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 생각하는 일의 본질
인류학자인 마가렛 미드는 “문명의 시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사람들은 토기, 간석기, 낚시바늘, 사냥도구, 종교적 유물 등의 답변을 예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문명의 기원은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라고 말했다. 생뚱맞은 대답에 질문자의 표정이 의아해지자 그녀는 설명했다. “고대 야생의 세계에서 다리가 부러졌다면 당신은 죽어요. 위험으로부터 달아날 수도 없고, 물을 마시러 강가에 가거나 사냥을 할 수도 없어요. 당신은 그냥 다른 짐승들을 위한 고기일 뿐이에요. 동물은 부러진 다리로 살아남을 수 없어요. 하지만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는 누군가가 그 사람이 치유될 때까지 곁에서 도와주었음을 나타내요. 다른 어떤 인간이 상처를 싸매주었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곁을 지키며, 물과 음식을 주며 회복될까지 도와주었다는 뜻이에요.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사람을 돕는 것이 문명의 시작이에요.”라고 말하며 15,000년 전에 발견된 부러졌다 붙은 인간의 넓적다리뼈가 문명 시작의 증거라고 대답했다. 관계성 기반으로 인간을 이해했던 마가렛 미드의 관점으로 보면 직업의 기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화 케스트어웨이의 주인공은 사고로 무인도에서 혼자 살게 된다. 살아가기 위해서 코코넛을 먹고, 생선과 게를 잡아 불을 피워서 구워 먹는다. 나무를 구해 비와 햇볕을 피할 보금자리를 만들고, 섬에 위험요소는 없는지 확인을 하고, 하루하루를 기록한다. 무엇보다 사람이 그리워 배구공을 친구삼아 의사소통을 한다. 주인공이 스스로 해나가는 행동들은 우리가 직업이라고 부르는 활동이다.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만드는 건 조리사의 일, 자신을 돌보며 치료하는 건 간호사와 의사의 일, 위협과 공격으로부터 대비하는 건 소방관과 군인의 일, 탈출이라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연구하며 시도하는 건 과학자, 창업가의 일, 일상의 안정적 체계를 만들어가는 건 공무원의 일,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의미를 생각하는 건 기자와 작가의 일, 무료한 무인도의 일상에서 가치와 즐거움을 찾으려는 건 연예인의 일로 볼 수 있다. 내 일을 대신해 줄 사람 한 명 없는 무인도에서는 내게 필요한 일을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 문명이 시작되기 전의 인간은 삶을 위해 필요한 일, 원하는 일을 대부분 스스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가렛 미드가 말한 남을 도와주는 행동들이 움트기 시작했을 것이다. 당연히 스스로 해야했던 각자의 일들을 서로 대신해 준다는 개념들이 생겼을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가 사냥을 하고,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가 음식을 손질해서 준비하고, 누군가를 위해 보금자리를 만들고, 누군가를 위해 누군가가 치료를 하고 보살펴주고, 누군가의 문제를 누군가가 해결해주었을 것이다. 나를 위한 행위들을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행위들의 외주화가 반복되고 지속되면서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것이고, 다양한 형태의 보상도 받았을 것이다. 부러졌다 붙은 인간의 넓적다리를 문명이 처음 시작된 증거라고 보는 것처럼, 타인을 위해 도움을 주는 행동이 직업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의 삶이 아닌데도 기꺼이 나의 에너지를 쏟아 타인의 삶에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직업의 뿌리다. 직업의 본질은 이타심이다.
직업은 본질적으로 남을 돕는 활동이다. 직업활동의 대상은 사람이다. 모든 직업활동은 사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치료를 받고 교육을 받고, 서비스를 받고, 물건을 사고,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시설을 이용하고, 유튜브를 보고, SNS를 하는 것은 사람이고 그런 활동들을 할 수 있게 만들어내는 것도 사람이다. 반려동물의 치료처럼 수요대상자가 사람이 아닌 경우도에도 해당 동물은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 무엇보다 치료비를 결제는 사람이 한다. 내가 댓가를 지불한다는 뜻은 그 활동이 내게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복잡한 인간의 사회에서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모든 종류의 물건, 서비스, 활동은 직업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모든 직업적 활동들은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됨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사업적 기회가 있다는 뜻은 내가 생산하는 아이템, 서비스, 활동, 아이디어에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보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직업활동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인가에 의해 성패가 갈린다. 사업과 일의 성패여부는 사람들에게 이타성을 얼마나 광범위하게 실현하는가에 달렸다는 뜻이다. 타인에게 도움되는 좋은 일을 하고 댓가를 받지 않으면 착한 사람이고,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댓가를 받으면 사업가다. 기업이란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활동을 일정 규모 이상으로 만들어진 효율적 체계적 조직이다. 물론 자신의 이익위주로만 생각하는 기업, 경영자, 직업인들도 있겠지만, 그들의 직업을 지속하고 직업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타인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직업의 본질인 이타성을 외면한다면 직업 수요자인 사람들이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이는 시장의 법칙이기도 하고, 철학적 법칙이기도 하다. 직업 중에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의식주, 교육, 의료, 안전처럼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될 활동들은 <직업의 본질>에서 다루고 있는 줄기직업이다. 