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소통 불가

by 거문고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은 주변에 친구가 저절로 모여드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주변에 언제나 친해지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생각한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외향적이고 밝고 털털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밝고 털털한 사람인 척했다.


나와 가까이 지냈던 친구 중에는 자존감이 높아서 저절로 무리에서 중심이 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친구는 자신감이 넘쳤고 어떤 순간에서든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런 사람 주변에 있으면 나도 함께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학창 시절에는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기에 그 순간이 나에겐 매우 중요했다. 내가 무리에 속해 보통의 관계를 맺어간다는 기쁨이 컸다.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나의 의견보다 그 친구의 의견이 더 맞는 것 같고 내 의견을 내세웠을 때 옳은 결과가 나타날 거라는 자신도 없었다. 친구는 나에게 명확한 답을 내려줬다. 그리고 그 친구가 살아가는 삶이 참 쉽고 빛나 보여서 그 말대로 하면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 사람을 진짜 친구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친구가 생각하는 나는 착하고 단순하며 밝은 그런 사람인데 실제의 나는 전혀 아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진짜 내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시간이 갈수록 친구를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다. 연극은 언젠가는 끝나게 마련이니.

외향적인 척, 털털한 척, 밝은 척 살아가는 연극이 끝난 후, 남은 것은 실제와 다른 나로 살아간다는 자괴감과 마음의 상처뿐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외톨이였던 나는 언제나 ‘내 사람’을 만드는 것에 집착했다.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부류의, 외향적이고 밝은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했다. 그들의 커뮤니티에서 나도 소외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 사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그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한 때 삶이 엮여 줄기차게 만났던 사람일지라도 어느 순간이 되면 멀어진다. 각자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변치 않는 인연이고 싶었지만 그런 것은 나에게 존재할 수 없었다. 나를 솔직히 드러낸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 연기에 지쳐 멀어진 마음은 관계에도 선을 만들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호응만 하던 내가 변하자 매일같이 주고받던 연락도 뜸해졌다. 굳이 연락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껍데기가 벗겨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낯설어하는 사람과는 저절로 멀어졌다. 외로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벼워졌다. 퇴근 후 연극을 하는 대신 그 시간을 나 자신에게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새롭게 누군가를 만날 의지도, 만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남은 인연들을 좀 더 소중히 여긴다. 애쓰지 않는 관계는 오히려 오래 유지되었고, 가볍게 마음먹은 관계는 상처를 남기지 않았다.


서로에게 정성을 다 하지 않는 관계는 진짜가 아니라 생각했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관계에는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 있었다. 진짜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관계는 애초에 진정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솔직하게 다가갈 수 있는 관계만이 정성을 다 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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