 사라져 주길.

- 이제는 오해하면 그대로 둔다 / 김다슬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건 내 얘기였다. 모든 사람에게 오해받고 싶지 않았다. 잘 지내고 싶어서, 혹시라도 나를 안 좋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으면 해명하고 싶었다.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는 다 잘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했는데, 그게 오히려 아니었다는 걸 그 당시에는 몰랐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에서 그런 내 마음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모든 인연이 다 옳은 인연은 아니었음을. 진짜 내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을. 그런 인연은 서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 흐려졌기 때문에, 그리고 좋은 사람들은 만났기 때문에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괜찮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완전하게 괜찮았던 것이 아니었음을. 깨진 독사이로 흘러나가던 것을 막고 새살이 차오르는 것처럼 들어와 채워주기 시작했다. 공허해지는 마음이 채워지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무뎌진 게 아니라 내가 꺼내기 싫어서 묻어뒀다는 걸 알려주는 그 단어 하나하나가 모인 문장으로, 내 지나갔던 시간들이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


책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이 있던 사람도, 누구보다 잘 알아서 책을 읽으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내 얘기를 만나게 돼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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