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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Nov 07. 2019

그들 각자의 알몸

동네 목욕탕

고백하건대 나는 목욕이 싫다. 탕 안에서 5분만 지나면 머리가 핑 돈다. 구체적으론 대중목욕탕이 싫다. 여럿이 쓰는 탕 안에 몸을 담그는 일도, 젊은 처자들의 몸을 훑는 중년 무리의 눈알도, 내가 그 처자 중 한 명이란 사실도, 모두 싫다.     


일곱 살 때쯤인가, 설마 딸이 그렇게까지 까무잡잡한 줄도 모르고, 우리 엄마는 ‘이게 다 때’라며 내 목이 벌게질 때까지 수박색 이태리타올로 빡빡 밀었다. 목주름을 따라 가로로 딱지가 줄줄이 앉았다. 그 후로 목욕이 그냥 싫다. (엄마가 내 등을 밀어줄 때마다 나는 20년도 더 된  얘기를 꺼낸다. 엄마는 하하호호 웃는다. 내겐 목욕 트라우마를 안겨준 사건이지만 엄마에겐 추억인가보다.)    


그 시절 동네 목욕탕을 나오면 겨울 한 가운데서 풍기는 풀빵 냄새가 향긋했다. 목욕탕 바구니에 팔짱 끼고, 가족 다섯이서 입에 풀빵 하나씩 물고 들어가는 길이 즐거웠다. 팥소 하나 없이 밀가루 반죽으로만 구운 풀빵 냄새를 겨울날 우연히 맡게 될 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목욕탕 냉장고에 있는 바나나우유는 먹어보지 못했다. 우리 엄마는 동네 슈퍼마켓보다 두세 배 비싸게 파는 그 우유를 사는 일이 대단한 바가지를 쓰는 것이라 여겼다. (나는 엄마가 등 밀어줄 때 이 얘기도 한다. 그때 바나나우유를 못 먹어서 지금 환장하는 거라고. 엄마는 ‘그러게, 그게 얼마라고 안 사줬나 몰라’하며 목소리가 촉촉해진다. 내겐 추억이지만 엄마에겐 어려운 시절 자식들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한 미안함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인 듯하다.)    


동네 목욕탕에 대한 추억은 열 살 언저리에서 멈췄다. 2차 성징이 시작되고 젖몽우리가 잡히기 시작할 때쯤부터였을 것이다. 스무 살 이후 나와 살면서부터 대중탕으로 돌아오게 됐다. 1인이나 2인이 살 수 있는 집에는 대개 욕조가 없기 때문이다.     


맛집이나 카페 후기는 넘쳐나지만 목욕탕은 그 흔한 블로그 홍보 포스팅조차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남에게 추천받기도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나만 해도 내가 다니는 목욕탕을 굳이 얘기하진 않는다. 애매하게 친한 지인과 알몸으로 마주치는 일이 나에겐 아직 ‘불상사’에 가깝다.     


결국 몇 년의 시행착오 끝에 여러 목욕탕과 대형 찜질방을 한 달에 한 번씩 전전하는 ‘목욕 난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신의 맛’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때밀이(나는 세신사보다 이 말을 좋아한다)의 가장 큰 덕목은 ‘무심함’이다. 여러 번 본 사람이라도 왠지 먼저 알은 척을 하면 부담스럽다. 아직 부끄러움을 완전히 벗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니는 목욕탕 때밀이 아주머니는 내 몸이 열탕 안에서 익어 흐물거리기 전에 퉁명하게 ‘언니 와서 누워’라고 말해주신다.      


 몸의 감각은  때보다 예민해진다. 어떤 부위는 남의 손이 닿을 때면 흠칫 놀라며 몸이 굳곤 한다. 그러면 아주머니는 아무  없이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툭툭   친다. 나는 숨을  뱉으며 힘을 뺀다. 그녀와 나는 환상의 복식조다. 나는 적절한 때를 맞춰 몸을 뒤집고 옆으로 눕고 팔을 위로 들어올린다.    


내 머리맡에서 그녀가 허리를 숙이고 때를 리드미컬하게 밀 때마다 그녀의 뱃살이 찰랑찰랑 내 얼굴을 친다. 몇 번 다니다보니 예전처럼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엊그제 목욕탕을 갔는데 평소에 좀체 말을 걸지 않는 그녀가 종아리를 쓰다듬으며 ‘언니 참 예쁘게도 탔네’라고 했다. 이상하게 불쾌하지 않았다. 몸에 대한 편견이 들어있지 않은 말이었다.     


내 돈 내고 서비스를 받을 때도 내 몸은 얼마나 많이 평가 받는가. 회당 15만원짜리 레이저를 쏘는 피부과 의사는 “눈가가 어둡다” “모공이 넓다”며 결함을 잡아내기 바쁘고, 기분전환 겸 들른 미용실에서는 “머리가 개털이네요” 소리를 들으며 결국 영양 앰플을 추가한다. 체력 기르려고 1시간에 7만원짜리 PT를 결제했더니 트레이너는 팔뚝 살을 꼬집으며 “여기 셀룰라이트 좀 봐요” 한다. 마사지숍에서는 “어깨가 이렇게 많이 뭉쳤으니 거북목이 돼서 걸을 때 폼이 안 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어쩌면 그들은 손님의 몸을 평가해야 비로소 자신의 전문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말들을 떠올리며 나는 미끌미끌한 때밀이 침대가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꼈다. 어떤 몸이 그 자리에 눕든 때밀이 아주머니는 때를 벗겨야한다는 직업적 목표만 가지고 바라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임신선이 선명한 볼록한 배는 비누를 한껏 묻혀 슬슬 문지르고 살가죽이 축 늘어진, 세월 품은 몸은 거죽을 들춰 사이까지 꼼꼼하게 닦아낼 것이다.    


그날 바나나우유를 빨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올 겨울엔 목욕탕에 더 자주 다녀봐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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