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갑작스럽게 살이 쪘다. 식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온갖 자극적인 음식들을 입에 달고 살았기에 살이 찐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게다가 좁은 공간에서 공부만 하다 보니 운동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엄마는 살이 찐 나의 모습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했다. 나에게 외모를 비하하는 발언을 대놓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배려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증명사진을 찍으러 가면서도 넌 지금 살이 쪄서 어떻게 해도 안 예뻐 보일 테니 대충 찍으라고 했다. 그 말은 사진 찍느라 꾸밀 시간에 공부나 하라는 말이었다. 상처 받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내가 살찐 나의 모습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수능을 마친 후, 엄마는 나에게 운동과 소식을 강요했다. 공부할 때는 뭘 먹든 신경 쓰지 않았으면서 수능을 마치자마자 나에게 예쁜 딸이 될 것을 요구하는 태도에 서러움이 폭발했지만 그것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때는 엄마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예뻐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예쁘지 않은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억지로 굶어서 살을 뺀 나는 그제야 예뻐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나쁘지 않게 들렸다. 대학에 간 이후에도 나는 일정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아니 더 낮은 체중을 갖기 위해 억지로 음식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끼도 벌벌 떨며 먹었다. 밥을 먹은 후에는 곧바로 체중계에 올라갔다. 먹은 직후이니 당연히 체중은 늘어 있었고 나는 죄책감을 느끼며 다시 원래의 체중으로 돌아올 때까지 굶었다. 친구들과 밥을 먹을 때도 나는 몇 숟갈 먹고는 밥을 남겼다. 너무 안 먹는다며 한 소리 들을 까 봐 밥 먹는 자리에는 일부러 나가지 않기도 했다. 대학에서의 인간관 계보다 내가 살찌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검증되지 않은 온갖 다이어트 약을 먹기 시작했다. 음식도 거의 먹지 않는데 그런 약까지 먹다 보니 건강이 나빠졌지만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체중이 줄어들기만 하면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몇 번 쓰러지기도 했다.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약을 먹고 굶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 한 이후에도, 나의 외모 강박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예쁜 여자로 보이고 싶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너무 말랐다며 걱정을 할 때도 나는 내 몸에 만족하지 못했다. 더 말라서 옷 입었을 때 내가 원하는 모습이 나오길 바랐다.
내가 다이어트 약 먹는 것을 그만둔 것은 의외로 모든 것들이 사라진 이후였다. 그러니까 직장 생활도 원만하지 않았고, 인간관계는 늘 힘들고 아프기만 했고, 3년의 연애도 끝나버렸을 때.
정말 더 이상 불쌍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거울을 보며 깨달았다. 나는 늘 이렇게 불쌍했다는 것을. 늘 이렇게 아프고 힘들었는데 내가 그 아픔을 무시했다는 것을.
그 날 거울 속의 나는 깡 마른 몸에 검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38kg의 체중을 유지하려 전전긍긍하던 강박증 환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내가 나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어차피 한 번도 드러낸 적 없으니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픔일 것일 테니.
그 날 이후로 다이어트 약 먹는 것을 그만뒀다. 나를 구하기 위해서.
나의 부모는 이런 내 아픔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나는 밝고 긍정적인, 착한 딸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의 나에게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며 수능 끝나고 무조건 살부터 빼라고 했던 말, 넌 몸이 그래서 뭘 입어도 테가 안 난다고 했던 말.
이런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들이 나에겐 상처였는데 가족들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그들에게 한번도 속상하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이어트 약 먹기를 그만두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나는 서서히 내 몸을 알아가고 되찾았다. 이제는 내 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셀룰라이트도 있고 튼살 자국도 있고 피부톤도 예쁘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 몸을 사랑한다.
오랜 시간 내가 혹사시켰는데도 여전히 살아 있는, 나를 지탱해 주는 나의 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모진 시간을 견딘 내 몸이 어떻게 애틋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들 눈에 예쁘지 않아도 된다. 마르지 않아도 된다. 나는 그 날 거울 속의 나를 기억한다. 나에게 제발 구해달라고, 그만하라고 울던 그 얼굴을 기억한다. 그 얼굴은 아름답지 않았다. 안쓰러웠다.
사랑받기 위해 자기를 혹사하는 행위는 결국 결핍이 그 동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는 그 결핍을 채우기 어렵다.
누군가가 나에게 내 몸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한다면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그 말에 상처 받았다고. 억지로 성격 좋은 척 웃고 있을 필요는 없다.
만일 내가 내 몸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부모에게 솔직히 내 마음을 이야기했다면, 억지로 예민하지 않은 척, 밝은 척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내 몸을 그렇게까지 혹사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부모가 나에게 애초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배려했더라면, 나는 나를 더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힘을 키웠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