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페널티

by 거문고

어릴 때 나는 뇌전증 환자였다. 뇌전증과 관련한 최초의 기억은 명절이다. 친척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나는 갑자기 손을 떨며 쓰러졌다. 그리고 발작은 내 몸으로 번졌다. 모두 놀라 어쩔 줄을 몰랐고 나는 그대로 병원으로 갔다. 내가 뇌전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또 하나의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넘어가는 게 없는지, 나는 건강할 자격조차 없는 것인지 끊임없이 세상을 원망했다.


소아뇌전증은 완치가 가능한 것인데 나는 아직까지 약을 끊지 못했다.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피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증상은 없지만 완치가 되지 않은 상태라 약은 먹고 있다. 나는 내가 남들은 먹지 않아도 되는 약을 먹고 있다는 것 때문에, 내 몸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 삶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대학교 다닐 때, 1년은 기숙사에 살았었다. 그때 샤워장에서 쓰러졌는데 벌거벗은 채 쓰러진 나를 옆 방 언니가 방까지 데리고 왔다. 머리에 큰 혹이 생기고 몇 분 정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깨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는 것이었다. 타인에게 이런 모습을 들킨 것이,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를 들킨 것이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억지로 괜찮은 척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털털한 척하며 지냈지만 사실 다른 누군가가 나의 병에 대해 알게 될까 봐, 내가 먹고 있는 약에 대해 알게 될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고장 났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페널티를 가지고 태어난 나를 원망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그 누구에게도 내가 먹고 있는 약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그만큼 나에게는 나의 병이 들켜서는 안 되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고장 난 나를 사랑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다른 친구들처럼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했다. 고민의 결과, 모든 나의 페널티를 감추고 괜찮은 척 살아 보기로 했던 것인데 전혀 괜찮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아파졌다.


나의 병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교사가 된 이후였다. 어느 날, 상담을 하러 온 학부모 한 분이 딸이 뇌전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아이의 어머니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저도 어릴 때 뇌전증 있었어요. 약만 잘 먹고 컨디션 조절 잘하면 소아뇌전증은 완치 가능하잖아요. 너무 걱정 마세요.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 말이 나왔다. 습관처럼 감추려던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모든 껍데기가 녹아내려버렸다.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드러내면 모든 아픔은, 사실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그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의 아픔은, 오랫동안 감춰온 나의 페널티는, 나와 같이 아픈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니다.


감추기에 급급한 아픔은 결국 나 자신에게 큰 콤플렉스이자 상처가 된다. 그것이 내 일상생활을 나도 모르게 잠식해 갈지도 모른다.


감춰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은 결국 남들 앞에서 연기하듯 살아야 하는 날들이 많다는 의미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매 순간 연기하듯 살아가는 것은 더 많은 거짓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내가 나의 페널티를 밝혔을 때, 사람들은 내가 감춰 온 사실을 두고 수군거릴지도 모른다. 나를 멀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두려움을 벗겨내고 나면 진실이 보인다. 사실은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나 스스로가 거짓을 선택했다는 것을.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아직 나는 약을 먹고 있다. 이제 약을 줄이고 있고 아마 몇 년 안에 약을 끊게 될 것이다. 하지만 끊지 못하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이제 더 이상 나의 페널티를 감출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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