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에게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맡기는 존재가 또 있었던가?
함부로 터치도 못했었다.
예전에는 지인들의 집에 놀러 가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다 보면 지인 부부의 아기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아기들을 안아보겠다고 하지 않았다. 엄마 품에 쏙 들어가서 안겨있는 아기를 보면 너무나도 작은데 아기를 안아본 경험도 없는 내가 함부로 안았다가 잘못될까 봐 염려스럽기도 하고 너무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다가 되려 아기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안아봐도 돼요~"
엄마가 오히려 한 번씩 더 권할 정도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엄마품에 안겨있는 아기의 손가락을 만져본다거나 볼을 꼭꼭 찔러보는 정도로만 스킨십을 했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아기를 키우게 되었다. 미래는 정말 예측할 수 없는 것 같다.
출산의 순간에 처음 안아봤을 때는 정신도 없고 감격스럽고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와중에 눈물도 펑펑. 말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감격에 겨웠었기에 그때는 무슨 정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제대로 아기를 마주하고 안아보기 시작한 것은 산후조리원에서였다.
행여나 아기가 내 품을 불편해하지 않을까, 목도 못 가누는 아기의 어딜 잡아줘야 하며 내가 어떻게 안아줘야 아기가 편하게 잠을 자는지 잔뜩 긴장하면서 아기 안는 법을 배웠다. 처음 아기를 안을 때는 30분 고작 안았을 뿐인데도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몸에서 땀이 날 정도였다. 그랬던 아기가 지금은 내 품에서 10분이면 곯아떨어질 정도로 편하게 안아주고 호흡이 잘 맞는다.
아기를 안고 엉덩이를 토닥거리면서 달래면서 품에서 재우다 보면 신기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아기를 안는 것, 아기가 안긴다는 것
이 아기는 세상의 빛을 본 지 얼마 안 된, 말 그대로 아무것도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없는 존재이다. 본인의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듣는지, 내 손인지 발인지도 인지 하지 못하는 상태. 이렇게 본인의 몸조차도 가누지 못하는 자그마한 존재가 온전하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행위가 바로 안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지도 없이 수동적이고 일방적으로 안겨지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엔 이 자그마한 존재는 자기가 불편하면 있는 힘껏 울어버림으로써 본인의 불편함을 표현하기 때문에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부모로 하여금 자신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안으라고 시키기도 한다. 그러니 처음으로 아기를 안을 때 내가 그렇게나 땀을 흘려가며 안았던 것이다.
이제는 여유가 생겨 아기를 안고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표정 호흡 등 편안함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살면서 나에게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맡기는 존재가 또 있었던가?
내가 온 힘을 다해 안아주고 보담아 줘야 하는 존재가 또 있던가?
이 작고 소중한 존재에게 나는 모든 것 그 자체인 셈이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바라본 적이 있던가.
엄마, 아빠라는 존재는 이제야 세상의 빛을 본 아기가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존재인 것이다.
비가 내리고 파도가 거친 날에도 끊임없이 빛을 비추어 돌아올 길을 알려주는,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등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아기를 안는다는 것은 그저 애기가 운다고 달래기 위해서 하는 행위가 아닌 부모 자식 간의 호흡을 나누고 심장소리를 공유하면서 유대관계를 쌓을 수 있는, 아기가 온전하게 자신을 내맡기는, 그런 소중한 시간인 것이다.
근데 좀 덜 울었으면 좋겠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