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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선 May 15. 2022

시베리아 횡단 열차, 괴팍한 승무원을 만났다


드디어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랐다

겨울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 지평선 저 너머까지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장관을 볼 수 있다. 여름엔 수천 년을 이어왔음직한 오래된 숲의 녹음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그런데 4월, 지금 내가 떠나온 이 계절엔 이미 눈이 다 녹았으니 분명 겨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초록빛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으니 봄도 아니었다. 한국처럼 러시아도 봄이 한창이겠다 싶어 떠나온 길이었는데, 실제론 일 년 중 가장 애매한 계절에 여행길에 오른 셈이었다.


이번 유라시아 대륙 여행의 첫 목적지는 블라디보스토크였다.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는 그 유명한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출발지이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러시아 열차에 탑승했다. 

오후 5시경 텅 빈 채로 출발한 객차는 정차할 때마다 사람을 하나, 둘 싣기 시작했다. 침대 선반 꼭대기에는 소비에트 연방(1991년에 해체) 시절부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몹시 낡은 담요와 매트가 놓여 있었다. 승객들은 열차에 오르자마자 선반에 비치된 담요와 매트를 끄집어 내린 후 승무원이 나눠 준 하얀 면 시트를 씌워 능숙하게 자신들의 잠자리를 만들었다. 

내가 생긴 것과는 안 어울리게 결벽증이 약간 아주 약간 있다. 특히 침구류에 예민해서 여행을 나설 때마다 비록 옷은 단벌일지언정 침낭만은 신줏단지 모시듯 싸 짊어지고 다녔다. 내 침낭이 아니라면 좀처럼 잠을 이루기 어려웠고 반대로 내 침낭과 함께라면 3달러짜리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싸구려 숙소에서도 단잠을 이루었다.

나는 차마 저 낡은 담요와 매트를 꺼내 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저걸 내리다가는 수북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쓸 것만 같았다. 대신 물티슈를 꺼내 침대 바닥을 훑은 뒤 깨끗하고 빳빳한 흰색 면 시트만 깔고서 그 위에 내 신줏단지 침낭을 올려놓았다. 낡은 열차 상태를 보아하니 화장실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았다. 열차에서 내릴 때까지 물을 포함 일체의 곡기를 끊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겨우 12시간만 버티면 되었다. 어느덧 창 밖으로 분홍 빛 노을이 깔리고 태양은 사력을 다하듯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밤새도록 내달린 기차는 새벽 동틀 무렵 목적지인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하바롭스크에서 시베리아 강추위를 맛보며 며칠 여행한 다음 다시 기차에 올라탔다. 다음 목적지인 울란우데까지 무려 50시간에 이르는 대장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 안에서 여섯 끼를 해결해야 했다. 지난번처럼 곡기를 끊으며 버티기란 불가능했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나는 하바롭스크의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을 훑으며 먹거리를 쟁였다. 라면, 흘렙(빵), 소시지, 치즈, 버터, 잼, 요구르트, 커피, 우유, 비스킷, 사탕, 누룽지, 사과 한 봉지, 오이피클 한 병까지 준비는 완벽했다. 크림반도 사태로 루블화 환율이 반토막난 상태라 각종 유제품 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저렴했고 게다가 종류까지 다양했다.


쁠라치까르뜨늬 침대칸을 타면 오른쪽 창으로 해 뜨는 모습을 왼쪽 창으로 해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50시간의 기차여행, 승무원을 잘 못 만났다

러시아 열차에는 바곤이라고 불리는 객차가 여러개 있었고 객차마다 담당 승무원이 존재했다. 승무원들은 대개 여성이었고 제복을 입은 절도 있는 모습으로 승객들이 기차에 오르면 검표를 실시하고 침대 시트를 나누어 주었다. 간단한 먹거리를 팔거나 때때로 청소도 하며 각종 민원 해결까지 도맡는 객차의 총책임자였다. 특히 놀라운 건 이들 승무원이 그 많은 승객들의 목적지를 일일이 체크하고 있다가 내려야 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알려준다는 점이었다. 대체 그들의 기억력은 어디까지일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하바롭스크에서 울란우데까지 50시간 기차를 타던 날, 나는 하필 성질 고약한 승무원을 만나고 말았다.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큰 체격을 가진 금발의 50대 아주머니 승무원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기차여행 내내 나를 졸졸 따라다녔고 참견을 일삼으며 괴롭혀댔다.

