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학생들으로부터 배우는 국어 시간

by 조이아

3월 넷째 주를 앞두고 3월이 끝나가서 다행이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새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근무환경과 함께 업무도 달라졌고, 무엇보다 만나는 학생들이 달라졌다. 우선은 스무 명이던 한 학급에 서른세 명이나 앉아있어서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헉, 하고 숨이 가빠졌다. 거리두기를 했다고는 하지만 이전에 비해 빽빽하게 놓인 책상 위에는 투명한 가리개가 서있었고, 교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사물함은 복도를 좌우로 가르고 있어 복도에서부터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가뜩이나 곱슬인 내 머리는 수업 시간이면 내 가쁜 숨과 학생들이 뿜는 열기로 구불구불해졌다.


3월마다 하는 자기소개 활동을 진행했다. 수업 안내가 끝나고, 관계를 맺기 위한 말하기를 준비해서 모두가 자신을 소개한다. 인원수가 많아서 발표 내용을 두 가지로 제한했다. 마스크가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칠판을 향해 나오는 걸음걸이와 자세나 시선 처리, 목소리의 높낮이와 말하는 속도 등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을 공책에, 또 마음속에 새길 수 있었다. 서너 개 반만 수업하던 예전과 다르게 한 학년 전체를 들어가기로 한 올해, 나는 이백팔십 명이 넘는 학생들의 이름을 손수 적고, 그들이 소개한 내용과 그들에게 받은 인상을 한 줄 혹은 두 줄로 기록했다.(덕분에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내 국어 공책을 절반이나 쓴 것 같다.)


학생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냈다. 1음절의 단어 두 개로 자신을 소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아이들은 대체로 '봄'이라든가 '눈' 혹은 '잠' 등의 무난한 단어로 자신들의 취향을 말하고 들어갔다. 때로는 '화'라든가 '불'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화나 열정 혹은 '불멍'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지내던 아이들은 '집'이 자신을 얼마나 편안하게 하는지에 대해 집순이 혹은 집돌이 생활을 예찬하기도 했다. 인상 깊었던 발표 중에는 '향'이 공간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는 아이와 아버지가 매일 끓여주시는 보이'차'를 좋아한다는 아이, '꽥'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아찔했던 경험담을 재치 있게 전한 아이도 있었다.


자기소개에는 주로 좋아하는 것이나 앞으로의 꿈, 혹은 자신의 성향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예시 또한 그러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기록하는 것을 자주 한다, 정을 나누고 싶고 여러분의 가능성을 보고 싶다' 등 나의 특성이나 당부 등으로 채웠던 것이다. 서로를 알기 위한 시간이자 말하기 연습, 공책 작성 연습 등의 의미를 가지고 이런 활동을 진행한다. 그런데 엊그제 한 남학생의 자기소개를 듣고 감동을 받았다. 그간 자신에 대한 자기소개를 꽤 구체적이고도 완성도 있는 글로 준비해두고 씩씩하고도 차분하게 발표를 하는 학생들도 많이 만났지만, 자기소개를 듣고 감동을 느끼기는 정말 처음이었다.

발표물 없이 나와서 다수를 향해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자신이 고른 단어 두 개를 말하고는 잘하지는 못 하지만 기타를 치며 곡을 만들 때가 있는데, 그때야말로 자신이 가치 있게 느껴진다는 말을 했다. 그런 표현을 육성으로 듣다니. 더군다나 학급 전체가 있는 앞에서! 나는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이렇게 솔직한 자기 이야기라니. 그러고는 자기가 큰 병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잦은 병치레를 겪으며 느낀 바가 많다고 했다. 작년에는 발목이 부러진 일이 있었는데 그 후로 축구를 할 때에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했다는 그런 이야기들을 차분하게 하고 들어갔다. 한 명의 발표가 끝나면 그에 대한 느낌을 적는 시간을 준다. 나는 아이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부터, 이렇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말을 덧붙이고 싶었다.

기타를 칠 때에만 내가 가치 있게 느껴진다고? 나도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는데. 아마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않을까? 무기력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일에 대해 떠올렸다. 병에 대해서 말한 것도 너무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장점이라든가 드러내 보였을 때 인정받을 만한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해왔나 보다.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몸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장애나 큰 병이 있는 게 아니라도 우리는 조금씩은 부실하고 약한 구석을 지니고 살아간다. 내가 처한 현실이 답답하다는 이야기를 차분하고 천천하게 그러나 울림 있게 이야기 해준 아이가 너무 고마웠다.



모든 학생들의 발표가 끝나고, 자신의 발표와 친구들의 발표를 들으면서의 소감 또 전반적인 이번 활동에 대한 소감을 적어보고 나누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나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가 귀 기울여 들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는 소감 발표가 있었다. 어떤 아이에게는 발표가 떨리고 얼른 지나가버렸으면 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에게는 그 시간이 자신이 받아들여지는 경험의 시간이기도 하구나-하고 나는 새롭게 안다.

내게 감동을 준 그 남학생에게 활동 소감을 물었다. 너무 궁금했거든. 그리고는 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소감 또한 진솔했던 것이다. 내용은 이러했다. 발표를 하면서 자신도 없고 괜한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발표가 다 끝나자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아-.


다른 학생들은 이 친구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 친구를 향한 마음이 좀 더 열리지 않았을까 싶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관계가 세워지기 전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불안과 친구들에게 소속되고 싶어서 튀고 싶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을 테고, 혹은 특별하고 좋아 보였으면 하는 바람도 숨어있을 테다. 나에 대해 노출하고 싶지 않아 정보의 수위를 조절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어서 내용이 부실한 발표에 대해서도, 괜찮다 그 마음을 존중한다 격려했다. 우울한 것을 찾아본다는 학생의 발표를 듣고 나서는 나도 그랬다며 두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두둔할 일이었을까. 내 앞의 존재를 받아들이자는 이야기를 내 소개 때에 해놓고 나는 판단의 잣대를 가지고 학생들의 소개를 들어왔던 거다. 나부터가 내 좋은 점만을 떠들고, 나는 이렇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바람만으로 내 소개를 한 게 이제와 부끄러워졌다. 완벽한 사람은 없는데! 교사라고 꼭 좋은 면만 보이는 것도 능사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장하는 말랑한 마음에는 오히려 조금 부족한 모습을 지닌 사람들을 보면서 지내는 게 더 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수다를 떨거나 마음 가는 사람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시원해지는 기분을 모두가 알 것이다. 그런 것처럼 글쓰기를 하고 나면 후련해지는 기분이 있다, 나는 그런 치유하는 글쓰기의 힘을 믿는다.'는 내가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며 내 소개 때 한 말이었다.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을 글쓰기를 넘어서서 말하기를 통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이었고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또 학생으로부터 배운다.


김소연 시인의 <한 글자 사전>에서 영감을 받아 1음절로 나를 소개하는 활동은 책에 담긴 '씨'라는 단어의 정의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씨' -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쪼개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심고 물을 주어 키워가며 알아내는 것.


'우리가 한 활동은 서로의 겉모습만 본 것일뿐이다. 3월에 만난 우리는 시간을 두고 서로에 대해 알아갈 것이다. 앞으로도 잘해 보자.' 그렇게 말한 나 또한 '씨'의 겉만 보고 판단했다는 걸 다시금 알고 반성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부끄럽지만 움트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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