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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Nov 29. 2021

존중 받고 싶었을 뿐 투명인간이 되고자 한 건 아닌데

“동생 결혼 하는 동안 뭐하고 살았느냐”는 폭력적 언사에 반기를 들었다가 말로 집단 린치를 당했던 지난 사건의 트라우마는 오래 갔다. 깊게 상처 입었고, 그런 나를 보며 가족들은 많이 울었다. 명확한 가해자가 아니라 나를 배척하는 분위기 자체가 폭력적이었다는 내게 어쩔 줄 몰라서 울었고, 그 당시에 충분히 지켜주지 못했다며 울었고, 내게 내상을 입힌 사람들 역시 소중한 가족이었다는 데 또 울었다.


얼마 전 아빠는 환갑을 맞았다. 요즘은 직계가족끼리만 축하하는 게 대세라지만 본가 지역은 일가 친척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는 문화가 아직 남아있다. 주인공인 아빠도 후자를 더 원하는 듯했다. 친가 친척들에게 참석 여부를 묻고 난 후 매일 뒤척였다.


괜한 일을 벌인 건 아닐까. 지금은 효도보다도 나를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취소를 해야 하나... 이번엔 가족들도 나의 걱정을 "아니야, 이상한 말 할 사람 없을 거야"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 믿음은 이미 지난 외가 모임에서 애저녁에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시간, 장소를 정하고 환갑까지의 일주일은 체벌을 기다리는 처지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피하는 건 더 싫었다. 내 식대로 담담히 맞서기로 했다. 가족들에게는 당부했다. "누군가 이상한 소리를 하면 꼭 내 편이 돼서 지켜줘." 그러면서도 내가 벼르고 있는 어떤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잔칫집 분위기가 깨질 것임이 너무 확실했기에 불안했다.


엄마와 아빠는 결국 환갑날을 앞두고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렸다고 했다. 내게 결혼이니 출산이니 언급하며 깎아내리는 말을 하지 말라고. 손님에게 미리 조심 말을 일러주는 게 우리 부모가 나를 지키려는 방식이었다. 잔칫날엔 다들 주지하고 온 듯했다.  


오랜만에 모이자 다들 하하호호 했다. 친척 모임에는 ‘애들’ 소식이 가장 핫한 법. 사촌은 제하고 아빠의 형제들만 부른 자리였다. 애들은 우리 삼남매뿐. 다들 동생들에게 근황을 물었다. 그들의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관심가져 주었다. 그 다음은 내 차례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내겐 정말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여동생이 “우리 언니 집샀어요!” 일부러 날 띄워주듯 말하기도 했지만 금세 다른 이야기로 화제가 전환됐다. 엄마가 “소연이 책 아직 못 받으신 분?!” 하며 <합정과 망원 사이> 열 권이 쌓여있는 팬트리를 열 때는 수 초간의 적막이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혹시 있을 폭력적 말들로부터 나를 어떻게 보호할지만 고민했지, 이렇게 투명인간이 되어버릴 줄은 몰랐다.


어려서부터 나는 친척들 사이에서 기특한 아이 축에 속했고, 팔불출처럼 내 PR을 맡은 엄마 아빠 덕에 어른들은 나를 보면 칭찬 한 마디씩을 덧대곤 했다. 그래서 안부인사는커녕 대놓고 하는 자랑에도 무반응 일색인 분위기가 당황스러웠다. 모두가 즐거워보였고 나는 방에 들어가 대자로 뻗어버렸다. 이 감정 소모가 너무 피곤했고 한없이 외로워졌다. 방문 밖으로 깔깔깔 웃음 소리가 들리자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로 그들은 내게 결혼이니 출산이니 하는 말이 아니면 내게 말 걸 소재가 없는걸까, 아니면 애초에 그런 대화를 차단코자 했던 우리 부모님의 시도가 괘씸하게 느껴졌던 걸까. 아무도 내게 어떤 행위를 하지도 않았는데 이걸 아프게 느끼는 내가 비정상일까...


친척들이 우르르 떠나고 내 감정들을 가족들에게 털어놓았다. 처음엔 "에이, 그런 건 아닐 거야. 다들 조심스러워서 그렇지", "언니가 마음이 여리긴 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더 큰 소외감을 느꼈다. 엉엉 울어버렸다. 지구상 누구도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가족에게조차 내 감정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 버거웠다.


그때 남동생이 말했다. "누나가 그렇게 느낀 거면 그 감정이 정확한 거야." 위로하듯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가족들도 그제야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결국 아빠의 환갑은 가족들의 눈물로 마무리 됐다. 즐거운 파티 뒤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는 손님들 누구도 상상조차하지 않겠지. 그저 "나는 배려해줬는데 왜 유난을 떠냐" 할지도 모르겠다.


나 스스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서울에 와서도 한동안 그런 자괴가 생각의 빈틈마다 따라붙었다.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하며 “나조차도 내가 너무 예민한가 하는 생각의 늪에 자꾸 발목 잡힌다"는 내게 친구는 마음 단단히 잡으라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강한 사람이고, 너를 보호하려고 가장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야.


한동안 이 말에 기대 일상을 났다. 그래, 나는 그저 자기 보호에 충실했을 뿐이다. 존중이 필요했지 투명인간이 되려고 한 건 아니었다. 탓할 누구도 명확하지 않은 이 상황을 홀로 견뎌내는 나로서는 그저 이렇게 글만 써내려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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