아까도 말했듯이 약간 아주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나는 웬만해선 공중화장실 이용을 자제하는 편이었다. 특히 기차 화장실은 되도록 사용을 꺼려했는데 이번처럼 긴 여행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다 마침내 화장실을 이용하기로 용기를 내었다. 막상 기차 화장실은 생각보다 깨끗해서 적잖이 마음이 놓였지만 문제는 내가 사용법을 모른다는 거였다. 물 내림 버튼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고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 줄도 몰랐다. 나는 자연스럽게 승무원에게 화장실 사용법을 물어보았는데 이게 패착이 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여태 이것도 모르고 뭐 했냐는 듯 무섭고 엄숙한 얼굴 표정을 짓더니 안 그래도 우렁찬 목소리를 더 크게 내지르며 사용법을 일러 주었다. 마치 나는 잘못을 단단히 저지르고 난 뒤 선생님께 혼나는 학생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혹여 내가 뜨거운 물을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기라도 하면 승무원은 어느새 내 옆에 와 있었다. 혹시라도 내가 주변을 어지럽힐까 어쩔까 매의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서 있었다. 객차를 청소하다가도 내가 있는 곳으로 오면 커튼을 이렇게 쳐라 저렇게 쳐라, 창문을 닫아라 열어라, 신발을 이렇게 놓아라 저렇게 놓아라 쉴 새 없이 잔소리를 해댔다. 객차를 통틀어 외국인은 나 밖에 없었고 뭘 하든 검은 머리의 나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호시탐탐 야단 칠 건수만 노리는 하이에나 같아서 괜스레 내 마음은 위축되었다. 한편으론 부아도 슬슬 치밀어 오르는 중이었다.


기차는 때때로 역에 20~30분씩 정차했다. 안내방송이 나오면 사람들은 탈옥을 감행하듯 우루루 한꺼번에 바깥으로 쏟아져 나갔다. 처음에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서 '사람들이 왜 갑자기 나가지? 기차는 왜 안 떠나는 거지? 이제나 저제나 출발하려나' 멀뚱멀뚱 기다리기만 했었다. 나는 머지않아 이게 일종의 휴식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기차가 정차하면 역 주변 마을 사람들은 때를 맞춰서 먹거리를 팔러 행상 나왔다. 승객들은 나가서 담배를 피우거나 먹거리를 사서 간단하게 요기를 해결했다.

한참을 달리던 기차에서 또다시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내 사람들은 부산스러워졌고 나 역시 내릴 준비를 했다. 기차 안에만 있는 게 갑갑해서 다리도 풀 겸 플랫폼을 좀 거닐고 싶었다. 신발을 찾아 신고 궁둥이를 들썩들썩 나갈 낌새를 보이자 나를 감시하던 승무원 아주머니의 레이더망이 작동했다.

"대체 왜 나가려고 하니? 어디 가려고? 객차 번호 확인했어? 늦지 마!  늦으면 너 떼 놓고 갈 거야."

그녀는 또다시 다섯 살 꼬마 훈계하 듯 유독 내 앞에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듣다 듣다 이번엔 나도 성질이 확 돋아 버렸다.

"돌아오든지 말든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끄세요!"

미처 문장을 다듬을 틈도 없이 입이 열리는 대로 나는 순식간에 쏘아붙이고 말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상황을 지켜보던 내 앞자리 아저씨가 거들고 나섰다. 승무원을 향해 "얘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말라"며 한마디 했고, 나에게는 "저 승무원이 성격이 무뚝뚝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하라"는 말을 건넸다. 버럭하고 났더니 솔직히 내 속은 좀 시원해 졌다. 

