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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형길 Aug 05. 2024

분위기는 무엇일까.

그는 인물을 찍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음에도 그가 별말이 없자 약속 시각에 보자고 했었다. 어떤 유의 사람인지 궁금해서 좋다고 말했다. 그 후 확인 차 시큰둥한 답변을 했었지만,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간 거였다. 길치인지라 택시를 타고 그곳에 도착해야만 했다. 5분 정도 늦을 거라는 지도 안내의 발을 동동 굴렀다. 가고 싶은 곳이며 아껴둔 장소였다. 꼭 그와 가야 하는 건 아녔다. 솔직히 그가 아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문을 열자마자 그의 옆모습이 보였다. 흰 셔츠에 넥타이를 하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로 책을 읽고 있었다. 머리는 덥수룩해 눈을 약간 덮을락 말락 했다. 손님이 들어와도 모르는 것을 보니 먼저와 분위기에 젖은 사람 같았다. 그뿐이었다. 나와 상관없었다. 나는 분위기와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한번 보고 말 사람이니까.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여유는 없으니까. 

    

나는 바쁘게 생각했다. 분위기는 무엇일까. 타인과 타인 사이 음미할 수 있는 같은 맛일까. 타인이 없는 나의 분위기 내에서도 사랑이 싹틀 수 있을까. 아니, 분위기가 사랑을 깨우는 것일까. 사랑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면서 왜 이런 생각이 들까. 의미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난다면, 다시 사랑하게 될까.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닐 거다. 도무지 이미 내가 오기도 전부터 심취해 늘어져 있는 남자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사실 가까이 가기가 싫었다. 나는 분위기를 거부하는 어떤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지만, 분위기 자체를 싫어하는 건지. 저 남자 특유의 느낌이 거북한지는 알 수 없었다. 왜인지 우리 사이에 무언가 생길 것 같은 불편한 예감이다. 그렇게 머리는 헷갈리는 와중에도 몸은 그의 테이블 근처까지 와있었다. (노래가 재즈로 바뀌었다)     

-     

초록빛은 초록의 공간을 만든다.….     

그의 눈동자는 깊었고 무언가 나를 이미 겪어본 사람처럼 굴었다.

나는 그게 좋으면서도 싫었다.

뭐랄까 나에게는 그게 사랑 같달까.     

나는 순간 편안해졌다. 그렇다고 편안해졌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딴에 꼭 확인해 보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앞으로 분위기가 없는 곳으로 가도 내가 그녀를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을지. 그녀는 나를 지금처럼 똑같이 대할 수 있는지. 상처를 지우고 싶은 마음과 정말 사랑은 분위기로부터 오는지에 대해서. 골똘하게.     

-     

분위기는 하나의 망상이고 착각인 거죠. 

그녀가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내게 도발했다.     

차츰 그녀가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확실치 못한 순간들을 믿는 거는 바보 같은 사람이나 하는 거고, 감정에 휘둘리며 자초한 거짓 일선이라고요.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나.

나는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싶다며 그녀에게 손짓한다.     

주변이 그녀에 의해 고요해졌다. 사실 나와 그녀 말고도 몇몇 사람들이 와서 이 공간들을 채우고 있었다. 팔 하나씩을 걸친 채. 나머지 한 손으로는 책을 들고 뒤적뒤적. 그들은 하나같이 빈 구석에 앉아 관심받기를 거부한 사람 같았다. 지쳐있었고 메말라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귀에는 헤드폰이 꽂혀 있었고 당분간 절대 빼지 않을 것처럼. 책장 끝에 딱 붙어 시체처럼 기대 있었다. 나의 관점에서 그들은 애초에 그 공간만이 줄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일침인지 비난인지 시비인지 모르겠을 딴지에 나 혼자만 당황스러워했다.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나는 당황인 기색을 숨기려 더욱 차분하게 답했다.     

왜 분위기에 빠져 있죠. 분위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 데요.? 자칫 분위기로 사랑 비스름한 감정을 느꼈다 한들 분위기를 통해 얻은 사랑은 무엇이 남을 수가 있죠?


그녀가 날을 세웠다.     

나는 잠시 생각했고 그녀를 진정시키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내가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인들 얻고 남는 것만이 중요한가요. 그저 저와 당신에게 주어진 이 순간에 빠져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마주하는 것, 그런 어떤 새로운 감각이 깊숙한 상처를 치유하게 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잖아요. 저는요. 현재만으로는 과거를 과거에 둘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다시 과거를 세차게 끌어와야죠. 설령 그게 아프더라도요. 그래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녀도 생각한다.     

그럼 당신은 꼭 무엇을 남기려고 누구를 만나나요. 그건 사랑하고 또 헤어지고 후에 아는 일이 아닌가요? 나는 그녀의 가벼움에 지지 않으려 거세게 덧붙였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려고 언성을 약간 높인다.     

여전히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사람들은 없었고 헤드폰은 굳세게 그들의 귀를 지켰다.     

그렇지만, 꼭 그런 건 아니지만. 허락이 없는 순간은 사랑이 아니라 생각해요. 그녀는 말했다.      

허락이 없는 순간은 또 무엇인데요. 당신 오늘 이런 알 수 없는 질문 따위나 하려고 나를 보자 한 건가요. 아니면 오늘 이상한 꿈이라도 꾸고 오셨어요. 왜 갑자기 나타나서 저를 괴롭히는 건지 그것부터 설명해 주셔야겠네요. 생각해 보니 억울했다. 남자의 얼굴이 조명과 상관없이 붉어졌다. 이제 분위기는 그에게 아무 소용이 없는 듯 보였다.     


