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끊다

by 거문고

‘욜로’라는 단어는 나에게 멋대로 살아도 될 자유를 주었다. 애초에 'You Only Live Once'라는 말은 한 번뿐인 인생이니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이었을 텐데, 나에게는 내 삶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 자유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책임지라고 등 떠밀지 않았음에도, 내 삶에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나의 부모는 한 번도 나에게 자신들의 노후를 책임지라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저절로 나를 포함해 3명 몫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때로 그것이 억울했고 때로는 아팠으며 자주 죄책감을 느꼈다. 내 월급은 많지 않았고 어느 정도 정해진 삶의 단계를 그대로 걸어가려니 그 모든 것들이 힘겨웠다. 결혼, 내 집, 육아. 이 모든 단계들에서 나는 뒤쳐질 것이 뻔했다.

어느 순간 '어차피 뒤처질 바에는 차라리 막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자포자기의 심정이었지만 그때는 나야말로 진정한 욜로족이라고 생각했다.

해외여행에 중독된 것처럼 장거리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에 가서 그 나라의 음식을 먹고 사람을 만나는 동안은 분명 즐거웠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현실은 변함이 없었다. 여행을 가서 얻은 통찰도 없었다. 나는 그저 도망치고 싶어 비행기를 탔을 뿐이니.

나는 한 곳에 뿌리내리는 곳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을 즐기는 편도, 모험가 유형도 아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의 모든 절차, 그러니까 공항에 일찍 도착하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과정도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피곤하고 귀찮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먼 곳으로. 몇 주씩 긴 여행을 가기도 했고 짧은 여행도 즐겼다. 말로는 여행을 사랑한다고, 여행을 통해 자유를 느낀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냥 도피였다. 순간 반짝이는 불꽃일 뿐이었다.

여행을 간 순간도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돌아와서는 더 큰 공허를 느꼈다. 마치 삶에 아무런 책임도 느끼지 않으려는 막무가내 아이처럼, 나는 어른이었음에도 내 삶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으려 했다. 애써 모든 삶의 숙제들을 외면했다.

친구들은 나에게 부럽다는 말을 했다. 너처럼 심플하게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고. 그때마다 나는 웃었지만 속은 곪아갔다. 네가 부럽다는 말조차 심플하게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초라했다.

잠시 떠난 여행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동반한다. 내 일상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찰나의 기쁨은 더 큰 공허를 불러올 뿐이다. 일상에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여행은 그저 도피일 뿐이다.

나는 여행을 끊었다. 더 이상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고 열 시간씩 비행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지 않는다. 인정했다. 나는 나의 일상조차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진짜 욜로족이 될 수 없었다. 한 번도 현재를 제대로 즐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책임을 벗어던지고 도망칠 것을 찾았던 것뿐이었음을 드디어 인정했다.

keyword
이전 13화사랑받기 위한 고군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