나는 재빨리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맘껏 들이켰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혹여라도 기차가 나를 떼어놓고 출발할까 어쩔까 플랫폼을 걸으면서도 내내 뒤돌아 위치를 확인했다. 조금밖에 안 걸은 듯한데 기차는 왜 이리도 긴 건지, 출발 시간을 10여분 앞두고는 걷는 둥 뛰는 둥 하며 허겁지겁 객차로 돌아왔다.

이후부터 승무원은 다소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를 못마땅해하는 듯했다. 지루함도 지루함이었지만 이상한 승무원을 만나는 바람에 기차여행의 피곤이 배가 되었다. 앞으로 절대 24시간 이상은 기차를 타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긴긴 여정 끝에 드디어 기차는 울란우데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리한 기차여행도 끝나가고 마침내 괴팍한 승무원의 마수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도착 시간이 임박해 오자 그동안 나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승무원의 태도가 갑자기 이상하리만치 달라졌다. 그녀는 내 침대로 다가오더니 한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도착 시간을 일깨워 주었다. 빠뜨린 짐은 없는지, 침구류 반납은 잘 되었는지 나 대신 꼼꼼히 살폈다. 내가 배낭을 짊어지고 문 앞에 섰을 땐 몸 건강히 여행 잘 하라며 내 어깨를 살포시 끌어안기까지 했다.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것도 같았다. 

나는 갑자기 너무나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이 급격한 변화는 무엇이고 왜일까? 나를 잡아먹을 듯 다그치던 그녀의 태도도 이해가 안 되었지만, 급작스럽게 친절을 보이는 건 더더욱 이해가 안 되었다.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괴팍한 승무원과의 엔딩이었다.



우리가 굳이 웃어야 될까?

그 괴팍하던 승무원 아주머니를 이해하게 된 건 러시아 여행이 시작된 지 한 달이 훨씬 지나서였다.

  
바이칼 알혼 섬에 들렀을 때 우연히 만나 함께 여행하며 절친이 된 러시아인 타냐가 있었다. 타냐는 50대의 여성으로 첫인상은 전형적인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시민)였다. 고등교육을 받은 게 틀림없는 도도하고 교양 있는 태도와 차가운 금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취미는 프랑스어였고 말투는 직설적이었으며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게 특징이었다. 타냐는 바이칼 호수 여행을 끝낸 뒤 곧장 모스크바로 돌아간 반면 나는 여행을 계속한 뒤 드디어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타냐는 내가 모스크바에 있는 동안 그녀의 집에 머물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며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타냐를 만나자마자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촉새처럼 떠들어대다 말고, 문득 40일 넘게 러시아를 여행하며 느낀 소회 하나를 털어놓았다.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길 러시아 사람들이 차갑다고들 하잖아요. 난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내면 지낼수록 아, 러시아 사람들이 참 무뚝뚝하구나 싶더라고요. 특히 기차역이나 시장 등 공공장소에서 누구 하나 미소 짓거나 웃거나 친절히 응대하는 사람이 없대요."

그러자 타냐가 말했다.

"왜 웃을 기분이 아닌데 웃어야 하지? 미국 애들처럼 늘 헤헤거리고 있는 거, 그게 정신이 나간 거 아냐? 그런 건 가식이야. 사람은 자기가 웃고 싶을 때 웃는 거야."

의미 없는 자본주의의 미소 따위는 철저히 거부한다는 웃음에 관한 확연히 다른 시각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 번은 인사동 보리밥 집에서 뚝배기와 동동주를 팔이 부러져라 나르고 있을 때였다. 분명 일 시작 전에는 '오늘은 친절해야지 친절해야지'하고 다짐했지만 몰려드는 손님 주문을 받고 쉴 새 없이 음식과 빈 그릇을 나르고 치우고 하다 보면 이내 각오가 무색해졌다. 손님이 "무슨 술이 맛있나요?"하고 물어오면 "안 마셔봐서 모르겠는데요." 하는 식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나갔다. 그 소주가 그 소주지,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뭐 저런 거까지 물어보나 싶었다. 일이 끝나고 경복궁 돌담길을 따라 집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왜 오늘도 친절하지 못했을까' 여지없이 자책의 시간을 가졌다. 몸이 힘든 거야 어쩔 수 없는 거고, 서비스업이니 무조건 웃고 친절해야 한다는 원칙에 일말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었다. 그저 그러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할 뿐이었다. 

