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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Nov 17. 2023

혼자 아프면 서럽다고 누가 그래?

가장은 서러울 틈이 없지

많은 사람들이 혼자 살면서 서러운 순간으로 아플 때를 꼽는다. 별로 공감되지는 않는다. 온전히 홀로 아플 수 있는 건 오히려 축복이다.


최근 몇 년간 심하게 앓은 적은 작년 가을 코로나에 걸렸을 때다. 가볍게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코로나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증상이 한 번에 찾아왔다. 고열은 기본이고 누군가 마구 밟고 지나간 듯한 근육통, 물 마실 때마다 칼날을 삼키는 듯한 통증과 발작적인 기침, 끊이지 않는 가래, 두통과 급체, 구토,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전신 무력감까지. 역병과 내 면역체계의 전투 속에서 서러울 틈이 없었다. 내 몸 하나 일으키기 힘겨운 상황에서는 누가 옆에 있더라도 위안은커녕 귀찮기만 했을 거다. 소중한 사람에게 질병이 옮을까 하는 걱정은 덤이다.

 

누워서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배달 음식이 문 앞에 도착하는 시대에 굳이 찰싹 붙어 챙겨주는 이가 필요한가 싶다. 정서적 보살핌은 잘 챙겨먹으라고 택배로 고기나 목캔디를 보내주는 친구들에게 받았다. 집에서 잠옷만 입고 지내니 빨래 같은 집안일이 며칠 밀려도 괜찮았다. 밥때 되면 배달 시키고, 내 먹은 자리만 대충 치우고, 약 먹고 누워서 또 끙끙끙... 코로나는 어차피 모두 다 격리돼 홀로 아플 수밖에 없는 질병이니 특별히 혼자라고 서러울 이유도 없었다.

 

얼마 전엔 돌도 안 된 아이를 돌보느라 아픈데 병원도 못 가고 있는 친구에게 더없이 마음이 쓰였다(친구는 남편과의 육아 교대 후 야간 진료 병원에 갔다). 누가 옆에 있고없고보다는 내 한 몸 제대로 살필 수 있는 환경인가가 아플 때 서러운 감정에 더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주말이 나에겐 아파도 쉬기 힘든 시기였다. 토요 당직이라 재택 근무 하며 속보를 쓰고 있었고, 동시에 커버스토리용 기사(무려 35매!)를 마감해야 했다. 동거인이 있다고 내 일을 대신 해주는 것도 아니니 이것도 혼자라고 서러울 일은 아니다. 나한테 뭐라도 먹여야지 하고 주방에 갔는데 하필이면 싱크대 수전이 망가졌다. '동거인이 있다면 이런 거라도 대신 처리해 주겠지'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어차피 이런 고충은 안 아파도 늘 있다.


원에 가서 수액부터 놔달라고 했다. 나는 이 집의 가장이니까, 내가 아프면 우리 가정이 제대로 안 돌아가니까 내 몸을 회복하는 데 모든 자원을 쏟는다. 이틀 동안 병원비로 20만원을 썼다. 아파도 해야하는 최소한의 집안일이 요즘말로 조금 '킹받았지만' 인간은 자기 삶을 꾸리기 위한 최소한의 짐을 다 짊어지고 살지 않나 하는 철학적 질문으로 나를 다독였다.


가장으로서 나의 어깨가 무거워질수록 온전히 아플 수 있는 순간들에 감사하다. 그 순간 내가 홀로 있는지 여부는 실은 맨 나중에 되돌아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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