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나누는 국어 수업
'물체주머니'라는 전시가 북서울미술관에서 있었다. 김영나 디자이너의 전시였고, 오은 시인이 협업하여 전시를 보고 동화를 썼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감상이 가능하도록 기획했다는 문서를 보고 신청을 했고, 수업지도안과 활동지를 받았다. 오은 시인의 감상과 이야기를 따라가며 전시를 감상하는 동영상을 학생들과 보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전시장을 둘러보며 나만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과정이었고, 두 번째 이야기는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일기 주머니'라는 코너를 소개하며 나만의 물체를 소개하는 영상이 있었다.
1학년 자유학기 주제 선택 '쉬운 글쓰기'반에서 일차적으로 수업을 진행해보았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수업이었다. 다음 주에 나만의 추억이 담긴 물체를 준비해오라고 안내를 했지만, 실제로 가져온 아이들이 적었다. 열네 살에게 추억의 물건은 탁구채, 컴퓨터, 스마트폰 등이었다. 그럴싸한 이야기가 많지는 않았지만 탁구채를 가지고 초등학교 생활의 반 정도를 보낸 것 같다는 아이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른 기말고사가 끝난 중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도 같은 수업을 진행해 보았다. 미술관도 구경하고, 디자이너의 기획의도 인터뷰, 전시실을 설치하는 타임랩스도 보았다. 다음 날 이어진 수업에서 추억의 물건은, 방탄소년단의 앨범과 응원봉에서부터 스티커를 모아두는 파우치,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와 그림 등을 모아둔 상자, 가족 반지가 등장했다. 처음으로 다 닳도록 쓴 볼펜도 있었고, 네 잎 클로버가 들어있는, 처음에는 목걸이였다는 열쇠고리, 3년 간 쓰던 일기장을 가져온 친구도 있었다. 즉석에서 할 말을 준비해서 포장을 뜯지 않은 마스크 하나를 달랑 들고,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어 소중하다고 얘기한 남학생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즉석에서 고안해 발표한 여학생은, 일 년 전 단짝 친구와 한 짝씩 바꾸어 신은 슬리퍼를 교탁 위에 올려도 되겠냐며 신고 있던 흰색, 노란색 슬리퍼로 친구와의 우정을 소개했다. 아! 12월 급식표를 들고 나온 아이도 있었는데, 지나간 날짜에는 죽 선이 그어져 있었다.
서로의 추억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는 시간은 훈훈했다. 참 내가 소개한 추억의 물체는 나의 여행일기였다. 몇 달 전 동료 선생님들과 대화하다가 유럽여행 다녀오면서 그 기간 동안 기록하던 노트를 다 채워와서 뿌듯했다는 얘기를 했었다. 그분들이 보고 싶어 해서 베란다 일기장(초등학생 때 것부터 있다.) 상자에 넣어둔 것을 찾아 꺼냈다. 몇 년 만에 보는 나의 기록은 새롭게 느껴졌다. 얇지 않은 노트였는데, 거기에 여행 준비물이며 일정, 여행에 필요한 외국어 단어 몇 개, 여행 준비하면서 참고한 책에 대한 짧은 평을 써놓고 떠난 여행이었다. 비행기에 올라서부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그 노트를 정말 꽉 채워왔다. 작은 딱풀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티켓이며 영수증 따위를 붙이기도 했다. 몇 년 간 잊고 있던 내 책을 보니 다시금 뿌듯해졌다. (무려 2005년에 쓴 거였다! 그 책을 채우고 났을 때에는, 그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다가-같이 여행을 함께 했던 친구에게도 그랬다. 친구랑 안 좋았던 감정도 담겨 있으므로- 한 분께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창피하기도 하고 머쓱했었다. 그런데 십 년도 더 지난 지금은 누가 자세히 읽을 것도 아니고 머쓱한 마음은 휘발되어 나는 정말 책을 찾은 다음날 동료 선생님들께 자랑을 했다.)
그렇게 다시 빛을 보게 된 그 책을 나는 상자에 넣지 않고, 잘 보이는 책장에 세워 두었다. 틈 나면 쓰다듬으면서 '나는 쓸 수 있는 사람이다'를 되뇌기도 했다. 그리고 물체주머니 두 번째 시간 수업마다 나만의 물체로 소개했다. 20일간의 여행이었고,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프랑스를 머물던 기록이었다. 프랑스 식당에서 아주머니가 써준 메뉴 이름도 있었고,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만난 정수복 교수님과의 산책 이야기며, 교수님 필체로 성함과 당시 파리 거주하시던 집의 전화번호도 쓰여 있다. 틈틈이 끄적이던 그림도 있다. 먹었던 음식이나 커피잔은 물론이고 피렌체의 두오모를 오르며 뱅글뱅글 오르던 계단과 두오모 성당, 마흐모탕 미술관에서 모네의 그림을 감상하시던 분홍색 모자, 재킷, 바지, 가방이 우아하던 할머니 그림까지. 지금 생각해도 이걸 다 어떻게 그리고, 이런 생각을 그때 언제 했지 싶다. (맞다. 그때 우리의 여행은 한껏 게을렀다. 계획하던 아시시도 못 갔고, 틈만 나면 카페를 찾아 앉곤 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어쨌거나 아이들 앞에서 그 증거물을 보이면서, ‘나는 이 책 덕분에 뭔가를 쓸 수 있는 사람일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소중하다. ‘ 이런 설명을 했다.
