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엄마와 아빠의 역할
엄마와 아빠의 역할
주변이나 매체를 통해 가정을 들여다보면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집에서 아기를 돌보며 육아를 하고 남편은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오는 구조가 대부분이고
혹은 맞벌이를 하는 가정이 많은 편이다.
어머니나 시어머니 등 집안의 어른이 아기를 돌보는데 지원을 해주거나, 혹은 어린이 집 등에 아기를 보내고 부부가 모두 출근을 한다. 그러다 보니 출근 준비뿐만 아니라 아기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고.. 그렇게 바쁜 일상을 살게 된다.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보면, 엄마가 육아를 전담하거나 맞벌이인 경우에도 아기에 대한 디테일한 것들은 엄마가 찾고 해결하게 되는 것 같다. 아기의 건강 상태, 약을 먹게 되면 어떤 것이 괜찮은지, 발육 상태, 잠을 자는 자세 등등 정말 사소한 것들이지만 아기를 키우는 데 있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을 엄마가 정보를 찾고 아기를 돌본다. 그 집합체의 예로 맘카페를 들 수 있겠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다 가입되어 있을 것이다. 아기를 돌보고 성장함에 있어서 아기에게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어딘가가 아플 때, 심지어 땀띠가 발생했을 때도 어떤 연고를 발라야 하는지. 정말 거의 모든 정보가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되어 있는 곳 중 하나이다. 심지어 맘카페는 엄마들만 가입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만큼 아기에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엄마가 대부분 처리하는 경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엄마는 대부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한 상태에서 아기를 돌보기 때문에 육아에 전념할 수 있게 되고, 그렇기에 아기의 소소한 변화를 캐치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때그때 병원이나 전문가를 찾아 문의할 수 없으니 맘카페에서 정보를 찾아 이것저것 해보는 것이다.
반면, 아빠는 직장을 나가서 일을 하고 퇴근하면 그때부터 잠들기 전까지 아기와 잠시 시간을 보내는 정도이다 보니, 이미 체력적으로도 어느 정도 지쳐있고 아기의 디테일한 변화를 캐치하기 어렵다. 엄마가 얘기해주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아빠가 아기에게 관심이 있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퇴근 후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하루 일상은 어땠는지, 아기는 별일 없었는지 등등의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는 아빠들도 많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오면 이미 엄마와 아기는 잠들어 있기도 하고, 혹은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야근과 회식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환경에 처해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엄마가 아기에 대한 많은 것들을 해결하게 되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된다.
엄마는 "아기 전담"을 하게 되고 아빠는 자연스럽게 "돈을 벌어 오는 존재"로 자리 잡게 되는 것 같다.
엄마도 처음이다.
이런 환경에 처해있는 것이 대부분 가정의 현실이다 보니 아기에 관련된 많은 것들을 찾아보고 아기에게 적용해 보면서 엄마도 하나씩 배워가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 아기가 땀띠와 습진이 생겼다. 점점 몸에 퍼지기에 걱정이 되었고 나는 퇴근 후에야 이 상황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맘카페를 통해 아기 보습에 좋다는 로션과 연고등을 찾아봤고 구매해서 발라보자고 했다. 이게 맘카페도 결국 전문가의 집단이 아닌 엄마들의 경험을 토대로 쌓인 정보들이라 "누구네 아기는 이렇게 했더니 해결이 됐대~" 이런 식의 접근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알게 된 로션을 두 종류를 구매해서 아기에게 발라봤는데.. 딱히 효과가 없었다.
결국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스테로이드가 함유된 리도멕스라는 연고를 처방받았다. 단순하게 보면 처방받은 연고를 그냥 바르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스테로이드 연고를 아기에게 발라도 될까? 바른다면 얼마나 발라야 할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기타 등등..
보통 혼자서 잘 해결하던 아내는 자신의 고민을 유독 많이 얘기했던 것 같다.
어떻게든 연고를 덜 바르려 노력했지만 땀띠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결국 처방받은 연고를 꾸준히 발라서 땀띠와 습진을 모두 잡았다.
아빠, 놀아주는 게 전부가 아니다
내 아내도 엄마가 처음이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동안 잘해왔던 아내를 보며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아기를 돌보는 바쁜 와중에도 틈만 나면 아기에 대한 검색을 하며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리된 생각을 공유하고 검증하는 사람은 아빠가 아닌, 맘까페의 다른 엄마들, 조리원의 동기, 육아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이런것을 함께 알아보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빠는 일하고 돈만 벌어오면 모든 역할의 끝이 아닌데, 나는 마치 내가 열심히 일하면 그것이 가정을 위한 것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며 착각하진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는 것은 늘 해오던 것이고 그것에 아기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만 하나 더 얹어진 셈인데 그게 그렇게 무겁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사실 이것은 "나 또는 남편"으로서의 역할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아빠"의 역할은 무엇일까?
흔히 아빠가 집에서 하는 역할들을 떠올려보면, 아침에 일찍 출근을 하고 늦게 퇴근을 한다. 녹초가 된 몸으로 아기와 놀아주며 잠시 돌보고 이내 잠이 든다. 주말은 어떠한가, 엄마는 아기와 바람이라도 쐬자고 나가자고 하는데 쉬고 싶다며 소파에 드러누워버린다. 혹은 골프 약속이 있다며 나가버린다. 물론 주말이라도 아기와 열심히 놀아주는 아빠도 많다.
내가 봐왔던 아빠의 역할은 이런 것들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잠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나의 아버지 역시 나를 심리적으로, 교육적으로 이끌어주기보다는 같이 놀아주셨던 모습들, 그리고 혼냈던 모습들이 단편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나의 내적 성장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은 어머니였다. 장사하느라 바빴던 부모님이셨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 아버지의 역할이 구분되어 나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일상에서 주변을 둘러봐도 이 역할에서 크게 달라진 가정을 보기는 힘들다. 요즘에는 아버지와 자녀 간의 고민도 털어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는 가정의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이상적인 모습을 쉽게 보기는 힘들고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나 역시 부모의 역할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 행로를 따라가고 있던 것 같다.
퇴근 후 힘든데도 아기랑 놀아주는 것, 주말에 아기 육아를 하며 아내가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아빠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아기를 위해 엄마와 같이 육아를 하는 과정에 대해 고민하고 함께 방법을 찾는 것에는 동참하지 않았던 것 같다. 늘 아내가 알아서 찾았고, 아내가 알아서 해왔기 때문에 그려려니, 잘하겠지, 한 것이다. 아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같이 고민하고 아내와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내에게 맡겼던 것이다.
이 과정에 동참을 해야 하지 않을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기를 돌보는 아내도 잘 모르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가며 육아를 하고 있는데, 나도 그 고민을 같이 공유하고 알아보면서 육아 방법, 교육 방법 등 아기가 커가면서 알아봐야 하는 것들을 같이 알아보고 의견을 나누는 역할을 해주면 아내가 심리적 부담을 많이 덜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기의 성장 과정에서 나는 수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엄마가 알아본 대로 흘러가게 되고 나의 생각은 반영되기 어려울 수 있다. 예전에 TV에서 관련된 영상을 본 기억이 난다. 엄마는 나름대로 알아봐서 육아의 방식을 고민하고 키우는데, 뒤늦게 아빠는 본인의 생각으로 간섭하면서 이해충돌이 나고 다투는 모습이었다. 안 그래도 아기가 생기면서 많이 다툰다고 하던데, 이런 이유도 한몫하는 것 같다.
아내도 처음인데,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규정되어 있던 아빠의 역할에서 조금 더 능동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