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영 Nov 17. 2019

도서관 투어

북세권에 산다는 것

절반만 믿는 부동산 기사들에서 하나같이 '북세권'이 뜬다고 한다. 나는 이 단어가 나올 때마다 의기양양해진다. 도보 3분 거리에 교보문고 합정점이 있다. 도보 20분 내로 갈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 4곳(마포평생학습관, 마포중앙도서관, 마포하늘도서관, 마포서강도서관)이다. 한강문고 같은 특색있는 동네서점도 있고,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질렸다면 독립서점 땡스북스에 가곤 한다.


일할 때는 책을 약처럼 사게 된다. 책값은 약값이니 하나도 안 아까웠다. 교보문고 포인트 쌓는 재미에, 집에는 읽지않은 신간만 쌓여갔다. 그러다 올 초 일을 잠깐 쉬면서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동네 도서관 네 곳을 순회하며 쓸 데 없는 관찰력만 늘었다.

  

합정으로 이사하고 얼마 안 있어 '마포중앙도서관'이 생겼다. 좋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가볼 엄두는 못 냈다. 습관적으로 늘 가던 도서관만 다녔기 때문이다. 가까운 도서관에 책을 배달해주는 '상호대차' 서비스를 알기 전에 절판된 책을 구하러 여러 도서관을 전전했다. 그러다보니 '마포하늘도서관', '마포서강도서관', '마포중앙도서관' 모두 우리 집에서 20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음을 알게됐다. 지적 요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원래 내가 다니던 곳은 '마포평생학습관'이다. 높지 않은 건물인데 홍대 한복판에 있어, 가는 길이 참 번잡하다. 그래도 일단 한 번 들어가면 섬 같이 고요하다. 채광도 좋다. 지하에 수영장과 문화센터가 있기 때문에 학생만큼 주민들도 많이 이용한다. 독서실처럼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이 따로 있어 중고생 시험기간마다 붐빈다.

 

서강도서관은 정말 아담하다. 서강동 주민센터 건물의 4, 5층을 쓰고 있는데 4층은 어린이 자료실이니 그나마 성인은 5층만 이용한다고 보면 된다. 별로 넓지 않아 노트북 좌석은 4개뿐이다. 신기한 건 이 자리가 늘 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도서관에 비해 노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편이다. 신문 보기 경쟁이 치열하다. 나는 가끔 이 도서관에서 글을 쓰면 참 집중이 잘 됐다.


이 도서관은 연혁을 찾아보지 않아도 다른 도서관보다 그 역사가 오래됐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절판된 책이나 다른 도서관에 없는 사회과학서가 보기 좋게 들어차 있다. 컴팩트하게 자료 조사하기 쉬운 곳이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책이 왼쪽과 오른쪽 서가 양쪽으로 구분돼 있어 책을 찾기도 매우 편하다. 그래서 책 하나를 찾으면 그와 연관된 다른 책들을 줄줄이 둘러볼 수 있다. 발췌독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마포구청 20층에 있는 하늘도서관은 애매하다.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까지 올라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점심 때 책 빌리러 오는 구청 직원들도 꽤 되는 듯하다. 회사 같은 건물에 도서관이 있다는 건 최고의 직원 복지일 테다. 다른 동네 도서관에 비해 어수선한 편이다. DVD를 볼 수 있는 공간이나 노트북 좌석은 따로 없다. 뷰가 좋아 약간 카페 같은 느낌도 난다. 백색 소음이 필요할 때 찾기 좋다.

 

마포중앙도서관은 하루 종일 지내도 지루하지 않은 곳이다. 도서관에선 카페처럼 잔잔한 음악이 나온다. 지하 1층엔 커피숍과 앤티앤스, 김밥집 등이 있다. 그 유혹을 참기 쉽지 않다. 도서관은 3~4층인데 3층보다는 4층이 조용하고 사람도 덜 붐비는 편이다. 3층엔 매력적인 공간이 있는데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자리가 따로 있고 DVD 감상도 여럿이서 할 수 있도록 큰 모니터를 구비해 놓았다. 중앙도서관은 항상 사람이 많지만 그만큼 자리도 많다.


다만 이 도서관을 둘러보면 우리가 거대한 ‘시험 사회’에 살고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일본어능력시험을 준비하는 은퇴자부터 학교 시험 공부하는 중고등학생, 무엇보다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참 많다. 그래서 가끔은 머리가 띵해진다. 그리고 도서관 전체에 정수기 물컵이 없다. 개인이 텀블러를 지참해야 한다. 나는 중앙도서관을 메인으로 잡고 가끔 서강도서관이나 하늘도서관에 간다.     


한 가지 중요한 건 휴관일이다. 하늘도서관은 매주 월요일, 서강도서관은 화요일, 중앙도서관은 금요일에 문을 닫는다. 바보처럼 각 도서관 모두 한 번씩 휴관일에 가본 적이 있다. 그 때의 허망함이란!            


그러고보니 도서관에 마지막으로 간 게 반 년전쯤이다. 가까운 대형서점 서가만 둘러보다보니 읽는 책이 거기서 거기고 고전과는 영 멀어지는 듯하다. 서점 큐레이션이 날로 진화한다지만, '800은 문학, 600은 예술' 따위의 번호를 익혀가며 책 찾는 재미는 도서관에서만 찾을 수 있다.


이전 08화 그들 각자의 알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