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성장 딜레마: 자율성을 지키면서 비효율을 피하는 법
어느 스타트업에서나 반복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누구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실행했고, 중요한 의사결정도 Slack 한 줄 메시지로 해결되거나 간단한 쓰레드 논의를 통해 의사결정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팀원이 50명을 넘어서고 협업의 접점이 많아지며 변화가 시작됩니다. “이제 우리도 프로세스를 정립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말과 함께 의사결정 과정이 추가되고, 미팅 일정이 늘어나고, 문서화가 요구됩니다.
처음에는 질서를 잡기 위해 필요해 보였던 변화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할 때마다 여러 단계의 의사결정 과정이 추가되면서 일정이 지연되고, 직원들은 “이거 누구한테 의사결정 받아야 하죠?”라는 질문을 주고받느라 시간을 허비합니다. 혁신을 주도하던 팀원들은 절차에 얽매이면서 점점 소극적으로 변하고, 결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처럼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프로세스를 추가하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조직 전체의 실행력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체계적인 시스템은 필수적이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구축된 프로세스는 오히려 스타트업의 강점인 속도와 유연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이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시스템이 비효율을 만드는 이유
성장을 위한 프로세스를 만들었는데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지나치게 복잡한 업무 절차가 직무 만족도와 성과를 저하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Hamel & Zanini, 2020). 특히 스타트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시스템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① 속도를 늦추는 절차적 과잉
프로세스는 혼란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과도하게 규칙을 추가하면 오히려 결정을 내리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스타트업 초기에는 ‘바로 실행’이 가능했지만, 성장 후에는 “이거 의사결정권자가 누구야?”라는 질문이 반복되면서 신속한 실행력이 사라집니다.
Bain & Company(2017)의 연구에 따르면, 대기업의 관리자들은 평균적으로 주당 16시간을 내부 조율과 의사결정 절차에 소비하며, 이는 업무 속도를 크게 저하시킨다고 합니다. 스타트업이 이런 문제를 피하려면, 시스템을 도입하더라도 여전히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해야 합니다.
② 책임의 모호함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누구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책임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도입되면 “이건 내 일이 아니다”라는 태도가 퍼질 위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업무에 대한 명확한 책임자가 없고, 여러 부서가 얽혀 있으면 ‘책임 전가’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Gartner(2021)의 연구에 따르면, 조직 내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게 정리된 기업은 직원 생산성이 평균 25% 더 높다고 합니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책임이 불명확해지는 이유는 ‘시스템이 역할을 정리해줄 것’이라는 착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할을 문서화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너십(ownership)을 강화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③ 자율성과 프로세스의 충돌
스타트업의 강점은 ‘유연한 사고’인데, 프로세스가 너무 경직되면 창의적인 문제 해결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특히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경직된 절차는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Boston Consulting Group(BCG, 2021)의 연구에 따르면, 자율성이 높은 조직은 직원 만족도가 30% 더 높고, 혁신 속도가 두 배 빠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절차가 경직된 조직에서는 혁신이 억제되고 직원들이 소극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시스템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규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규칙이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2. 스타트업이 시스템을 만들 때 고려해야 할 3가지 원칙
① 최소한의 프로세스로 최대한의 실행력 유지하기
스타트업의 실행력이 유지되는 핵심 요소는 속도입니다. 의사결정이 빠를수록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프로세스가 복잡해지면 실행 속도가 떨어지고, 결국 스타트업의 가장 큰 장점이 사라질 위험이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자율과 책임’이라는 문화 아래 최소한의 정책만 유지하며, 직원들에게 더 많은 결정을 맡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McCord, 2019). 이 접근법은 조직이 커지더라도 여전히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듭니다.
② ‘규칙’보다 ‘원칙’ 중심으로 운영하기
경직된 프로세스는 조직을 느리게 만듭니다. 반면, ‘원칙’ 중심으로 운영하는 조직은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은 모든 의사결정이 ‘고객 중심’이라는 원칙 아래 이루어집니다. 즉, 세부적인 절차를 정하기보다는 핵심 원칙을 공유하고, 팀이 자율적으로 해결책을 찾도록 하는 방식입니다(Bryar & Carr, 2021).
스타트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부적인 규칙을 세우는 대신, 조직이 따라야 할 원칙을 정하고 각 팀이 스스로 최적의 방법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③ 역할을 명확히 하지만, 오너십을 강조하기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문제는 “책임 공백”입니다. 업무가 세분화되면서 개개인의 역할이 애매해지고, 결국 중요한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Shopify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팀원들에게 각 프로젝트의 ‘오너(owner)’가 되도록 장려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Lütke, 2022). 즉, 단순히 역할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 구성원이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타트업이 오너십을 강조하지 않으면, 직원들은 “이건 내 일이 아닌데?“라는 태도를 보이며 프로세스만 따르게 됩니다. 하지만 각자가 의사결정의 중심에 서게 되면, 조직 전체의 실행력과 책임감이 높아집니다.
성장해도 스타트업의 장점을 유지하는 법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스타트업의 장점(속도, 자율성, 창의성)을 해치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규칙을 추가하기 전에 항상 질문해야 합니다.
“이 프로세스가 정말로 필요한가?”
“이 절차가 속도를 늦추지 않는가?”
“이 시스템이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가?”
답이 ‘아니오’라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