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커선 Apr 25. 2022

지금 떠나지 않으면 미칠지도 몰라


길바닥 여행자

람사르 협약으로 유명한 이란의 도시 람사르에 들렀을 때였다. 언제나처럼 나는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정하고 배낭을 던져놓고 도시를 탐험하러 나섰다. 람사르는 생각보다 작은 도시였다. 쉴 새 없이 도심을 이리저리 걷다가, 어둑 살이 내린 거리를 따라 저녁거리를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흡사 어릴 적 운동회날의 만국기처럼 형형색색 깃발이 나폴 댔다. 해 질 녘 올려다본 하늘은 이제 복숭아 빛에서 막 살구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거리에 가로등 불빛이 하나 둘 켜져 갔다. 숙소로 향하는 갈림길에 다다랐을 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가 빠지도록 하늘을 올려다보다 말고 다시 내 앞에 놓인 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때 문득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래, 이 길바닥이 바로 내 집이로구나'


나는 언제나 그렇듯 아침에 눈을 뜨면 거리로 나왔고, 하루 종일 길을 걷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또다시 길을 걷다가 노을에 등 떠밀려 숙소로 돌아갔다. 한동안은 뾰족한 숙소도 없이, 길에서 자고 길에서 먹으며 지냈다. 길 위에서의 생활, 길 위에서 시작된 고단한 하루는 길 위에서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배낭을 둘러메고 어디에 들르든 마음이 편안했다. 누굴 만나도 별 부담이 없었다. 여행이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날마다 장소만 바뀌었다 뿐이지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내는 건 집에서나 길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길과 나는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처음부터 내 마음이 편안한 건 아니었다.

다국적 제약회사 5년 차이던 나는 문득 인생이 시시럭하게 저물까 봐 겁이 났다. 이대로라면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살다 생이 끝날지도 몰랐다. 나는 글로벌 인재로 거듭나겠다며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뉴욕도 어디 런던도 아니었다.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좌충우돌의 시작이었다. 

코이카 봉사단원이 되어 우즈베크의 시골에서 2년을 살았다. 그곳에서 전기 없이 생활하기, 물 없이 밥 해 먹고 빨래하고 살아남기, 가스 없이 겨울나기 등등 2년간 생존기술을 바짝 닦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인생의 길을 통째로 잃어버린 듯한 막막함과 상실감에 시달렸다. 내가 서 있을 곳은 애초에 없었는지도 몰랐다. 나만 뒤처진 시간을 살다 왔다는 자각을 그제야 하고 있었다.

빠르게 변해가는 한국생활에 도무지 적응하지 못하며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지 아무것도 몰랐다. 깜깜한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나는 한동안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여러 명상센터를 정신없이 쫓아다녔다. 닥치는 대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지 일 년쯤 지나자 차츰 정신이 맑아졌다. 하루는 산기슭 어딘가에서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와 나의 동료들은 스승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구하고 있었다. 불현듯 나의 내면에서 질문 하나가 솟구쳤다. 

'그나저나 말이야, 그런데 나는 평생 이렇게 남에게서 답을 구하며 살아야 하나?' 

나는 왜 내 인생의 답을 일일이 남에게서 구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그렇다면 나의 인생이라는 건 어디에 있는가? 



지금 떠나지 않으면 미칠지도 몰라

17개월의 백수 생활 중 나는 또다시 막막한 어둠에 휩싸이고 만 것 같았다. 더 이상 명상도 답이 아니었다. 이젠 어떻게 발을 내디뎌야 하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또다시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문득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경험을 하기란 여행이 최고였다. 어차피  어차피 한국에 있어봤자 하고 싶은 게 뭔지 뭘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가만히 앉아서 미치느니 길을 떠나서 미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나는 즉시 배낭을 꾸렸다그간 숱하게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지만  돌아올 집과 날짜가 정해진 여행이었. 이번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다. 돌아올 날도 기약 없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지 또한 정해놓지 않았다. 인생에 한번쯤은 그저 닥치는 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오롯이 스스로에게 의지하며 여정을 이어가기로 결심했

직장에 다닐 적 저축해 둔 돈으로 여행경비를 충당하면 될 것이다. 하기사 돈이 떨어지면 어디 가서 접시라도 닦으면 되니 걱정할 건 없겠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다니다가 여행이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 그 '때'가 느껴지면 집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머잖아 나는 10만 원짜리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던 4월, 서른여섯 살의 봄이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