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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Dec 20. 2018

에어비앤비에는 없고 호텔에만 있는 것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 마지막 이야기

'살아보는 여행'의 또 다른 이면

당신은 지금 마음이 복잡하고, 잠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결국 어디론가 떠날 결심을 하고, 본격적으로 숙소 예약에 나선다. 호텔과 에어비앤비의 4박 치 숙박료를 비교해 보니, 이게 웬걸. 에어비앤비가 100불이나 저렴하다. 망설임 없이 예약 버튼을 누르고 훌쩍 떠나왔다. 그런데 막상 숙소에 도착해 보니,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숙소 소개에 현지인과의 만남을 강조했던 호스트는, 막상 체크인 당일에는 코빼기도 볼 수 없다. 에어비앤비 메시지로 도어록 비밀번호를 전해준 그녀의 정체는, 사실 현지인인지 부동산업자인지 분간할 방법조차 없다. 방청소를 누군가가 해줄 리 없으니, 이틀째부터는 객실과 주방은 물론 화장실 청소까지 대충이라도 해야 한다. 참, 호스트가 신신당부했던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도 잊지 말고 챙겨야 한다. 신선한 식재료로 장을 봐서 해 먹는 아침식사도 처음에는 재밌지만, 며칠 지나니 음식물 처리와 설거지의 무한반복에 슬슬 진이 빠진다. 




호놀룰루에서 묵었던 슈퍼 호스트의 에어비앤비. 이전 손님이 체크아웃한 지 1시간 만에 입실했으니, 청소가 거의 되어있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저 많은 쿠션을 세탁할 리도 없고.


'얘가 누구야?'라는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아파트 주민의 눈치를 보며 1층의 코인 세탁기에 동전을 넣는 순간, 한숨이 푹 나온다. 이러려고 여기까지 왔나? 에어비앤비는 여행과 휴식에 집중하기도 모자란 에너지를 '일상'이라는 허울로 갉아먹고 있었다. 이것은 전 세계 10여 개 도시에서 50박 이상의 에어비앤비를 거쳐온 내가, 하와이와 뉴욕에서 겪었던 실제 경험을 쓴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Live there'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살아보는 여행을 내세운다. 그러나 우리가 매번 '살기 위해' 여행을 떠나지는 않는다. 현실 세계에 우리의 삶이 있는데, 굳이 큰돈과 시간을 지불하며 일상을 여행지까지 이고 갈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서도 TV 광고로 장기간 방영된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캠페인은, 그들이 주류 호텔산업과 선을 긋는 영리한 프레임으로 다가온다. 여행을 '무엇'으로 정의한 데는, 반드시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내 관점에서는, 호텔에 묵는 여행은 구시대의 '관광'이고 에어비앤비에서 살아봐야 진짜 여행이라는 메시지로 다분히 읽힌다. 그러나 에어비앤비는 전 세계 대도시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현지 문화와의 괴리도 심각하게 벌어져 있다는 사실이 많은 외신 매체에서 지적된 바 있다. 


물론 에어비앤비냐, 호텔이냐의 해묵은 논쟁을 꺼내들 생각은 없다. 나 역시 여행을 왜, 어디로 떠나는지에 따라 호텔과 에어비앤비를 선택적으로 예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락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장받는 여행을 원한다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호텔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여행경비를 절약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직장인의 한정된 자유여행에서 비용의 우선순위는, 우리의 여행을 얼마나 효율적이고 쾌적하게 디자인하는지와 직결된다. 앞서 나는 100불을 아끼려다, 휴식과 에너지 충전의 기회를 모두 놓쳤다. 호텔에는 그 100불 이상의 가치를 충분히 하는 서비스가 곳곳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탓이다. 






Epilogue. '나는 호텔을 여행하다' 매거진 연재를 마치며

호텔을 탐험해온 지난 5년은 에어비앤비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시기와도 일치한다. 에어비앤비는 호텔업계 1위 힐튼의 기업가치를 넘어선 세계 최대의 숙박 서비스로 올라섰고, 호텔업계는 에어비앤비를 강력한 경쟁자로 인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호텔업계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고 변화에 보수적이다. 여행자가 천편일률의 숙박 서비스를 외면하고 현지인의 집에서 묵는 불편한 여행을 기꺼이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면을 치열하게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아직도 더디다. 


호텔은 여전히 여행자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주는가? 업계 종사자가 아닌 호텔을 사랑하는 여행자로서, 이에 대한 나름의 답을 공유하기 위해 책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를 썼다. 책에는 평소 호텔을 이용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잘 반영한 30여 곳의 호텔을 주제별로 선별해 실었다. 따라서 책은 호텔의 부대시설을 소개하거나 특정 호텔을 추천하는 여행서는 아니다. '여행에서 호텔이 이런 역할도 할 수 있구나'라는 환기를 일으키고자, 호텔을 중심으로 여행하는 과정을 단편적으로나마 풀어냈다. 또한 호텔업계 종사자에게는 '위치가 좋지 않은 호텔이라도 이런 점 때문에 고객은 찾아오는구나', '럭셔리의 개념이 많이 달라지고 있구나'와 같은 숨겨진 메시지가 전달된다면 기쁠 것 같다. 본 매거진에서는 책에 실었던 원고 중 일부와, 책에 미처 싣지 못했거나 지면 부족으로 줄여야 했던 원고 등 총 10편을 소개했다. 


나의 호텔 프로젝트는 이제 겨우 시작이다. 향후 10년간은 기존의 호텔학이나 관광학의 범주를 넘어, 급변하는 여행 소비 트렌드에 초점을 맞춘 여가와 호텔 문화를 꾸준히 연구하고 강의하려고 한다. 그리고 책과 매거진에 담지 못한 호텔 여행의 다양한 이야기는 브런치, 그리고 MBC 라디오 '여행의 맛'(매주 토요일 방송)에 4주간 출연하여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한다. 호텔 여행의 멋진 세계에 들어오신 분들과 앞으로도 꾸준히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짧지만 행복했던 매거진 연재를 마친다. 또한 본 매거진에는 더이상 글이 업데이트되지 않으므로, 매거진 구독이 아닌 브런치 메인 https://brunch.co.kr/@nonie1 에서 '구독하기'를 눌러야 새 글을 받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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