지난주 금요일에 2학년 수업에서 다른 맥락 없이 나만의 물체를 소개하자고 다짜고짜 수업을 안내했다. 코로나로 인해 진도를 축소하고, 수행평가도 하나 진행하고, 모둠별 수업도 못 하고 진도만 턱없이 빨랐다. 게다가 1학기에도 2학기에도 감염병의 위험을 최소화하자고 수행평가는 죄다 글쓰기만 했던 것이다. 그래 우리 이번에는 평가 말고, 그냥 말하기를 좀 해보자 했다. 내 여행책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소중한 물체를 가져와서 자기 추억을 나눠 달라 요구했다.
큰 기대는 없었다. 1학년에서나 3학년에서 해보니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은 안 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월요일 1교시 2학년 아이들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준비해 온 사람을 물으니, 대여섯 명 정도가 손을 든다. 앉아 있던 아이는 열일곱.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보이며, 작년 생일에 아빠가 갑작스레 사준 시계라며 핸드폰은 두고 다녀도 시계만큼은 꼭 차고 다닌다는 발표가 있었다. 모범생 지은이는 편지지가 담긴 봉투를 가져와서 친구들에게 받은 추억이라고 했다. 개성 있는 승우는 산 지 한 달 된 칼림바를 소중히 모셔와 케이스를 열어 보여주었다. 온통 투명한 아크릴로 되어 있었다. 누나를 졸라서 겨우 얻은 것이라고 한다. 소리를 들었더니 과연 영롱했다. 대안교육을 좀 받았던 현아는 지난번 기관에서 선생님께 받은 수첩을 소개했다. 그 기관의 모든 학생들이 받은 건데, 자기가 힘들었을 때 거기에 감정을 털어놓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이 더러는 힘을 주는 말을 써주기도 했고, 장장 6개월 간 썼던 거라며 진정성 있는 발표를 해 나를 놀라게 했다. 진지하면서도 엉뚱한 모범생 수아는 주머니에서 문구용 커터칼을 꺼내 들고 발표를 시작해 모두를 기함하게 했다. 작년에 칼이 필요했는데 구하지를 못했다가 언니가 자신이 쓰던 거지만 주겠다고 하여 받은 거란다. 꼭 필요할 때 받은 거라 정말 요긴했다며 칼을 스윽 올리며
"여기 보시면, 좀 쓰던 자국이 있는데요. 생각보다 잘 들어요."
해서 다들 얼음이 되었다. 나 혼자 상상하기로는, 저 친구가 미술을 잘하는데 저 칼로 자기 그림의 세세한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매우 소중하다고 했다면 참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웅이는
"저에게 소중한 물건은 김치냉장고입니다."
라고 말문을 열었다. 저마다 감탄사를 날리며 그 이유를 물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있던 김치냉장고를 얼마 전에 바꿨는데, 정말 시원해서 좋습니다."
헐. 과묵하고 진지하기만 한 남학생인 줄 알았는데 유머감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글쓰기 수행평가에서도 마지막 문장이 재치 있어서 칭찬했던 기억이 났다. 표정에 여유가 묻어나는 가영이가 앞에 섰다.
"저에게 소중한 물건은 물티슈입니다."
엥? 마스크가 소중한 것처럼 물티슈도 코로나 때문인가 물었더니,
"화장실에서 똥 싸고 쓰는 물티슈요."
정말 저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저런 표현은 나랑 남편 사이에서 아니, 우리 식구들끼리만 쓰는 그런 단어가 아니었나. 황당한 표정을 지었더니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아니 정말 십 년 넘게 한 브랜드를 이용하고 있는데요. 저는 그거 없으면 못 살거든요. 진짜 소중한 거라 얘기하는 거예요. 물티슈."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는 브랜드 이름을 묻고 아이의 대답을 공책에 써두었다.
준비해온 학생들에게 주려고 위클리 플래너를 여섯 개 준비해 갔었다. 수첩, 편지 모음, 시계, 칼림바를 소개한 친구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들고 와 주어 고맙다고 증정했다. 그리고 남은 두 개는 누구에게 줄까 아이들에게 물었다. 자기 머리가 가장 소중하다고 한 아이도 있었고, BIG 볼펜을 달랑 들고 나와 예전에 프랑스 살 때 쓰던 게 아직도 있더라며(무려 7년 전이란다.) 여기서는 구하지 못하니까 소중하다고 우긴 학생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정정해주었다. 여기서도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참 부드럽고 좋다고. 어쨌거나 학생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나머지 두 개의 선물은 '김치냉장고'와 '물티슈'에게 줘야 한다고 외쳤다.
추억의 물체라면 뻔하게 편지나 일기 혹은 자신의 수집 물건 정도밖에 생각해 내지 못 하는 나 같은 옛날 사람에게, 2학년 학생들은 큰 즐거움을 주었다. 추억을 나누는 일은 나의 소중한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는 기쁨과 동시에, 다른 이의 추억으로부터 나의 추억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몸을 덥혀 주었다. 그런데 나는 뭔가를 쓰려고만 하면 왜 이리 길어지는가. 책 한 권을 다 채워온 사람이라 그런가. 위에 등장한 아이들의 이름은 실제와 다르다는 거, 아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