요즘은 편의점 종업원이 불친절하게 응대했다는 이유로 불을 지르고 살인을 벌이는 시대가 되었다. 전화 상담원의 말투가 퉁명스럽다 싶으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에게 기분이 상하고 만다. 누군가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은 응당 내 존재가 무시받는 처사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한쪽에선 나의 기분과 가치를 좌우할 열쇠를 상대의 손에 쥐여 둔 셈이고, 다른 쪽에선 억지로 쥐어짜 낸 웃음을 지으며 속은 문드러지는 고통을 받고 있는 건 아닐까?


타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녀가 달맞이꽃처럼 환하게 웃을 때가 있었다. 그럼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우리 타냐 언니 진짜 기분 좋은가 보네' 타냐의 웃음은 그 의미가 명확했고 확실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녀의 함박웃음을 보다가 불현듯 그때 그 괴팍했던 울란우데행 기차 승무원 아주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당시 나는 승무원이 왜 화가 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화가 나 있다고 생각했었다. 곰곰이 따져봐도 내가 딱히 잘 못한 건 없는 것 같아 이거 일종의 인종차별 인가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승무원 아주머니는 말할 때 웃고 있지 않았다. 평소에도 딱딱하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선 다른 사람에게도 거칠게 얘기했다. 웃어 보이지 않으니 나에게 화가 났고, 다다다닥 쏘아대는 말투를 들으니 나를 무시한다고 단정했다. 어쩌면 그녀는 나를 무시하는 것도 나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을 수 있었다. 내 앞에 앉았던 아저씨의 말처럼, 단순히 그녀는 러시아인 중에서도 다소 무뚝뚝한 축에 속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작별할 때 보여 준 승무원의 태도를 비로소 이해할 것 같았다. 작은 체구로 큰 배낭을 짊어진 나의 모습이 안쓰럽게 보였을 수도 있고, 막상 헤어질 때가 오자 사흘간 쌓인 정도 있고 걱정되는 마음도 들고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녀의 잔소리는 어쩌면 "내가 관심을 가지고 너를 보살피고 있다”는 다른 방식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치 퍼즐이 맞추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으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왜 당연해야 하는지 멈춰 서게끔 만드는 순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는 재미있는 나라였다. 공산주의 속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일한 세대와 자본주의 하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가 동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나라. 이곳에선 내가 지금껏 무심코 행동하고 사고해왔던 자본주의적 습성을 인식하게 될 기회가 적잖이 있었다. 문득 미국인들 특유의 활기찬 인사말에 관련된 우스갯소리가 생각났다.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세요?"
"글쎄, 지난주에 남편이 창문으로 떨어져 자살했지 뭐예요."
"와우 너무 좋은 소식이네요.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길 바랄게요!"
상대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는, 상대에게 아무런 관심없이 의례적 관계를 남발하는 세태를 꼬집는 이야기였다

과연 서로에게 항상 친절한 척하는 게 좋은 일일까, 아니면 진심으로 때때로 친절한 게 좋은 일일까? 정답은 없겠지만 아니 해답은 그때 그때 다를 수 있겠지만 이것만은 염두에 두어야겠다. 설령 남이 나에게 웃어 보이지 않는다 해도 혹은 통명스럽게 대한다 해도 상대에게는 충분히 그럴 권리가 있고 그럴 자유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분을 불편하게 감추거나 혹은 상대 기분에 맞추려 자신을 기망하면서까지 억지로 표정을 꾸미는 건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자신은 속이고 남은 그렇게까지 신경쓰며 살아야 하나? 그냥 자연스러우면 되는 거 아닐까?


친구 타냐 환한 웃음을 지을 때마다 그녀의 행복에 겨운 기분이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오곤 했다. 진짜 웃는  웃는  맞는 웃음을  때면 나의 감정과 생각에도 가식이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타냐가 때때로 지어 보이는 웃음을 보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웃음보다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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