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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Nov 03. 2023

"새댁이야? 남편은?"

없는 남편 안부를 묻는 이웃에게 친절히 응대하는 법

이사를 했다. 소형 평수의 복도식 아파트. 새 가구 냄새를 빼려고 현관문을 활짝 열어 두고 청소했다. 열어놓은 문 때문에 좁아진 복도를 어떤 아저씨가 배를 쏙 집어넣으며 지나갔다. 후다닥 달려가 문을 접으며 안면을 트게 됐다. 옆옆집에 사는 분이라고 했다.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너무 시끄러우셨죠?”하자 허허 웃으며 괜찮다고 하셨다. 사실 중년 남성이 유독 많이 보이는 이 동네에 대한 경계가 있었다. 동네 포장마차에서 곱창볶음에 소주 걸치는 아저씨들을 보면 나도 먹고 싶다 덜컥 마음을 움츠리며 지나가게 된다. 그러던 차에 관대하게 소음 따위 괜찮았다고 말씀해주시니 내 사는 곳에 대한 안전감이 조금 올라갔다. 수많은 익명의 사람이 지나다니던 합정과 망원보다, 개방성 옅은 지금의 동네를 좀 더 경계했었는데 역시 알면 덜 두렵다. 지리감을 익히고 아는 얼굴이 하나 둘 늘수록 안심하게 된다.


물걸레질을 싹 하고 허리를 죽 펴는데 이번엔 빼꼼한 고개와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였다. 옆집이라고 했그녀는 새로 꾸며진 집안을 고개만 쏙 들이민 채 눈알을 굴리며 염탐했다. “들어와서 보셔도 괜찮아요” 해도 밖에서 서성였다. 그녀 역시 공사 소음에 대해 “에이, 뭐 어쩔 수 없지” 하며 쿨하게 반응했다. 아니, 여기 이웃들은 다 성불했나. 층간소음의 고통에 몸부림치다 이사 온 나로서는 신기하게 무심들했다.     


할머니는 자신이 일흔 몇 살이라며 “아유, 젊은 사람 오니 좋네” 했다. 이어지는 질문.    


새댁이야? 남편은?


나에게서 매번 있지도 않은 남편을 찾는 초면의 나이든 이웃들을 전에도 몇 번 겪었기에 세워놓은 전략이 있다.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즉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며 새댁처럼 수줍게 웃었다.     


왜 아니라고 말을 못하느냐고? 공연히 여자 혼자 산다는 사실을 밝히기 싫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성 1인 가구가 늘어도 혼자 사는 여자의 취약함은 극복하기 어렵다. 전보다 보안이 좋은 주거환경으로 옮겨도 치안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위태롭다. 오랜만에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하루하루 나의 약자성을 깨달아 간다. 그래서 나는 새 이웃들에게 아직 여성 1인 가구임을 밝히지 못했다. 비록 그녀가 위협적이지 않은 할머니임이 명백해도, 저 집은 여자 혼자 살더라고 동네방네 떠들 수 있는 이 동네 빅마우스인지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편 있다고 하기엔 적극적 거짓말이니 양심에 걸렸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서 내 불안감을 잠재워야하나 하는 비참함도 딸려올 것이 분명하다. 주로 어르신인 이웃들은 으레 남편이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런데 이 전략의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다. “남편은 뭐하고?”라는 열린 질문에는 말끝 흐리는 식으로 응대하기 어렵다. 거짓말 하거나 진실을 고하거나. 나는 아직 노선을 정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가전 매장에서 청첩장을 들고 가면 할인 혜택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같은 물건 사는데 왜 결혼하는 사람만 깎아주나. 맞벌이보다 내가 수입도 더 적은데!!!


이 사회가 얼마나 기혼자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하루하루 절감한다. 가전을 한 번에 사려고 매장에 갔다가, 청첩장을 들고 가면 할인 혜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같은 물건 사는데 왜 결혼하는 사람만 깎아주나. 둘이 벌면 나보다 가처분 소득도 높을 텐데? 자본주의적 취약함이다. 생활의 미약함도 있다. 어쩐지 나부터도, 정갈한 삶은 결혼 이후로 미뤄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사하면서 원래 쓰던 가전들을 가져가려다 모두 다 바꾸기로 했다. 세탁기도 건조기도 큰 걸로 샀다. 오븐과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 기능이 결합된 오븐렌지도 샀다. 에어드레서도 장만했다. 매번 턱에 걸려 SOS를 외치는 좀 귀찮은 로봇청소기도 하나 들였다.      


집만 사면 끝일 줄 알았는데 혼수도 들여야한단 사실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결국 혼자 신접을 꾸려버린 셈이다. ‘자웅동체 신혼 생활’은 세간의 인식을 고려한 일종의 선언이다. 나는 더 이상 내 삶을 미루지 않을 터이니, 나에게 “그런 건 신혼 때나 사는 것이지”, “지금 임시로 쓰다가 결혼할 때 좋은 걸로 해” 따위의 말을 하지 말아달라는 방어막이기도 하다.      


다음 번 만남에는 필히 옆집 할머니가 내 남편의 하는 일을 물으며 호구 조사를 할 것이다. 그냥 내가 하는 일을 말하기로 했다. 왜? 내가 남편이자 아내니까. 구시대적 가족 관념에 기대어 말하자면, 내가 벌어오고 내가 나를 먹이고 입히고 돌본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자웅동체 신혼생활'의 프리퀄 격인 신간 <합정과 망원 사이>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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