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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Nov 10. 2023

결혼하지 않은, 나이든 장녀를 상상하다

이대로 혼자 살다가 나이가 들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곤 한다. 부모가 늙었다는 자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상상도가 달라졌다. 그 전에 생각했던 건 이런 것들이다. 커리어 하이를 찍고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모습, 실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서는 무대, 갱년기 우울 퇴치를 위해 뒤늦게 든 춤바람... 요즘은 더 나이든 엄마 아빠를 돌보는 중년의 내가 그려진다. ‘누가 나를 돌봐주지?’보다 ‘우리 엄마아빠는 또 누가 돌보지?’라는 걱정이 앞선다.


미혼의 장녀라는 위치를 생각한다. 부모는 둘이고 자식은 셋인데 돌보는 이는 단 한 명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한 명은 어느 정도 자신의 경제적 기반을 놓지 않으며, 시간 활용이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배우자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면서 이런 일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결혼하지 않은 딸이 되지 않을까.


수년 전 인터뷰를 했던 여성가족부 장관은 아흔 넘은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첫 인터뷰를 집무실에서 했으나, 영 재미가 없었다. 경기도에 있는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가족부 장관인 그에게는 '아내' 역할을 하는, 즉 내조하는 어머니가 있었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썼다. 그리고 나이 들어서는 그 딸이 엄마를 돌본다. 가족 돌봄의 체계를 짜는 부처 장관조차도 돌봄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처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돌봄을 주고 받는 수많은 모녀를 생각한다. 많은 딸들이 자신이 받았던 돌봄에 대해 빚진 마음을 지고 있고, 자연스레 부모를 돌보는 역할을 자처한다.

 

만약 결혼하지 않고 혼자 이대로 죽 살게 된다면, 싱글 중년 여성이 그때쯤이면 하나의 인구 집단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어머니로서의 삶을 거부한 이들이 그렇다고 돌봄에서 해방될 것 같지는 않다. 상당수는 형제 중에서 부모를 돌볼 자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건 아마도 나의 미래이기도 하지 않을까? 각오를 해야 하나, 빠져나갈 궁리를 해야 하나. 분담이라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다. 나도 현명하고 싶었다. 병을 얻은 아빠의 충실한 대변자이자 보호자가 되고 싶었고, 너무 한쪽이 지치지 않게 동생들과 이 부담을 나누고 싶었다. 물론 내가 조금 더 짊어져도 상관 없다는 마음이었다. 돌봄으로 인해 가족 중 누구의 커리어도 손상되지를 않기를 바랐고, 가족은 오히려 더 돈독해질 거라고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아빠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동생들에 대한 원망이 깊게도 패였다. 사실상 의절에 가까워졌지만 끝까지 이 돌봄을 책임지는 것도 나다. 돌봄을 공부하고 그 문제에 파고드는 것도 나다. 그 사실이 미치고 팔짝 뛰게 억울해서 아직도 일주일에 한 번은 악몽을 꾼다. 이런 글을 가족 구성원이 읽으면 가족의 역학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서 두렵다. 쓰는 것도 고통스럽지만 써야만 끝맺을 수 있는 고통이기도 하다.


