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영 Aug 23. 2023

혼자 사는 여자는 결국 무엇을 하는가

오랜만에 일정이 없는 주말이다. 친구를 만나 폭소를 터뜨린 게 한 달 전이다. 그 사교의 힘으로 일주일을 살았다. 그 말인즉슨 지난 3주간은 어떠한 대면의 사적, 정서적 대화 없이 일상을 보냈단 뜻이다.


친구 관계가 척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는 친구는 정작 없다. 내 친구들은 누군가를 돌보느라 타임푸어가 되어 있거나,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그 둘 다에 속하는 친구는 1년에 한 번 보기도 어렵다. 내 쪽도 체력도 떨어지고 번잡한 데도 싫어하다보니 주로 차로 이동하고 인적 드문 곳에 스스로를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니 낯선 이가 말을 걸어오는 재밌는 우연도 뜸해졌다.


혼자가 편하고 익숙하면서도, 이따금 외로움에 마음이 쇠약해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러나 굳이 티내지 않고 견디는 편이다. 언젠가는 이런 홀로 있음을 간절히 원했었고, 또 언젠가는 이 시기를 간절히 그리워할 것임도 안다. 위안이 되진 않는다. 1인 가구로 산 지 몇 년 차인데 나는 이다지도 관계의 지반이 약한가.


홀로 생활을 꾸리며 자꾸만 우악스러워지는 듯한 내 모습이 질린다. 매일의 설거지와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들을 아무도 대신해줄 사람이 없고, 가끔 일상을 서럽게 하는 부당한 상황에 대신 싸워줄 이가 없다. 둘이 된다 해도 오히려 내 역할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주변의 결혼 생활을 지켜본 바에 의한 합리적 결론임에도 자꾸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그러는 사이 ’이렇게 살다 외롭게 늙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이야말로 휘휘 손을 내저으면 사라지는 신파적 불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에 애인을 만들려는 시도도 딱히 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여자 혼자 갈 수 있는 장소는 (상업시설에 한해) 남자의 그곳보다 많고, 나 자체가 홀로 무엇을 한다는 데 대한 거리낌이 없으며(혼밥 혼영 혼여 모두 쌉가능이다), 차라리 그런 단출함에서 자유를 느끼는 편이지만 요즘처럼 푹푹 찌는 날에는 나랑 놀기도 지친다.

홀로 훌쩍 떠난 여행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도 셀카다.


그러면 외로워질 때 혼자 사는 여자는 무엇을 하는가. 안 하던 짓을 하는 용기와 추진력을 얻는다. 그렇게 한껏 웅크려있던 시기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이야기를 모아 책 <합정과 망원 사이>를 썼다. 이번 외로움의 정국에서도 나는 결국 써야겠다는 결심으로 나아간다. 고립으로 점철된 지난 2년간의 내 일기를 읽으며 그런 직감이 들었다.


한때 나는 이런 시기를 기대해왔던 것도 같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함께 있지만 마음은 한없이 외로워지는 일이다. 마음은 외로워도 고독을 간절히 갈망하는 일이다. 이제 나는 비로소 끌리는 생각을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을 내게 내어주는 삶의 방식으로 돌아왔다. 항상 감정의 바닥을 디디면 나를 살리기 위한 여러 방법이 창의적으로 떠오른다. 이런 영감을 나는 기다려왔다.


혼자 밤에 불현듯 영화관에 가고, 혼자 드라이브 하고, 혼자 먹고 싶은 시간에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식욕을 채우고... 이런 일상이 모여 내가 내 기분을 최우선으로 삼는 습관이 든다. 이 습관이 모이면 나와 대면하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글쓰기의 습성과 닮아있다. 홀로 사는 삶의 방식이 결국 쓰는 행위로 나아가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혼자 사는 여자는 글을 쓴다. 나의 외로움이 더이상 처연해지지 않는 순간이다.








이전 03화 존중 받고 싶었을 뿐 투명인간이 되고자 한 건 아닌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