그녀가 박자를 늘이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당신만이 나의 알 수 없는 질문에 답하려 하니까요.     

이보세요!. 세상에 나 말고도 당신의 그 쓸데없는 질문들에 이상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천지 때깔이라고요. 오늘 번지수를 잘못 찾았네요. 이제는 남자의 손까지 붉어졌고 일어나려 가져온 가방을 챙기려 했다.     

그 사람들은 당신이 아니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남자는 어안이 벙벙해 주변에 있던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여자는 목구멍 끝에 물이 넘어간 것을 확인한 뒤에 말을 이었다.       

당신만이 내게 줄 수 있는 알맞은 답을 알려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상하게. 그 한마디로 나는 마음이 바뀌었다.

아직도 이런 내가 싫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말 한마디에 따스해지고 차가워지는 사람. 

갑자기 분위기도 바뀌었다.

노래는 그대로였다.

답을 대신한 질문이 우리는 분위기를 바꾸어 놓은 거다.     

남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개를 숙여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음. 잠시만요 당신이 말하는 사랑과 그 분위기란 내가 말하는 분위기와 다른 것 같아요.

당신 말대로라면, 나는 당신 질문에 대한 답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고, 그것이 사랑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그렇다면, 성자의 혜안이 가득한 성서나 읽어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곳에는 당신이 생각한 온갖 질문들에 원하는 대답도 같이 적혀 있을 텐데요.

     

그 책들은 사랑만을 알려주지, 당신을 알려주지 않잖아요. 오로지 당신의 사랑은 당신으로부터만 알 수 있을 테죠. 당신의 사랑을 알아서 다시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요.     

남자는 머릿속에 반박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입을 열려 했으나.     

들어보세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나의 질문은 분위기란 무엇이냐는 거예요. 그녀가 치고 들어왔다.     

 거참, 앞서 분위기에 대해서는 연설을 하지 않았소. 아니, 잠깐만 나는 당신에게 분위기에 대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지 당신 정체가 뭐요! 왜 나를 꿰뚫어 내 속마음까지 읽은 겁니까?     

나는 그전에 당신에게 묶여있던 과거에 어떤 분위기는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물어보고 싶지도 않고요. 지금은 나의 말을 듣고 정리된 당신과 나의 분위기를 묻고 싶은 겁니다. 그녀가 일어나더니 서점 주변 책을 하나씩 들었다.

      

그 와중에도 말은 쉬지 않았다.

분위기란 건.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받았던 옛사랑에 불과해요. 이제는 그만 벗어던지고 내가 들어갈 수 있는 당신이 누군가를 잊으려 했던. 눈동자와 침묵과 그 떨림을 보내 주세요. 새로 깃든 분위기를 정의해 주세요. 그래야 내가 당신이 새로 말하는 사랑의 흐름을 믿고 또 다른 관계를 시작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녀는 서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이상하고 기괴하고 말도 안 되고, 시간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

사랑은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하고 누가 누구인지 알게 한다.      

당신이 나와 함께 하고픈 분위기. 전에 있던 분위기를 가져와 내게 씌우지 말고. 나는 나대로 대해줘요. 나는 나대로 사랑해 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녀가 멈춰 섰다.     

어떻게 그걸, 지금껏 내가 사랑을 못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인정할게요. 나는 다 죽은 옛 연인들에 사로잡혀 그걸 분위기라 착각하고 살았어요. 헤어져도 분위기를 사랑했어요. 나는 괴로운지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끝에서는, 대화가 없었어요. 불투명한 언어만이 가득했어요. 분위기랍시고 서로를 붙들어 힘들게 했죠. 만나야 할 때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외면했어요. 안되는 사람을 붙잡고, 떠나간 사람을 붙들기만 했어요. 그게. 붙들고 있던 사람이 나의 모습인 줄 몰랐거든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했어요. 마지막까지도 사랑하려고 이별한 나를 남기려 애를 썼었는데, 결국 아무것도 돌이키지 못했군요. 그래서 더 괴로워했어요. 왜 이런 나의 상처를 건드는 거죠. 좋아질 게 뭐가 있냐고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었는데요? 가만히 듣던 그녀가 끝내 말을 자르고 말을 걸어 주었다.     

두서없는 우리의 대화는 빨랐고

어떻게든 그녀는 나를 말을 하게 해서 괜찮아지게 했다.

실제로 괜찮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번도 살면서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내가 사랑한 누군가가 나를 영원히 사랑해 줄 수 있냐는 질문만이 많았던 거다. 내가 잘돼야 하는 생각과 내 사랑이 잘돼야 한다는 강박감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보통 헤어지고 나서는 지나간 그의 말들을 그 사람처럼 사랑할 때가 많아요. 그녀가 계속 말했다. 그 익숙함에 못 이겨 다시 걸려드는 본인의 구차함이 당신은 좋나요. 마음에 드나요. 그러한 모습이 좋으면 그대로 살아가세요. 계속해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요. 그러나 본인을 사랑하지 못하고 앞으로 더 나은 내가 되려 머뭇거리는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함을 느꼈다면, 인제 그만 마주하세요. 

     

끊어내야죠. 강인하게 사랑을, 사랑이었다고 마무리하는 자발적인 용기를 가질 겁니다. 이번에야말로 기존에 있던 분위기란 것들은 내려놓고. 나의 용기로 나의 사랑을 지키려 했던 사랑에 다녀오라는 부드러운 말을 건네 볼 거라는, 어때요. 지난 사랑은 이젠 다신 돌아오지 못할 곳일지라도 그 끝으로 인사하며 보내겠습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몇 초간 있었는가 적는다.

사랑을 다녀와 가 아닌 다녀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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