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일어나는 드라마틱한 일들과는 달리 여자의 고민은 무척 사소한 일처럼 느껴져서 고민이라고 말하긴 조금 힘든 것 같았다.
어떤 것이냐면 백세시대에 노후 준비를 다 하기도 전에 늙고 계신 부모님의 노후를 어떻게 책임질건지에 대한 걱정이나, 그보다 앞서 부모님 노후 걱정은 하면서 정작 여자의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 아니 그보다 여자의 나이쯤 되면 회사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나, 아니 그것보다 시급한 건 역시 시력이 나빠 계속 사용하고 있는 일회용 콘택트렌즈는 몇 살까지 사용해도 되는 건지 그런 것들..
여자는 이 모든게 너무 심각한 고민이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이런건 보편적이고 일반 적인 고민이라고 하며 코웃음칠 것 같은 고민들.
야. 그게 무슨 고민이야. 그런 고민 안하는 사람이 어딨냐.
라고 응수하며, 해답을 찾지 못한 수학 문제같은 게 되어버리고 말 대단찮은 이야기들인 것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원래 사소한 사건들이 대부분이 아닌가. 모두가 그렇게 대단한 사건만 떠안고 사는 거였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건드려보아야 했나?
여자는 대입을 앞둔 19살에 멘토가 정말 필요했었는데, 결국은 만나지 못한 채로 입시는 실패였다.
결과론적으로 회사생활 잘하고 먹고살고 있으니 인생 전체로 보면 뭐 나쁘진 않았지만 아주 탁월하지만은 않은 선택을 했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결혼을 앞두고 있던 29살엔 엄마 손에 이끌려 철학관에 결혼날짜를 받으러 가서는 명리학을 공부한 도사님에게 너의 커플의 궁합이란 건 이런거다하는 다소 운명론적인 관점의 먼 미래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멘토링 비슷한 걸 받은 것도 같다. 그 때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내 결혼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는 걸 보니 이야기라는게 참 그렇다. 듣고나니 무시가 안되는 것들이 생긴다.
중년(!)을 코 앞에 둔 39살에도 인생에 대해 가이드를 해 줄 누군가가 절실했다. 39살도 완벽한 어른일 수는 없었던거다. 나만 그런가? 아무튼 그냥 설날 떡국을 마구마구 먹어버린 덕인지 얼떨결에 앞자리가 바뀌어 불혹이란 게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점점 흐를텐데, 49살은 혹은 노년이 되는 59살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할까?
예를들어 자녀가 없는 노인의 삶은 어떤 건지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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