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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Oct 17. 2023

다독의 굴레에 갇혀버렸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문장에서 위로를 받게 된 순간, 생각하게 된 것은 단 하나였다. 이 마음을 오래오래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그래서 그때부터 책을 읽는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다. 1월 1권을 시작으로 2월에는 2권, 3월에는 13권을 읽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양으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분명 시작은 꾸준히 그 마음을 이어나가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책으로 마음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 목표였는데, 어느새 그 목표가 변질이 되어버렸다.


거기서부터 다시 또 헤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났다. 공허했던 마음에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이었고, 그 느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책 한 권의 시작이 한 달에 20권으로 늘어났을 때는 그 자체만으로 뿌듯했다.


다독을 하는 사람들의 한 달의 권 수를 보고, 그만큼을 채우기 위해 읽고 더 읽었다. 새벽까지 책을 읽을 때도 있었다. 심지어 서평단을 신청하면서 책이 협찬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무언가를 이뤄나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책이 늘어날수록 책을 위한 시간으로 모든 게 채워지면서, 읽을수록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 착각인 줄도 모르고.





어느 순간. 주위에서 다독하는 사람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종종 책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읽었던 책이 왜 좋았는지, 왜 추천해주고 싶은지, 혹시 추천해주고 싶은 다른 책은 없는지 등 질문이 늘어날수록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어졌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하며 채웠을 뿐, 정작 내 속을 채운 것은 제일 처음 읽었던 책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양을 채우기 위한 독서를 했을 뿐, 실제로는 내 안에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다독을 했으니 이 책은 읽었지? 하는 시선들과 질문들까지 생겨나면서 내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왜 읽고 싶은지, 이 안에서 무엇을 찾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춰 또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부족한 부분을 보이는 게 싫어서.




그런데, 그 시간들이 쌓여가기 시작하면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닌, 정말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의한 책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시간들이 나한테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책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줄이면 그전만큼 읽지 못한다고 얘기할 거란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 아무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을 읽고 있는 그 시간들을 칭찬해 줄 뿐. 내가 읽은 권 수에 대해서는 아무도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나 혼자 스스로 다독이라는 굴레에 들어가 갇혀버렸던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로 해놓고, 내가 스스로 채우려고 했던 마음을 또 다른 사람에게서 가져오려고 했던 것이다.



또다시 흔들리고 있던 그 순간, 그렇게 다른 전환기를 맞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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