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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문고 Oct 04. 2023

나의 난소생존기(2)

직감과 불안

 대학병원에서 MRI촬영을 한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했고 애써 그 불안을 억누르려 할수록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마음은 불안했다. MRI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날, '부인암'이라는 글자가 유독 많이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대학병원이다 보니 부인암 환자가 많은가 보다 생각하며 제발 최악의 상황만은 아니길 빌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심장이 내달렸다.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났다. 옆에 있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MRI 촬영상으로 왼쪽 난소의 혹은 경계성 종양으로 보인다고 했다. 크기가 워낙 크니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수술 날짜를 잡겠다고 했고 바로 그다음 주에 수술을 받게 됐다. MRI 결과를 기다리는 며칠 사이, 나는 여러 번 최악의 경우를 떠올렸고 그랬기에 '경계성종양'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었다.  


 "경계성종양으로 보이긴 하지만 정확한 건 조직 검사를 해 봐야 압니다."


 난소에 생긴 종양은 수술을 통한 조직검사 전에는 정확한 판독이 불가하다. 하지만 MRI상으로 경계성종양으로 보인다고 했으니 믿어보기로 했다. 애써 마음을 다독인 후, 비집고 올라오는 불안을 눌렀다. 하지만 이어진 의사의 말은 다시 내 심장을 내려앉게 만들었다.


 "종양의 크기로 볼 때 왼쪽 난소는 절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착이 워낙 심해 여기 온 것이니 복강경 수술은 불가하고 개복수술을 해야 합니다."


 순식간에 훅 들어온 정보에 나는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 워낙 많은 환자를 봐 온 의사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익숙하게 말을 이었다.


 "걱정 마세요. 흔히들 착각하지만 난소는 한쪽이 없다고 해도 기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게 아니라 남은 한쪽이 두 개의 몫을 합니다."


 아 불쌍한 오른쪽 난소. 두 개 몫의 일을 혼자 하게 되다니. 도화지같이 하얘진 머릿속으로 지친 오른쪽 난소를 떠올렸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어쩌면 기적적으로 막상 수술에 들어갔더니 왼쪽 난소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랬다. 나는 이때만 해도 '부정과 회피' 외에 불행을 대하는 다른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여전히 내게는 기적 같은 행운이 따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붙든 채였다.


 "더 늦기 전에 발견해서 너무 다행이다."


 누구보다 부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내 옆에서 굳은 얼굴로 애써 긍정을 이야기했다. 의사가 엄마의 말에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치료에 도움이 된다며 지지했고 나는 작아 보였던 엄마가 사실은 나보다 큰 존재라는 걸 실감했다. 엄마까지 무너졌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후의 시간은 느린 듯 빠르게 흘렀다. 수술을 기다리는 하루하루는 느리게 흘렀지만 매일 같은 날들의 반복이다 보니 하루라는 개념은 흩어져 버렸다.  

 지금 또렷이 기억나는 한 장면은 관장액 4L를 먹으며 화장실 앞에서 대기하는 내 모습니다. 처음 500ml 정도는 마실만 하다고 생각했다. 이온음료 맛이 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두 통이 넘어가는 순간, 차라리 수술을 받는 게 낫지 이건 더 못 마시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지막 500ml가 남았을 때는 눈을 감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숨도 쉬지 않았다. 숨을 쉬었다간 도로 뱉어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새벽까지 장을 비우고는 탈진하듯 잠이 들었다. 눈 떠보니 수술 시간이었고 나는 수술실로 실려갔다.  

 막상 수술은 두렵지 않았다. 나름 두 번의 복강경 경험을 했으니 마취에 취하기만 하면 수술의 과정 따위는 알 수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여기까지 온 과정을 떠올렸다. 난소에 혹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복막염 수술을 받게 된 일, 유착으로 복강경 수술을 중단하고 대학병원에 온 일, 그리고 수술대 위. 올해만 세 번째 전신마취였다. 이렇게 단기간에 세 번의 전신마취를 해도 되는 걸까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 떴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병실이었다.  


 "지금부터 네 시간 동안 잠드시면 안 돼요. 보호자께서 계속 깨워주세요."


 전신 마취 후 회복을 빨리 하기 위해서는 깊은 호흡을 내쉬며 마취 가스를 내보내는 게 중요하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깨어있으려 노력했다. 내가 잠들려고 하면 옆에 있던 엄마가 흔들어 깨웠다.  


 "내장 흔들리는 거 같아. 흔들지 말고 말을 걸어 줘."


엄마는 내 요구에 잠시 생각하더니 미안한데 할 말은 없다고 했다. 그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말 엄마 다운 대답이었다. 그 이후 네 시간 동안 엄마는 정말 별말 없이 내가 잠들려고 할 때마다 내 몸을 흔들어 깨웠다. 이어진 회복기간 동안에도 엄마는 다정하진 않지만 굳건한 태도로 내 옆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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