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피곤한 날이었다. 꽃가루가 눈처럼 날리는 나날들. 알레르기 비염약을 먹고 하루종일 잠이 쏟아지는 통에 거의 반쯤 정신을 못차리던 낮시간이었다.
"오이소박이 해놨다. 이번 꺼 짱 맛있음."
엄마에게 메세지가 왔다. 아-내일 할거라고 가지러 오라고했었지.
그제야 어제 엄마에게 받은 전화가 생각이 나고 집에 가며 들르겠다 했던게 생각이 났다. 하루종일 음식 장사를 하고서 또 저녁에 자식들 줄 오이소박이를 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얼른 가지러가서 리액션을 실컷 해주고 와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다음날이 되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약기운인지 만성피로탓인지 자꾸만 감겨오는 눈을 겨우 뜨고, 졸음껌을 씹으며 엄마집에 들렀다.
퇴근하며 들르는 길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 엄마는 또 뭔가 하고 있다. 가만 보니 머윗대 껍질을 벗기고 있다. 엄마가 참 자주하는 음식인 머윗대 나물은 바지락과 들깨 간 물로 육수를 내어 만든다. 담백한 맛이 나서 나도 꽤 좋아하는 반찬이다. 엄마는 정말 부지런하다. 싱크대위에는 또 나 줄려고 싸놓은 껍질 다 벗겨둔 더덕이 보인다. 내가 더덕에 눈길을 주자
"더덕은 맛은 없더라. 아는사람 누가 사다 준건데- 국산이 아닌가? 그래서 그런가 별로드라. 그래도 먹을만은 하니까 가져가서 먹어."
"응응-"
엄마 방에 들어가 침대에 벌렁 누웠다. 눈이 감겨온다. 주방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온다.
"더덕은 이서방 좋아하니까 그래도 가져가고, 오이소박이랑 챙겨가. 딱히 줄게 없네. 너네 집에 초장은 있냐"
"으이그- 그놈의 이서방은. 딸이나 챙겨~ 초장 없지 없지~ 우리집에 있을리가-"
"그럼 그것도 담아줄게."
"아라써-"
몸이 침대로 푸욱 꺼지는 것 같다. 정신줄을 부여잡고 건성건성 대답했다. 하지만 집에는 가야한다. 이제 여기는 우리집이 아니다. 나는 벌써 진작에 십 년도 전에 독립해서 나갔는데, 어쩐지 엄마는 아직도 육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부모님 집에서 그렇게 나가고 싶었다. 집은 좁았고 혼자 있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좁은 집이 무척이나 아늑하게 느껴진다.
결혼하고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계속 하는 나에게 엄마는 자주 이렇게 말한다.
"반찬 다 사다먹어. 바쁜데 해먹지 말고."
"빨래 가져올래? 엄마가 해줄게."
그럼 나는 말한다.
"아- 됐어- 내가알아서 잘해애-"
그러다 어떤 날엔 또 이렇게 말한다.
"이거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서방 해줘. 남편도 좀 챙기고 그래애-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시어른들한테 전화 자주해드리고. 니가 살갑게 굴고 그렇게 해애-"
그럼 나는 말한다.
"아- 됐어- 내가알아서 잘해애-"
엄마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쩔 수 없는 엄마 안의 여러 엄마.
딸이 엄마보다 잘나서 성공하면 좋겠는 옛날 젊은 날 꿈을 가진 엄마와 그럼에도 시댁이나 남편한테 예쁨받았으면 하는 별 수 없는 딸 가진 옛날 엄마.
평생 놀아본 적 없이 장사 하면서 시댁친정가족형제 대소사도 살뜰히 챙기고 음식도 잘하고 살림도 깔끔하게 하는 엄마는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친정엄마 보러가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다하시며 나보고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말하라고 다해준다 한다.
우리 엄마는 이제는 친정엄마역할까지 완벽하게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때론 답답하고 때론 짠하고 그리고 미안하다.
그럼에도 소비보다는 생산의 기쁨이 더 고차원적인 수준의 행복이란 말을 주워들었으니까 엄마에게 무한한 생산의 기쁨을 안겨드리기 위해라는 핑계를 대며 오늘도 아기새처럼 반찬을 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