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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영 nonie Oct 24. 2021

영혼 없는 일자리, 그리고 영혼 없는 여행의 부활

불쉿 잡은 어떤 여행을 소비하게 하는가

현재 여행업계를 둘러싼 환경은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길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다. 여행 분야의 신규 창업은 모두 IT 기술 위에서 탄생하고 있으며, 업계에서 오래 종사한 이들도 기존의 기술과 경력을 미래에 적용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질 정도로 변화의 폭은 가파르다. 이러한 변화의 문턱에서 수많은 교육과 외부 기고를 쳐내다 보니, 두어 달간은 브런치에 글쓰기 버튼을 누를 여유가 없었다. 스스로도 일을 정리하고 방향성을 다잡기 위해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주말에 읽은 책 <불쉿 잡>의 저자, 故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지금의 자본주의는 사회적으로 무의미한 일자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개인의 영혼을 파괴하는 사회를 만든다"라고 말한다.


급속히 자동화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 시간은 줄어드는데,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신규 대졸 인력은 9 to 6 직장을 위해서만 경쟁하기존 인력은 애써 버티고 있다.  속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 불쉿 잡이 만들어진다. 불쉿 잡이란 구태의연한 조직 구조를 유지하거나 자본 기득권의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동원되지만 사회적 효용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일을 말한다. 지배자의 하인, 중간관리자, 소비자를 속이는 상담자나 광고집행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일은 필연적으로 '무목적성' 띄고 종종 사내 정치를 유발하며, 장기적으로 몸담게 되면 인간성을 파괴하고 창조적인 일에 접근하지 못하게 만든다. 최근  기업에서 발생한 사내 갑질 사건 등이 자동으로 연상되는 대목이다.


그래서, 스펙 경쟁을 통해 서열화된 사회에서 진로를 결정한 이들이 무기력이나 불만족을 느끼는 포인트는 돈이 아니다. 요즘도 커리어 코칭을 해보면 대기업, 외국계는 물론 전문직마저도 자신의 일이 무목적 또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 멋져 보이는' 일을 갈망한다고 털어놓는다.  멋져 보이는 일이란, '사회적으로 의미도 있고 창조적인' 일을 말한다. 다시 말해 무의미한 을 ''으로 보상할 수 있는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가 않다. 우리가 입사  언제부터 월요일을 기피하게 되는지 생각해보면 쉽다.


나 역시 독립적인 직업을 갖고 있지만 공공기관이나 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강의라는 업의 속성상 영혼 없는 프로젝트에 동원되거나 그럴 뻔한 경험이 종종 있다. 지자체 관광 자문 회의처럼, '회의를 했다는 결과 보고서'를 위한 회의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을 때 자괴감을 느낀다. 몇 차례 참석한 이후로는 그런 자리는 가지 않는다. 업의 의미와 방향성을 항상 의식하고 있어야만, 관성에 빠지거나 보수만 좇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영혼없는 일에 쓰게 되면, 여가도 주체적으로 설계하기 어려워지는 이유는 뭘까? 사회적 의미가 상실된, '일을 위한 일'을 지속하다 보면 삶의 목적도 함께 잃기 쉽다. 이 상태에서는 창조적이거나 이타적인 일은 복잡하게 느껴진다. 단편적인 재미를 추구하거나 일상을 탈출하는 등 일 외적인 영역에서 보상심리가 작동하게 된다.('이렇게 힘들게 버는데, 이 정도는 써야지') 또한 이러한 니즈에 맞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여가 산업이 발달한다. 여행산업 또한 그 사회의 욕구를 그대로 반영한다.


지금 사이판에 '제주도보다 한국인이 많다'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 트래블 버블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소셜커머스에는 9 9 원짜리 유럽 여행이 출몰했다. 현지 여행사에게 옵션 관광과 쇼핑 투어를 떠안기는 저가 패키지의 부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여행업 내의 불쉿 잡도 그대로 부활할 기세다.

상담과 판매 유도("손님, 이제 잔여석이 거의 없습니다")를 위해 여행사들은 또다시 자회사와 하청업체 등을 가동하고 있고, 이전보다 심해질 감정노동은 고스란히 인간의 몫으로 남게 됐다. (혹시 이걸 디지털 전환에 대항하는 '휴먼 터치' 경쟁력이라고 여기는 건 아니겠지 설마.) 코로나 초기부터 팟캐스트를 통해 '여행사는 입출국의 복잡성을 처리해주는 일을 맡게 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은 현실화되고 있다.


만약 우리에게도 생계와 노동을 분리시켜   있는 보편적인 복지 사회가 찾아온다면? 누구에게나 두어  정도의 바캉스를 운용할  있는 권리가 생긴다면? 1주일간 7개국을 돌아야 하거나 10만원을 상품가로 내놓고 150만원어치 옵션 관광을 시키는 뒤틀린 구조의 여행은 존재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지식인이자 생전에 월가 운동을 이끌었던 혁명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관료의 수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말한다. 그런 세상을 원해서 스스로 만들어간 나라의 여행과, 그런 세상이 우리 것은 아니라고 지레 포기하거나 순응한 나라의 여행은 다를 수밖에 없는  같다. 우리는 어느 이어야 할까. 나는 떤 삶과 여행을 꿈꾸어야 할까. 이번 주말은 그런 생각을 하며 흘러간다.





김다영 | nonie 강사 소개 홈페이지 

- 책 <여행의 미래>,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 <스마트한 여행의 조건> 저자

- 현 여행 교육 회사 '히치하이커' 대표

- 한국과학기술인력개발원 등 100여개 기업 출강, 2019년 Best Teaching Award 수상


지난 10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행산업의 변화를 여행으로 직접 탐구하고, 가장 나다운 직업을 만들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임직원의 스마트한 여행을 책임지는 강사로, 여행업계에서는 산업 칼럼니스트와 트렌드 분석가로 일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일을 '나답게' 찾아가는 과정을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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