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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희 Jun 01. 2022

커피 칸타타

                                                   

 커피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 대신 정식으로 다방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셨던 때가 언제인가는 기억하고 있다. 여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나서다. 교복을 입은 채, 가까운 친구 아버지가 동행을 하셨는데 ‘여왕 다방’이라는 곳이었다. 아마 명동성당 아래 진고개를 오르는 오른편에 있지 않았을까 한다.


 그때까지 얼마나 궁금했는지 모른다. 도대체 ‘다방’은 어떤 곳일까 하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커피를 마실까 하고. 다방에 대한 첫 경험과 커피는 나름대로 인상적이었다. 펑 뚫려 훤한 실내에는 귀에 익은 서양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밝은 얼굴의 주인 여자는 아주 후덕한 모습이었다.


 곧이어 두툼한 잔에 담겨 나온 설레며 기대했던 것은 프림을 잔뜩 풀어 구수하고 달짝지근했는데 새로운 기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 후 어쩌면 오랫동안 이 맛에 맞추어 커피를 마시지 않았을까 짐작해 보는데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날이 좀 더 지난 이후로 나는 커피를 거의 매일 놓치지 않고 마신다. 아니 빠져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가끔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듣는 것이 커피를 줄이라는 인사다. 그러면서 심심치 않게 그들로부터 받는 선물이 커피라는 것이 또한 묘하다. 이럴 때 커피를 마시기 전에 난 무엇을 마셨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18세기경 독일에서는 커피가 대 유행이었다. 그럼에도 여성들이 커피를 마시면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하여 그것을 마시지 못하게 했었다. 그래서 바흐의 ‘커피 칸타타’라는 곡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와 천 번의 입맞춤보다도 더 황홀하고 달콤하다고 하며 커피를 찬양하는 딸의 노래가 나온다.


 아리아는 일종의 커피에 대한 송시(訟詩)인 셈이다. 그것으로 본다면 이제 구순을 넘기신 친구 아버지는 딸들에게 커피에 관한 한 꽤 우호적이셨던 분이다. 마치 성인식(成人式)이라도 치러 주시는 듯 경건하기까지 했던 그분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커피 인지도 모르고 커피를 본 적이 언제였을까 더듬어보니 아주 어릴 때로 기억이 된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특이하게 생긴 병 속에 거무스레한 가루가 들어 있는 것을 가지고 오셨다. 똑같은 병에 뽀얀 가루처럼 생긴 것도 함께 있었다.


 그리고는 넓적한 스테인리스 대접에 그것을 함께 섞어 그때만 해도 귀했던 설탕물을 뜨겁게 풀어 후후 불어가며 드셨다. 무척 아끼시면서 행복한 표정으로 드셨는데 그 모습이 어린 내겐 새롭고 아주 특별해 보였다.

 

 그러고 나서 내가 더 자란 후 60년대 말인가? 당시 한참 월남전이 진행될 때였는데 어떻게 해서 들어왔는지 전시의 비상식인 시레이션이 유행일 때가 있었다. 전투 식이 들어있는 식량 박스에는 역겨운 것도 있었지만 참으로 진귀하고 신나는 것들이 많았다.


 그 안에는 또 얇고 앙증스러운 봉투가 세 개쯤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의 설탕과 소금 맛은 알겠건만 검은 가루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혀끝에 댄 순간 그 맛이란…. 커피를 난생처음 입에 댔을 때의 일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물에 개어 고약처럼 상처에 바르기도 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만큼 커피가 우리에게 제대로 들어온 역사는 그리 길지가 않다. 처음 수입이 되었을 때 사설에서까지 논란이었다고 하지 않나. 먹으나마나 한 득도되지 않는 것에 외화를 쏟는다며 망국의 징조라고 하여 혀를 찼었다고 한다. 이것이 불과 반세기 전 일이니 지금 커피의 사정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어느 때 난 커피의 맛을 잊은 채 습관처럼 따라 마시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커피를 즐기는 이유 중에는 천 번의 입맞춤보다 더한 달콤함에 끌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맛이 없는 검은 빛깔은 보기에 흉물스러울 때가 있다.


 그렇건만 그처럼 즐기는 것에는 커피를 마시면서 누려보는 멋 때문이다. 커피를 담아내는 용기마다 스며드는 기분 또한 늘 다르기 마련이다. 음악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엎드려 마실 땐 그런대로, 다리를 꼬은 채 안락한 소파에 몸을 묻고 마실 땐 또 그런대로 즐겁다. 어느 때는 창 밖의 정취에 잠시 들어가 식어 가는 찻잔에 커피 맛을 빼앗기게 되어도 개의치 를 않는다.


 커피는 여럿이 마셔도 좋고 고요한 상대를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와 함께 마실 때도 좋다. 무엇보다 조용히 젖어드는 생각 속에서 적막에 빠져 홀로 마실 때  더욱 좋다. 아울러 커피 향에 배어있는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을 만나는 것도 내가 즐기는 커피의 멋이다. 어려웠던 시절 한 친구의 우정 어린 커피 선물이 우울할 땐 따뜻한 기억으로 와 커피의 맛을 달게 해주기도 한다.


 젊은 날, 난 자주 동해안을 끼고 까닭 없이 뒤숭숭한 정서를 좇아 일상을 팽개치고 떠나곤 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창’이라든가, 이름도 예쁜 ‘월래’라든가 ‘진하’라고 하는 곳이었는데 아주 작은 어촌에 불과한 데였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이름하여 ‘등대 다방’이란 간판이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다방에 들어가면 그저 우두커니 갯내와 함께 앉았다 오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청춘의 방황을 잠깐 동안 털어 버릴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도 때때로 시골 다방이 그리워 그곳으로 가 차를 마시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아마 어딘 가로 돌아갈 의지를 다시 찾고 싶을 때가 아닐까 한다.


  사람들은 이제 나이 탓을 하면서 건강상 제발 커피를 줄이라고들 이른다. 그러나 내가 커피에 끌리는 어쩔 수 없는 것에는 다소 무례하더라도 커피가 주는 넉넉한 자유스러움이 한몫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망국의 징조라 한 것이 어느덧 나처럼 빈약하고 탐이 없는 삶에까지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 오히려 지금쯤은 나도 그대에게 송시(訟詩)라도 받쳐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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