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 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황진이의 시조다. 긴긴 밤의 시간을 ‘킵’했다가 님이 오는날 꺼내쓰고 싶다는 것인데, 나는 나의 간을 이렇게 쓰고 싶다.
회식날 생생한 간을 한 점 뚝 버혀 내어 온수매트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혼술 당기는 날 밤이어든 살짝 식혀 끼우리라
원래도 술을 잘 못 마시지만 이상하게 회식 자리에서는 더더욱 안 넘어간다. 회식 때 아껴둔 간을 슬쩍 꺼내 홀로인 밤 술을 마신다. 그래봤자 와인 반 잔 정도이지만.
홀로 간 여행지에 나를 위해 준비된 숙소만큼 아늑한 공간이 없다.
나는 노는 게 제일 좋은 어른이 뽀로로다. 그 중에도 혼자 노는 게 제일 좋다. 다들 연말에 이런저런 송년 모임에 사교활동 하느라 바쁠 때 혼자서 놀 일이 많아 바쁘다. 12월엔 주마다 있는 송년 음악회에도 가야하고, 나름 한 해를 정리하는 여행도 떠나야한다.
2023년 혼자 놀았던 순간들을 복기해본다. 금요일 밤 일을 마치고 휘리릭 짐을 싸 난지캠핑장으로 간 날, 혼자 텐트를 피칭한 뒤 회에 곁들인 맥주 한 모금은 성취감 덕에 더 청량했다. 일본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시민들 틈에서 평일 오후를 즐기는 순간은 연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제주도에 혼자 가면 늘 아침에 요가한 뒤 산방산탄산온천에 가서 몸을 담근다. 목욕 후 혼자 고등어구이와 갈치조림에 밥 두 공기를 먹었다. 잠 기운에 거나하게 취해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낮잠을 자다 깼을 때 개운함은 누구도 내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나만의 기분이다. 팬데믹 기간 유튜브에서만 보던 첼리스트 요요마 선생님의 공연을 올 가을 직접 보고난 뒤 집으로 오는 길 차 안에서 듣는 음악만큼 마음이 풀어지게 하는 선율은 없었다.
혼자 먹는 밥은 또 을매나 맛있게요..!
그렇다고 내가 사회 부적응자는 아니다. 내게도 소중한 친구들이 당연히 있다. 그러나 혼자 있는 시간을 전제하지 않고 이들을 만나는 건 꿈꾸기 어렵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자연에 몸을 맡기고 예술에 몰입하는 감각은 홀로 있을 때야 열린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인생은 결코 외롭거나 비참해질 수 없다는 걸 나는 오랜 혼자놀기로 알아버렸다.
퇴근 후 혼캠. 여럿이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은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는 능력자가 되었다.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한때. 자전거 타다 배고프면 햄버거 꺼내먹고, 앉은 김에 우연히 들려오는 공짜 음악까지 즐기는데 심심할 틈이 대체 어디 있겠는가.
자연에 몸을 맡기고 예술에 몰입하는 감각은 홀로 있을 때야 열린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인생은 결코 외롭거나 비참해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