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배가 어제부터 더부룩하다. 깔끔한 성격의 할매는 섬망으로 헛걸 보는 와중에도 기저귀에 대변 누는 걸 한사코 거부한다. 대변을 못 누니 식사량이 형편없다. 비워야 뭘 먹지. 식사량이 없으니 기운은 자꾸만 쇠락해 간다. 그러니까 할매가 병원 입원한 지 꼭 아흐레째, 마침내 관장을 했다. 그제야 속이 편안해진 모양이다. 근데 그 과정이 많이 속상했던지 힘들어하셨다.
"고마 숨 쉬는 것도 귀찮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할매 똥은 제가 천 번도 쳐드릴 수 있으니 이렇게 우리 옆에만 계셔도 좋다고. 그러니까 비로소 할매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남의 손에 대변까지 맡겨야 하는 그 과정이 미안하고 자존심 상했던가 보다. 그간 할매의 그런 맘도 모르고 내가 막 쳐주껴 버린 게 얼마나 뒤늦게 죄송스러운지 모른다. 할매같이 바다처럼 넓고 햇살처럼 따뜻한 분께 왜 그리 모욕적인 언사를 했는지... 죄송스러웠다. 할매요 참 죄송해요, 진짜 진짜 죄송해요.
"저는 그냥 지금처럼 할매가 우리 옆에 존재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좋아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옆에 늘 계시던 분이라 할매가 안 계신 이 세상은 상상이 안 돼요. 똥이고 오줌이고 열 번 백번도 아니 천 번도 더 쳐드릴 테니까 저희 곁에 오래오래만 계셔 주세요, 백살 넘으셔도 좀 계셔주세요. 할매 그래도 두 다리로 걸으셔서 건강을 찾으셔서 여생을 지내다 가셔야지요. 할매 꼭 꼭 백 살이 넘으시도록 우리 손녀사위들 다 면접 보시고 증손주들 다 돌 축하해 주시고 그렇게 오래오래 저희 곁에 있어 주세요!"
할매가 두 번째 대퇴부 수술을 한지 일주일도 안 될 때였다. 수술 전만 해도 정신이 비교적 맑았는데 수술 후 할매는 급격히 몸도 정신도 상태가 퇴보하고 있었다. 그때 썼던 병상 일기였다.
할매는 마음이 참 따뜻했다. 그래서인지 다정한 말을 들으면 유독 더 좋아하셨다. 그래서 할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가능했다. 재미도 있었다.
그때처럼 할매가 다시 일어나길 바라던 그 절박한 심정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할매가 돌아가시고 일기를 뒤적거리고 나서야 한때 내 마음이 어땠나를 알 수 있었다. 막상 할매가 다시 병상에서 일어나고 보행기에 의존해서나마 걸을 수 있게 되었는데 시큰둥했다. 더 잘 걸으시라고, 시키는 대로 왜 안 하시냐고 할매를 다그치고 야단하기 일쑤였다. 할매가 얼마나 인내심이 강한 사람인지 잊어버렸다. 다시 일어서 걷기까지 할매가 얼마나 아파하고 힘들었는지 그냥 다 잊어버렸다.
"도대체 모든 걸 남의 손을 빌려야 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부모님께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할매가 옆에서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할매가 거실에 계셨는지, 주무시고 계셨는지 아니면 방에 계셨는지 기억도 없다. 이미 할매는 내 안중에 없었던가 보다.
할매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의 가치는 뭘 해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할매의 빈자리는 아무것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다. 단순한 상실의 슬픔이라서가 아니라 할매가 계신다면 계시기만 한다면 정말로 병수발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5년 전 그때처럼 말이다.
다정한 말 한마디가 때론 어떤 약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잘 치료한다. 결국 다정함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다정함이고 할 줄 아는 것도 다정함이다. 다정하자. 다정하자. 다정한 사람이 되자. 다정하게 말하고 다정하게 행동하자. 다정하게 건넨 말 한마디가 어떤 약보다 먼저 아픈 마음과 아픈 몸을 어루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