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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Oct 13. 2021

동생 결혼하는 동안 뭐하고 살았느냐고요?

명절 대환장 파티 후기

 동생이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이런 수모를 겪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때 애정을 나누던 이들이 홱 하고 '자존감 갈취자'로 돌변한다. 얼굴도 모르는 친척의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큰아빠, 큰엄마와의 대화.


큰엄마 : "으구, 너는 동생 결혼한다는 동안 뭐했어?"
나 : "책 쓰고 집 샀죠."
큰아빠 : "쯧쯧, 그게 잘 사는 거냐?"

 

 나는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러면 사촌 누구처럼 준비도 안 됐는데 덜컥 애 생겨서 결혼하고도 부모 집에 얹혀 살면 잘 사는 건가요?" 되묻고도 싶었는데 그런다고 마음이 가라앉았을 것 같지도 않다. 구구절절 내 삶을 증명하려 했던 내 모습도 구차해 화가 났다. 나는 왜 "책 쓰고 집 샀죠"라 나의 성취로 무례한 언사를 틀어막으려 했을까. 남들 결혼하고 애 낳는 동안 뭐라도 더 이뤄야 한다는 압박이 내 안에 있었던 건 아닐까. 결혼하지 않은 내 삶을 변명해야하처지 비참했다.


 얼마 전 명절 때 외가에서의 트라우마는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화를 삭힌다. 친척들과 인사를 나눈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둘째 외삼촌은 내게 "너는 동생 결혼하는 동안 뭐하고 살았냐"고 했다. 설마 누가 또 이상한 소리를 할까 하는 마음으로 찾은 외가였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말 하시면 저 다시 안 오고 싶어요"

 

 외삼촌은 "그러면 오지 마"라며 내게 화를 냈다. "어른이 농담한 것 가지고 예의 없이 말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차라리 폭언에 가까운 그 말이 안부 인사로 포장되고 농담으로까지 치부됐다. 외삼촌은 팽 하고 자리를 떴다. 말로 뺨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러자 막내 외삼촌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대략 나더러 싸가지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아랫사람 도리를 운운했다.


"아랫사람이요? 저는 본인이 내뱉은 말에 상대가 불편해하면 사과할 줄 알아야 윗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멀쩡히 잘 살고 있는 사람 매번 하자품 취급하는데 그게 어떻게 농담인가요?"

 

 막내 외삼촌 역시 "그래, 난 못 배워먹어서 그렇다" 비아냥대며 자리를 떴다.


 사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모두가 내게 한 마디씩 얹었다. 외숙모는 "네가 예민했어" 했고, 사촌오빠는 "그만 하라"고 했다. 큰소리가 오가는 현장에서 외할머니는 결국 우셨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죄송하지 않으려 했다.  


"할머니, 상황이 이렇게 돼서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저는 하나도 죄송하지 않아요. 저는 저를 지키고 싶었을 뿐이에요."

 

 스스로 여러 번 되물었다.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 가만히 앉아서 입 닫고 그대로 뺨 맞고 있었어야 했는가? 그렇게 지켜진 평화는 진정 가족의 행복일까? 랑스러운 딸 깎아내리는 모습 지켜보는 우리 엄마는 무슨 죄이고, 제대로 축하받지 못하고 내게 미안해하는 내 동생은 또 무슨 죄인가?


 나를 후려친 외삼촌 첫 마디는 불쾌했을 뿐 상처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나를 되바라진 애로 몰아가며 한 마디씩 얹는 그 장면은 매우 깊고 확실한 상처가 되었다. 그 폭력적 상황 때문에 그들내게 던진 모든 말이 괜찮지 않아졌다. 내 직계가족들은 내 편을 들어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 나를 둘러싼 공기가 바뀌진 않았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내게 말하는 듯했다.


 '너만 가만히 있으면 평화롭잖아.'


 아마도 친척 어른들은 눈 동그랗게(눈은 원래 동그랗게 뜨는 겁니다) 뜨고 말하는 내 태도가 더 괘씸(?)했을 테다. 누군가는 애교를 섞으며 "외삼촌, 그거 성희롱이에요. 하지 마세용" 했다는 사촌동생의 사례를 마치 현명한 대처인 양 내게 들려줬다. 하지만 어떻게 말할지 화법을 가장 많이 고민한 사람은 나였다. 좋은 말로는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에게 대체 어떻게 내 불쾌감을 표현하고 그만하라고 하겠는가. 심지어 둘째 외삼촌은 이제까지 한 번도 자신이 그런식의 폭력적 언사를 뱉은 적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재작년 할머니 생신 때 내게 "네가 스타트를 끊어야 뒤에 동생도 결혼하고 애도 낳지"라고 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이듬해는 막내 외삼촌, 둘째 이모부와 함께 셋이서 나를 둘러싸고는 역시 나이, 연애 여부 조사, 애 낳아라 훈계를 조리돌림 하듯 해댔다. 언제 결혼할 거냐는 물음에 나는 "마흔 살쯤 영앤리치랑 하죠, 뭐" 하고 '농담으로' 눙쳤다. 그러자 둘째 이모부의 반응. "네가 그런 남자 만날 수나 있을 것 같냐?!" 내가 웃어 넘길수록 그들은 1절에 그치지 않고 더 맹렬하게 나를 물어뜯었다.

