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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Dec 13. 2018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여행 비서, 컨시어지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 아홉 번째 이야기

컨시어지는 유독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호텔 서비스 중 하나다. 컨시어지의 사전적인 정의는 '안내원'이라는 뜻이지만, 호텔에서는 단순히 안내원이 아니라 마치 만능 해결사와도 가까운 역할이다. 프런트 데스크가 체크인과 체크아웃과 같은 객실 관리를 담당한다면, 컨시어지는 고객의 여행 전체를 돌보아주기 위한 별도의 인력이다. 전통적인 환대산업인 호텔에서, 컨시어지는 상징과도 같은 서비스다. 만약 지금 묵고 있는 호텔에서 보살핌(care) 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당신의 호텔 컨시어지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오볼로 1888 시드니 호텔. 달링 하버 근처에 있어 관광과 현지 체험에 편리한 위치다. 


시드니의 달링하버 근처에 오픈한 아름다운 부티크 호텔, 오볼로 1888 호텔에 체크인했을 때의 일이다. 멜버른에서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로 오느라 온 하루를 '이동'에 다 소모했더니, 호텔에 도착했을 때 많이 지쳐 있었다. 그날 제대로 챙겨 먹은 끼니가 호텔에서 먹은 조식 이후로 없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직원이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다른 질문을 하고 있는데 "저녁시간이 다 되었는데, 혹시 배는 안 고프세요?"라며 조심스레 질문을 건넨다. "음, 혹시 일식을 좋아하시면, 제가 거의 매일 가는 식당이 바로 근처에 있어요. 초밥이 참 맛있답니다"라며 지도에 표시를 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건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었는데 말이다. 


그녀의 배려와 센스 덕분에, 현지인으로 빈자리가 없는 인기 초밥집의 롤을 포장해오는 데 성공했다. 또한 그녀가 귀띔해 준 호텔 옆 아시안 마켓에서, 2주간의 긴 여행으로 지친 내 입맛을 달래줄 한국 라면과 맥주도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호주 여행을 해본 이들은 잘 알겠지만, 호주에서는 허가받은 리퀴어 숍이 아니면 어디서도 술을 팔지 않는다. 덕분에 호주 남부에서 생산된 로컬 맥주와 맛있는 초밥으로, 푸짐하게 저녁을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24시간 내 여행에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이들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호텔 1층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그들은 언제나 내 여행에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랭햄 플레이스 뉴욕 피프스 애비뉴. 객실에서 5번가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뉴욕 5번가에 있는 랭햄 플레이스 호텔에 체크인한 다음 날 아침, 로비에 있는 컨시어지로 향했다. 처음으로 브루클린에 가려는데, 초행길이다 보니 구글맵으로 파악한 경로가 맞는지 직원에게 묻기 위해서였다. 첫날 체크인할 때는 만나지 못했던 한국인 매니저 님을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 뉴욕에 있는 수많은 호텔 중 랭햄 플레이스에서 한국인 직원과 만난 것도 참으로 신기한 인연이다. 그녀의 도움으로 자세한 교통편과 함께 뉴욕 대중교통의 전반적인 이용법을 상세히 안내받을 수 있었다. 


특히 랭햄 플레이스에서 머물던 날은 무려 1달간의 미국 여행을 하고 난 마지막 3일이어서, 심리적이나 체력적으로 많이 지쳐있을 때였다. 그런 내 표정이 언뜻 보였는지, 그녀는 호텔 옆 한인 타운에서 자신이 자주 간다는 한식집 몇 군데를 추천해 주었다. 덕분에 스마트폰 지도에 찍어둔 수 백 곳의 뉴욕 맛집 리스트는 모두 버리고, 따뜻한 쌀밥과 김치찌개 한 그릇에 금세 원기를 되찾았다. 뉴욕까지 와서 한식으로 저녁을 먹었다지만,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 내일 아침이면 미슐랭 가이드에 등재된 호텔 1층의 레스토랑에서, 멋진 조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8월, 영국 가디언 지에 보도된 기사. 몰디브의 한 리조트에서 책방 관리 및 독서 전문가를 채용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호텔의 고전적인 서비스를 대표하던 컨시어지 역시, 시대의 흐름과 함께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의 피스터 호텔에서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 드립니다'라는 새로운 콘셉트의 컨시어지를 실험하기도 했다. 고객에게 뭔가를 알려줘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현대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는 숨겨진 욕구에 주목한 것이다. 또한 몰디브의 고급 리조트인 소네바 푸쉬에서는 고객들이 휴양 중에 독서를 많이 하는 점에 착안해 호텔 내에 서점을 만들고 독서 관련 컨시어지 인력을 공개 채용했다. 그들은 투숙객과 상담하면서 개인에게 맞는 책을 추천해 준다고 한다. 앞으로 태어날 새로운 호텔에서는 또 어떤 형태의 컨시어지가 생겨날까? 앞으로는 전통적인 호텔리어에서 벗어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컨시어지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빠르게 진화하는 여행자의 니즈에 맞추어 새롭게 탄생하게 될 호텔 컨시어지 서비스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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