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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Sep 26. 2023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 생겼다

어색함이 지속된 날들


간호사 평생 할 수 있겠어?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지만, 답은 늘 같았다. 다른 일이 하고 싶긴 한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간호사 면허증 말고는 뭐가 없는걸?.


취업을 준비하던 친구들처럼 다양한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았었다. 그런데, 그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서는 발목을 잡았다. 장점이라고 여겼던 것이 다른 것을 하기에는 제한해 버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던 것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재테크일까? 그런데 재테크도 자신 없었다. 경제에 ‘경’도 모르고, 돈은 버는 대로 쓰고 있기 바빴기 때문에 더더욱.


더 이상 검색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내가 하고 있던 근무로 눈을 돌려야 했다.




다른 것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제한하던 내가 간호사를 그만두게 됐다. 돌아오지 않는 컨디션이 한몫을 했지만, 홀가분한 마음과는 별개로 불안한 마음도 존재했다.


간호사만 해왔고, 이 일이 익숙해져 있는 내가 이제 와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괜찮을까? 사무직으로 첫 출근을 하면서, 새로운 일을 하게 되면서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렇다고 다시 간호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해야 할까. 평상시에 입었던 스타일의 옷이 아니라서 적응을 못했을 뿐이었는지, 그새 새로운 스타일의 옷도 제법 익숙하게 꺼내 입게 됐다.



천천히 친해지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옷 말고도 또 다른 어색한 스타일이 한 가지 더 생겼다. 바로 시간의 자유였다. 늘 3교대로 살아왔던 삶이라 주말과 공휴일의 존재가 없었다. 주말과 공휴일이라니, 그날은 그저 다른 날들에 비해 평탄한 근무환경을 보낼 수 있는 날일 뿐이었다.


그런데 나에게도 주말과 공휴일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퇴근하면 자기 전까지 내가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까지 생겼다.


처음에는 이 시간들이 너무 어색했다. 쉬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찾아올 만큼 매번 쉬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았다. 이 시간들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 새로운 옷 스타일이었다.  


가족과 저녁식사를 같이하는 날들이 계속된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어색해서 기분이 묘했다. 어쩌다 한 번 같이 먹을 날들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오후 근무가 더 많아지면서 그런 날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야간 근무를 하느라 저녁을 먹다가 아쉬운 마음을 내려놓고 출근을 하거나.  그런데, 매일 저녁 식사를 같이 한다고? 묘하게만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근무표가 잘 못 된 것만 같고, 오전에 출근을 안 하면 오후에 출근을 해야 할 것 같고, 그것도 아니면 밤에 출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익숙해진 시간들만큼 이 시간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색하기만 했으니까.



주말에는 여행을 갔다 왔다


그렇지만 사람은 역시 쌓이면 변하게 되어있는지, 이 생활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어서 그랬는지 처음에만 어색했을 뿐, 이 시간들이 지나면서는 이 패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언제 3교대를 한 적이 있었냐는 듯 낮에 활동을 하고 밤에 잤다. 그제야 내가 못 했던 것들을 채우듯 자유로워진 시간을 꽉꽉 채우기 시작했다.


평상시 만나기 어려웠던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기도 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근교로 나가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여행을 가기도 했다.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가는 일도, 다른 사람들이 퇴근하고 집으로 올 때 반대방향으로 출근을 하는 일도 없었다. 진짜 자유였다.


이런 게 정말 워라밸이구나. 마음이 평안함으로 가득 채워지면서 매일매일이 행복했다. 월요병이라고 커피수혈을 해야 한다고 일요일 밤 전날이 우울해져보기도 하고 금요일 출근에는 다음날부터 주말이라며 마음속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어느 순간부터 꽉 차 있던 행복의 순간들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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