 

 이를 지켜보던 동생은 "남자 어른들이 둘러 싸고 애 낳으라고 윽박지르는 꼴이 우습고 폭력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모든 상황에 나는 며칠간 잠 못 이루고 과연 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자괴하는 꼴로 다녔지만, '좋게' 말했으니 아무도 그 일을 기억하지 않았고 누구도 내 불쾌감과 분노를 알아채지 못했다. 또 내 기분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버르장머리 없다는 소리 듣는 마당에 그들에게 '좋게' 말하는 화법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른들의 "너도 좋은 짝 만나라는 걱정과 바람"이라는 것들은 실은 려치기에 불과하다. 내가 뭐하고 사는지 관심조차 없고 물어보지도 않았지 않나? "너도 좋은 짝 만나야지" 정도라면 그들이 말하듯 나이 든 친척의 인사치레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물론 이제는 저 말조차 용납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게 '너 잘못 살고 있는 거야', '너 참 못났다'공격성을 내뿜는 질문이라면 말이 다르다. 그 말에 빠지지 않으려 해도 한동안 나도 모르게 내 삶에 의문을 가지는 굴레에 빠져든다.


 더 끔찍한 건 그 일이 아주 계획적인 악의를 갖고 이뤄지진 않았다는 데 있다. 내가 사랑하고 따르던 어른들이 별 수 없이 구린 면모를 갖고있다고 받아들이는 일이 내겐 너무 아팠다. 그들은 평범하고 정 많은 이들이었지만 자신이 저질러버린 관습적 폭력을 보지는 못했다.


 사태 이후 당연한 듯 나를 휘감은 침묵의 분위기가 무엇보다 괴로웠다. 나는 나의 분노가 정당하고, 그 일로 인해 내가 얼마나 아픈지를 증명해야 하는 위치였다. 그 후로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었다. 당사자들 내게 사과할 기미 없어 보였다. 그 일을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이들은 "네가 이해하고 속 풀라"고 했다. 먼저 뺨 때려놓고도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 사람을 맞은 사람더러 이해하라는 건 너무 비겁하지 않나? 사과도 못 받았는데 제가 휴지도 아니고 어떻게 저절로 마음이 풀립니까?


 나에겐 외가에서의 폭력적 경험이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은유하는 사건으로 느껴졌다. 관습에 반기를 들면 모두가 나더러 잘못 살고 있다고, 네가 느끼는 감정은 타당하지 않다고, 네가 지나치게 예민한 거라고 말하는 듯하다. 투쟁하는 기분은 삶을 참 외롭게 만든다. 가부장제와 싸울 때마다 느끼는 공기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들은 결혼에 관한 말들은 가부장의 훈계 형식으로 이뤄지곤 했기에 나는 이 은유가 적절하다는 확신이 자꾸 든다. 가부장이 자리를 뜨면 또 다른 가부장이 와서 한 마디를 얹는다. 나머지는 침묵으로 동조한다. 내가 '대들어' 버리기라도 하면 '윗사람' '아랫사람' 운운하며 권위로 찍어내리는 패턴이 판에 박은 듯 되풀이된다.


만약 가부장적 관습이 어떻게 한 여자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는지를 묘사하고 싶다면 명절 때 우리 친척 모임에서 벌어진 사건을 스케치하면 될 터이다. 결혼하지 않고 애 낳지 않은 여자, 즉 가부장제 자장에 좀체 들어오지 않으려 하는 여자에게 가하는 '네가 그렇게 잘났냐'는 비과 조롱, 깎아내리기가 우리 집안에만 머물 리도 없다. 내 눈에 비정상으로 보이는 일들에 모두가 아무렇지 않은 듯 사는 것, 나만 이상한 나라에 뚝 떨어진 외계인이 된 듯한 기분. 어쩌면 이게 명절 괴로움의 본질 아닐까.


 그런 와중에 한 친구가 들려준 일화는 내게 거의 공포 수준이었다. 사촌동생 결혼식에 갔더니 비혼인 사촌언니 표정이 너무 썩어있더란다. 역시 다들 한 마디씩 던지고 간 모양이었다. 그런데 사촌언니의 표정을 본 친척 어른들의 반응이 이랬단다.


"어머, 쟤 표정좀 봐. 동생 먼저 시집간다고 질투하네, 호호."

 

 동생의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이지만 결혼식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갑갑하다. 언제 어디서 뺨 맞을지 몰라 방어 태세로 서 있을 나를 떠올리니 복장 터지고 가엾다. 나는 내 삶을 증명하고 싶지도 않고 그들에게 인정받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나를 후려치는 말들에 대해 항하고 사과받고 싶다. 그래서 옐로우카드와 레드카드를 몇 장 아니, 수십 장이 필요할지도 갖고 있다가 헛소리 하는 인간들에게 웃으며 하나씩 건넬 계획이다. 거기에 쓰일 문구는 이러할 것이다.


"이 카드를 받은 당신은 제게 무례한 언행을 하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집안 경사를 치르는 저는 불거지는 얼굴을 감추느라 애쓰고 있겠지요. 저의 걱정이 기우로 끝나기를 바랐습니다만 이렇게 경고 카드를 드리게 되었네요. 당신의 말이 저에게 어떤 돌멩이가 되었는지는 이 글(지금 이 브런치 링크!)을 참고하세요. 제가 소중히 여겼던 관계를 실망스럽게 끝내고 싶지는 않아요. 부디 언행을 돌아보시고 저에게 사과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전 01화 "언니,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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