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의 뿌리

by 거문고

유년시절, 할머니는 나의 든든한 지지대였다. 공부를 하지 않고 놀아도, 텔레비전을 많이 봐도, 반찬투정을 해도 할머니는 무조건 내 편이 되어 주었다. 스무 살 때 다른 지역으로 대학을 가기 전까지, 나는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서 할머니와 나는 같은 방을 썼다. 할머니와 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고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무서울 때는 할머니에게 꼭 안겨서 잠을 잤다. 성적이 떨어진 날은 일부러 할머니 뒤에 숨어 있었다. 그러면 할머니가 내 편을 들어주었고 덜 혼날 수 있었다.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던 첫날, 나는 아주 많이 울었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생활 내내, 나는 할머니에게 자주 연락하지도, 고향에 찾아가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형편, 초라한 가족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 앞에서 보이지 않으니 마치 그 상황이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최대한 고향에 가지 않으려 했다.


오랜만에 고향에 가면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가자미조림을 한가득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얼마 먹지도 않았다.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그때 나는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음식을 거의 끊다시피 했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뭐라도 하나 더 먹이려 애썼고 나는 음식을 거부하기 바빴다. 가족들과 지내는 동안 나는 늘 나갈 궁리만 했다. 도저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으니까.

괜히 미안했던 나는 할머니에게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공부하느라 바쁘다고. 할머니는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며 애써 나를 붙들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덜 미안하기 위해 할머니에게 말했다.

내가 취직해서 돈 벌면 할머니가 좋아하는 냉면 같이 먹으러 가자고.

직장을 갖고 나서도 나의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고향에 가기를 꺼렸다. 내 삶에 고군분투하느라 가족은 잊기 바빴다. 그러다 할머니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 할머니는 서서히 기억을 잃어갔다. 그때도 나는 같은 말을 했다. 다음에는 더 오래 와 있을 테니 같이 냉면 먹으러 가자고.


올해 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둘이 냉면 먹으러 가자는 약속은 영영 지킬 수 없게 되었다.


독립한 후, 내가 할머니에게 했던 약속은 사실 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것이었다. 언젠가는 할머니와 둘이 시간을 보낼 거라고, 돈을 벌면 할머니가 좋아하는 냉면을 같이 먹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가 했던 약속이 더 큰 마음의 짐이 되었다. 더 이상 지킬 길이 없는 약속이 되어버렸기에.


할머니는 나에게 유년기의 안전지대였다. 나는 할머니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한 지키지 못한 약속들을 할머니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때로 내가 뱉은 약속들 중, 그저 마음 편하기 위해 한 말들을 돌이켜 본다. 그 약속들은 언젠가 지킬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한다. 그리고 죄책감으로 깊게 뿌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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