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중요한 변화 속도: 빠르게 가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한 스타트업 리더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목표는 단 하나라고 말했다.
“우리 경쟁사가 3개월 안에 제품을 출시하면, 우리는 2개월 안에 출시해야 합니다. 스타트업에서 속도가 생명입니다.”
이 말은 겉보기에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자금이 한정적인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빠르게 실행하고 빠르게 제품을 출시해야 한다. 하지만 빠르다는 것이 반드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전력 질주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방향을 잃은 채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실패를 더 빨리 향해 달려가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종종 속도(speed)와 변화 속도(velocity)를 같은 개념으로 착각한다. 속도는 단순히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지를 의미하지만, 변화 속도는 정확한 방향으로 얼마나 신속하게 적응하는가 를 의미한다.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 채 속도만 내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물리학에서 속도(speed)와 변화 속도(velocity)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속도는 단순히 이동하는 속력을 의미하지만, 변화 속도는 방향이 포함된 속력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시속 100km로 달리고 있다고 해서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스타트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빨리 움직이느냐보다, 올바른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속도만 강조하면 잘못된 결정을 빠르게 실행하고, 결국 더 큰 리소스 낭비를 초래할 수 있다.
속도만을 중시하면 중요한 신호를 놓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도 속도만을 중요시하다가 실패한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가상의 기업인 퀵코드사로 예를 들어보면 아래와 같다.
퀵코드(QuickCode)는 AI 기반 코딩 자동화 툴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었다. 공동 창업자는 “빠르게 출시하지 않으면 경쟁사에 밀린다”는 신념 아래, 6개월 만에 베타 버전을 완성했다. 하지만 문제는 고객이 원했던 것은 ‘빠른 코드 작성’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코드’였다는 점이었다.
퀵코드는 빠르게 기능을 추가하고 새로운 언어를 지원하는 데 집중했지만, 정작 코드의 정확성과 보안이 검증되지 않았다. 초기 고객들은 버그가 많고 예측 불가능한 코드 출력을 경험하며 이탈하기 시작했다. 1년 후, 퀵코드는 경쟁사보다 더 많은 기능을 제공했지만, 신뢰를 잃은 시장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퀵코드는 빠르게 실행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시장의 요구에 적응하는 변화를 놓쳤다. 속도가 아닌 변화 속도를 높였다면, 고객 피드백을 반영하고 제품의 안정성을 먼저 확보했을 것이다.
이 사례는 속도 자체가 목표가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스타트업은 단순히 빠르게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변화 속도를 극대화하여 성공한 스타트업도 있다. 스타트업에서 많이 사용하는 메신저 툴인 Slack은 빠르게 실행하되, 더 빠르게 적응한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Slack의 창업자인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 는 원래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출시 후 고객 반응이 좋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업이라면 “우리가 이만큼 투자했으니 계속 밀어붙이자”는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Slack은 빠르게 방향을 전환했다.
개발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사용하던 협업 메신저가 더 큰 시장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게임 대신 메신저 제품을 정식으로 출시했다. 그리고 그 결과, Slack은 현재 1,8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는 글로벌 협업 툴이 되었다(Butterfield, 2020).
Slack의 사례는 스타트업이 반드시 처음 세운 계획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 시장의 신호를 읽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변화 속도를 극대화하는 스타트업은 공통적으로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1. 속도가 아닌 실험과 학습 속도를 높인다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개념을 만든 에릭 리스(Eric Ries)는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가설을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Dropbox 는 처음부터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개발하지 않았다. 대신, 단순한 데모 영상을 만들어 고객 반응을 살폈다. 이 전략 덕분에 시장의 수요를 빠르게 검증할 수 있었고, 개발 방향을 명확히 할 수 있었다(Ries, 2021).
스타트업이 변화 속도를 높이려면, 빠르게 실행하는 것보다 빠르게 실험하고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속도 중심 KPI를 폐기하고, 변화 중심 KPI를 도입한다
많은 스타트업이 “이번 달에 몇 개의 기능을 개발했는가?“를 KPI로 설정한다. 하지만 이보다는 “이번 달에 몇 개의 고객 피드백을 반영했는가?” 를 측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을 매주 개선하며, 고객 반응을 반영해 전략을 조정한다. 이처럼 빠르게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지속적인 성장의 핵심이다(Moore, 2023).
3. 속도보다 유연성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를 만든다
Spotify는 조직을 ‘스쿼드(Squad)’ 단위로 운영하며, 각 팀이 독립적으로 실험하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구조 덕분에 Spotify는 변화하는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Kniberg, 2022).
스타트업은 단순히 속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과 실행의 유연성을 높여 변화 속도를 극대화해야 한다.
스타트업의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속도가 아니다. 속도는 필요하지만, 변화 속도가 더 중요하다.
속도 중심 사고를 가진 스타트업은 빠르게 실행하지만, 잘못된 방향이면 실패 확률이 더 높아진다. 반면, 변화 속도를 높인 스타트업은 빠르게 피드백을 반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신속하게 적응할 수 있다.
스타트업은 이제 “얼마나 빨리 가는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는가?” 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스타트업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