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의 본질 12화

작가와 삶의 이유

직업으로 생각하는 일의 본질

by 피라

현존인물 중 프랑스인에게 가장 존경받았던 아베 피에르는 1912년에 태어나 2007년에 죽었다. 아베 피에르는 프랑스말로 피에르 신부라는 뜻이다. 아베 피에르는 1954년에 노숙자들의 숙소를 짓기 위해 엠마우스 재단을 만들었고, 평생 종교를 초월해 사회적 약자를 돕는 사회운동에 삶을 바쳤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어느 날 피에르는 죽으려는 한 남자 이야기를 들었다. 자살을 시도했고, 또다시 자살할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피에르는 그에게 달려갔다. 남자의 이름은 조르주였다. 왜 죽으려 하냐는 물음에 조르주는 죽어야 할 이유를 말한다. 조르주의 어머니는 소박한 가정부였고, 그녀가 시중들던 노인이 그녀에게 큰 유산을 남겼다. 가난한 여인이 큰 부자가 되자 양심 없는 한 경찰관이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수작을 부려 결혼했고 둘 사이에서 조르주가 태어났다. 조르주의 아버지는 돈을 흥청망청 써대며 방탕한 생활만 했다. 조르주에게 가정은 없었고 언제나 기숙학교에서 생활했다. 남편 때문에 삶이 엉망이 된 엄마는 조르주에게 아버지의 권총이 있는 곳을 알려주며 언젠가는 아버지를 죽여 복수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조르주는 20살에 사랑하는 여자와 약혼을 했다. 조르주의 아이까지 가진 약혼녀는 어느 날 느닷없이 파혼편지를 보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의 애인이 재산을 노리고 자신의 친척과 조르주를 결혼시키기 위해 가짜편지를 쓴 것이었다. 분노한 조르주는 권총을 집어 들고 자신과 약혼녀를 갈라놓은 여자를 죽이려 들었다. 자동권총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달려오는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고, 조르주는 부친살해의 죄명으로 수감되었다. 교도소에서 20년을 보내는 동안 유일한 삶의 이유는 사랑하는 약혼녀와 자신의 딸과 함께 사는 것이었다. 출감 후 그의 약혼녀는 몇 달 전부터 조르주의 감방동료와 함께 살고 있고 아기까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조르주에게 애정어린 편지들을 보내왔던 조르주의 딸은 조르주의 모습에 실망하고 혐오스러워하기까지 했다. 삶의 유일한 이유였던 오랜 세월 사랑한 약혼녀와 그의 딸이 그의 삶에서 사라져버렸다. 딸은 그와 말하는 것조차 꺼려했다. 조르주는 결핵을 앓고 있는데다, 말라리아까지 걸렸다. 조르주는 피에르에게 말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살아야 할 이유가 한 조각도 없어요.”

조르주의 이야기를 들은 피에르는 이렇게 말했다.

“조르주, 당신 이야기는 정말이지 기가 막히는군요. 제가 당신에게 해줄 게 아무것도 없군요. 그런데, 죽기 전에 나를 좀 도와주세요. 내겐 일손이 필요하답니다. 집이 다 지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어머니들을 위해서라도 이 집짓기가 빨리 끝날 수 있도록 나를 좀 도와주지 않겠소?”

망설이던 조르주는 자살을 잠시 미루고 피에르를 따라나섰다. 조르주는 그 뒤로 15년간 피에르의 곁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조르주는 죽기 전에 피에르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 피에르가 죽지 말라는 훈계의 말을 했거나, 돈이나 집 같은 것을 베풀어 주었다면 저는 다시 자살시도를 해서 죽었을 겁니다. 그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의 말 속에서 제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았습니다.”


삶은 알 수 없다. 살아야 할 이유가 죽어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하고, 죽어야 할 이유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삶이 힘든 건 아직도 내 삶의 이유를 찾아야 할 이유가 남아있다는 뜻이다. 자신만의 이유 때문에 평생을 바치는 직업을 갖기도 하고,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기도 한다. 나름의 이유 때문에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난다. 때로는 남이 이야기해준 이유를 그대로 믿고 따르기도 한다. 운이 좋으면 타인이 말해준 이유가 내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고, 운이 나쁘면 타인의 이유 때문에 내 삶이 엉망진창으로 변하기도 한다. 삶을 만들어가는 것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과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다. 크고 작은 행동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행동하지 않은 삶은 아직 시작한 삶이 아니고,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삶의 이유란 세상에 향한 질문들의 대답이다. 질문하지 않는 사람은 이유는커녕 엉터리대답조차 접할 기회가 없다. 잘못된 대답들 속에서도 좋은 해답과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어릴때는 무수한 질문이 머리 속에서 끊임없이 샘솟지만, 일방적 교육을 받고, 어른이 되면서 자신 삶과 세상을 향해 질문하는 근육이 퇴화된다. 질문을 하지 않으니 내 삶의 이유같은 건 밤하늘의 별같은 존재가 된다. 있는 줄은 알지만, 언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존재,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도시의 밤하늘에서는 찾을 수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삶의 이유는 죽어가는 인간의 정신에 새 생명을 불어 넣는다. 삶의 이유는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며 삶의 본질이다.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묻기를 멈추면 안된다. 작가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삶과 세상의 문제를 향해 질문하는 사람이다. 작가의 질문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 스스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기 위해서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작가란 이유를 찾는 사람이다. 질문에 대한 답들이 만든 삶의 이유의 체계가 작가정신이다. 작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작가정신이다. 작가정신은 작가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작품에 투영되면 작가정신, 삶에 투영되면 삶의 정신이다. 삶의 정신은 곧 삶의 이유다.