이 얘기를 풀어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동생들과의 갈등은 돌봄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 같아 속이 쓰리고 수치스러웠다. 동생과의 관계가 언급될 때마다 불편하고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직면해야 한다. 내가 겪는 이 위기가, 사실은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임을 말하고 싶다. 돌봄을 하는 수 많은 가정에서 이 부담은 대개 한 사람에게 독박씌워지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그로 인해 형제 관계가 파탄난다는 것. 아직 그렇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이 악물고 참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딸들을 보며 형제간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싹트고, 친척들의 오지랖에 지쳐가고, 부모와의 관계를 복기하며 때로는 씁쓸해하는 공통된 일들이 일어남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런 관계까지 해법을 들고 나섰어야 했나 하면 그건 너무 부당했다. 내가 그들의 을 짊어지고 있음에도 나는 늘 요구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그냥 내가 혼자 해버리는 게 속편했다. 내가 항암 매뉴얼을 만들어 보낼 때 고생한다 말하기보다는 어떻게 그 부담을 나눠질지 나에게 알려줬어야 했다. 내가 감정을 쏟아낼 때 자신이 감정 쓰레기통이냐고 발끈하지 말고, 돌봄 제공자가 가지는 보편적 우울에 대해 공부했어야 했다. 자기들도 최대한 애쓰고 있다고 항변할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의 몫을 얼마나 더 나눠지고 있는지 들여다봤어야 했다. 언니는, 누나는 나보다 사회 경험도 많고 똑부러지니까, 라고 말하지 말고 본인이 내 나이가 되어도 이런 역할을 맡았을지 상상해보았어야 했다. 그들이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댈 때, 그런 자원 중 일부는 언니 혹은 누나로부터 왔음을 인지했어야 했다. 엄마가 충분히 과도한 역할을 도맡고 있음을, 그래서 엄마에게만 돌봄을 떠넘기는 건 차마 선택지에 넣을 수 없음을 직시했어야 한다. 나 역시 이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임을, 진료실 안팎에서 내가 짊어진 심리적 압박을, 내 감정적 소진을 알았어야 했다. 아빠가 결혼하지도 않은 예비 사위로부터의 돌봄은 부담스러워함을 이해했어야 했다. 아직까지 이 문제는 우리 삼남매의 것임을 알고 본인과 친밀한 연인에게 세세한 돌봄의 과정까지 공유하는 일은 더 조심스러웠어야 했다. 항암 한 사이클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때의 내 상실감을 헤아렸어야 했다. 새로운 치료의 국면마다 내가 느끼는 압박과, 다른 사람을 거부하고 오로지 나에게 의지하는 아빠의 나약함을 파악했어야 했다. 그들에게 SOS를 쳤을 때는 나조차 나를 돌볼 수 없는 상황임을 판단했어야 했다. 나머지 가족들이 나를 심정적으로 보듬었어야 했다. 돌봄을 공평하게 나눌 수 없다면 그런 역할이라도 맡았어야 했다. 나를 마치 고결하고 순수한 피해자인 양 포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들 했다.  

 

이 모든 말들을 나는 꿈에서 쏟아낸다. 현실에서 그들은 이런 어둡고 불편한 얘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실 무심하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친밀했던 동생들이었기에 이런 원망감과 배신감을 마음 속에서 키우면서 나를 스스로 해쳤다. 나의 생각은 죽죽 뻗어가 저 먼 미래에까지 닿았다. 20년 뒤에도 나는 이러고 있지 않을까? 이해받고 싶은 욕구와 절대로 이해 받지 못할 거라는 절망이 날마다 부딪힌다.


치매 어머니를 11년간 돌본 딸의 이야기를 읽었다. 저서 <어머니를 돌보다>에서 린 틸먼은 “어느 순간 나는 좋은 딸 노릇을 한 것을 후회했고 11년을 어머니를 위해 보내지 않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나는 내 희생이, 그걸 희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어머니를 위해 한 희생이 헛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역시 그런 회한에 두 번 다시는 휩싸이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부턴가 좋은 딸이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좋은 역할이 되려는 노력이 나를 갉아먹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달까. 그러나 가족의 위기 상황에서 어떤 구심력이 작용하는지 나는 늘 가족의 해결사라는 위치로 돌아왔다. 마치 거기가 원래 자연스러운 내 자리라는 듯.


정서적이든 물질적이든 부모의 자원을 더 가져간 자식이 꼭 더 돌보는 건 아니다. 그러나 딸일수록, 그리고 형제 서열이 위일수록 더 돌보는 경향은 두드러진다.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그렇더라. 그런 경향성이 결혼하지 않은 장녀인 나에겐 압박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정말로 독박 보호자 역할을 해본 경험은 결국 나도 그 전형적인 길을 걷게 될 거라는 공포로 이어진다.


이 글이 마치 “나는 우리 부모가 짐짝같고 부담스럽다", "돌봄은 오로지 부정적 감정밖에 남지 않는 일이다", "내 동생들은 이기적인 년놈들이다(물론 나도 이런 생각을 지울 수는 없지만 형제간 독박돌봄이 보편적인 현상이라면 요즘에는 개인의 인격 이상의 다른 요인이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라고 오해될까 걱정스럽다. 나는 결혼하지 않은 딸의 독박 돌봄이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경고음을 내고 싶을 뿐이다. 다분히 관습적인 자장에서 장녀에게 특히 더 주어진 돌봄의 의무를 '나'라는 사례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미래에 나와 비슷한 인구 집단이 될 그녀들은 어떤 상상도를 그리고 있는지 답장을 받고 싶다.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 이런 돌봄에서 자유로운 가정은 단 한 곳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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