귀를 대신 파주고, 반성문을 대신 써 주는 일처럼 사람에 따라 필요하기도, 필요하지 않기도 한 활동을 하는 직업도 있고, 별 필요가 없는데 꼭 필요한 것처럼 포장된 활동도 있고, 삶에 해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는 직업적 활동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체로 법의 제재를 받는다. 직업적 생산물인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수요자 개개인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직업적 생산물을 원하는 수요자는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구매한다. 원한다, 필요하다, 도움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개개인의 주관적 영역이고 모든 직업은 그런 개개인에게 제공하는 도움이라는 이타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마가렛 미드가 언급한 넓적다리뼈처럼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는 의사는 가장 오래된 직업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의사는 모든 직업의 시초가 될지도 모른다. 또한 의사는 직업의 이타적 본질을 설명하기 좋은 사례다. 모든 의사들이 슈바이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진 않겠지만-치열한 고민 끝에 슈바이처처럼 살아갈거라고 어렵게 말하면 가족들은 모두 말리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은 응원하겠지만-아무리 경제적 이익 우선으로 생각하는 의사도 죽음과 삶의 상황에 놓이면 이타성에 관한 본질적 고민을 한다. 촌각을 다투는 외상외과의 수술도 오랜 고민 끝에 결정한 미용목적의 성형외과도 수술 도중에 환자가 죽을 수 있다. 내가 수술한 환자가 죽었다는 사실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의사는 드물다. 특히 의사로서 첫발을 시작하는 시기에 그런 일을 겪으면 생명을 구하겠다는 숭고한 목적으로 의사를 선택했든,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직업인의 하나로 의사를 선택했던 상관없이 마음이 힘들어진다. 그 힘든 마음의 본질은 내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자책감이다. 힘든 마음의 깊이는 이타심의 깊이와 같다. 그래도 견뎌내며 이번에는 정말 생명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같은 수술을 두 번 세 번을 해도 했지만 역시 환자들이 모두 죽었을때의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럼에도 그 힘든 경험을 딛고 서야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된다. 수술한 환자들이 내 손에서 죽어갈 때 타인에게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깊을수록 고통도 깊다. 그렇다고 고통의 원천인 이타심을 버리면 의사로서의 소명의식이 흐려진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환자는 죽을수도 있고 살아날수도 있다. 하나하나의 결과에 의사의 정체성이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면 직업을 계속 이어가기 힘들다. 이때 필요한 것은 결과적 관점이 아니라, 지향적 관점이다. 내 손을 거쳐간 환자들이 살아날수도 죽을수도 있지만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서 추구하는 것은 타인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지향이다. 이타심은 하나하나의 결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에 담긴 심리적 지향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때 의사의 이타심은 결과에 상관없이 묵묵히 수행하는 행위 자체가 된다. 이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대부분의 직업인들의 태도, 업무 수행과정과 유사하다. 직업을 통한 일의 과정은 인지여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행동이다.
진로에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진학, 취업, 창업이다. 진학은 취업과 창업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아무리 공부를 사랑해도 진학만 계속 선택할 수는 없다. 교수가 되든 연구자가 되든 직업을 가져야 한다. 진로는 직업으로 구체화된다. 직업을 가지는 방법은 취업과 창업이다. 창업을 위해 취업이 필요한 경우도 많다. 창업 후에도 경영상황이 악화되면 사업을 접고 취업을 해야 한다. 진로의 문제는 취업의 문제를 빗겨나가기는 힘들다. 현실에서의 진로란 취업을 통해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의 단순한 문제로 귀결된다. 하지만 이타성이라는 직업의 본질적 의미로 바라보는 진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과정이다. 진로란 삶의 문제를 직업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과정이다. 직업적으로 진로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이타성에 대한 이해 없이는 힘들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나를 위한 것이다. 직업을 가지는 것도 나를 위한 일이다. 하지만 나를 위한 일이 타인을 위한 일이고, 타인을 돕는다는 것은 자신을 돕는 일이라는 이해 없이는 진로문제를 풀기 힘들다. 모든 직업은 이타성의 원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든, 주어진 일을 하든,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막막하게 고민하든, 나의 일이 더 많은 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지점을 고민하면 새로운 기회들이 생길 것이다. 이타성 속에 사업적 기회도, 개인적 성취와 성공도 있다. 이타성과 이기성은 서로 연결되고 통합된다는 생각은 이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적 진단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에 직업이 생겨나고, 그 직업을 통해 도움을 주는 댓가로 내 삶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놓고 남을 위해 살아도 된다는 믿음으로 각자 자리에서 새로운 방식의 일, 새로운 방식의 직업, 새로운 방식의 진로를 즐겁게 생각하면 된다. 샤워를 하며,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의미있고 행복할지만 생각하면 된다.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갈등할 필요가 없다. 내 삶과 세상을 위해 이기심과 이타심을 단단히 붙여야 한다.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넓적다리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