작가란 자신의 정신세계를 글, 그림, 조각, 사진 등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누구든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3살 아이도 신기해하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있고, 마음속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글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무엇이든 쓸 수 있다. 의미없이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고, 아무것이나 쓴다고 해서 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연히 멋진 사진을 찍고 어쩌다 의미있는 글을 썼다고 해도 작가라 말하기 어렵다. 작가는 작가정신이 있어야 한다.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정신세계가 있어야 작가다. 자신만의 고유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작가라고 말하기 힘들다. 형량을 줄여주기 위해 범죄자의 반성문을 대신 적어주고, 자기소개서를 대신 적어주는 사람은 아무리 탁월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어도 작가라 할 수 없다. 대신 써주는 반성문과 자소서 속에는 자신 고유의 정신세계를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 번째는 자신만의 정신세계가 있을 것, 두 번째는 그 정신을 표현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탁월한 정신세계를 갖추고 대단한 글, 예술성 넘치는 그림,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사진을 찍을 마음이 넘쳐 흘러도 한 줄의 글도 쓰지 않고, 한 장의 그림도 그리지 않고, 한 컷의 사진도 찍지 않는다면 작가라고 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글을 쓰고, 아무리 많은 그림과 사진을 내어 놓아도 AI처럼 생각도 의식도 없이 일정한 알고리즘에 의해 반복되는 행위라면 작가라고 하기 힘들다. 반복되는 작품을 내어 놓더라도 작품의 의도와 작품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자신의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으면 작가라 할 수 있다. 작품에 직간접으로 담긴 작가의 마음, 생각, 활동은 작가정신에서 비롯된다. 작가정신은 땅 속 씨앗에서 싹튼 새순과 같다. 조건에 따라 아름드리 나무로 자랄수도 있고, 말라서 사라질 수도 있다. 식물 씨앗의 운명을 결정하는 조건은 물과 햇볕이고, 작가정신 씨앗의 운명을 결정하는 조건은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한 질문과 대답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세상을 향해 질문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공감하는 큰 질문, 의미있는 질문이 담긴 작품을 만들려면 작가 스스로의 묻고 답하는 치열한 과정이 필요하다. 얼마나 의미있는 질문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얼마나 진지하게 대답을 찾아가느냐가 문제일뿐, 세상과 자신을 향해 질문하고 대답을 찾아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작가가 될 수 있다. 남들처럼 무조건 열심히 공부하고, 무조건 좋은 대학을 가고, 무조건 일을 하며 무조건 재테크를 열심히 살아가다 문득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던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좋은 징조다. 어느날 떠오르는 질문의 씨앗이 작가정신으로 자라날 수 있다. 작가정신만 갖추고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 삶이란 자신의 정신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해내느냐의 문제다.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 작품이든, 일이든, 삶이든 그 결과물에 자신의 정신을 담아내었는지 중요하다. 나의 정신을 담아야 나의 작품, 나의 일,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삶의 형식과 내용에 자신의 정신을 담는 과정은 행복을 담는 과정이기도 하다. 설령 그 과정이 길고 힘들더라도 생각과 마음을 담아내는 일은 행복하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나 삶을 살아내는 일은 닮았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다가 직장에서 해고된 후, 병을 앓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고, 결혼생활은 파탄이 나 이혼을 하고, 일주일 10만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허름한 단칸방에서 어린 딸을 홀로 키우며, 굶어가며 분유값을 마련했지만 어린 딸에게 맹물을 주어야 하는 처절한 날들을 견디고 버티던 한 여자가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해리포트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그 글들을 떨리는 손으로 써내려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살아야 할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절망의 상황에서 조르주가 비로소 찾았던 그만의 삶의 이유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삶의 이유는 조앤롤링이나 조르주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에딘버러의 가난한 싱글맘처럼 어디선가 힘겹게 살아가며 자신의 작품을 꿈꾸는 작가에게만 삶의 이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어디선가 공부하고, 일하고, 고민하고 절망하고 다시 일어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삶의 이유는 필요하다. 우린 모두 작가처럼 살아야 한다. 삶은 다양한 방식의 자기표현이고, 자기표현은 삶의 이유로부터 비롯된다. 우린 모두 질문하고, 자신만의 이유와 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결과에 상관없이 행복해질 수 있다. 결과에 상관없는 행복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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