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나는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마드리드에 3박 4일을 머물렀다. 숙소에서 늘어지게 자고 난 후, 한국으로 곧 돌아가는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검색을 거듭한 끝에 ‘소로야 미술관’을 찾았다.
소로야 미술관은 화가 ‘호아킨 소로야’가 생전 가족들과 머물던 공간을 그의 그림으로 전시한 곳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집 곳곳은 소로야가 그린 그림으로 가득하다. 스페인을 떠나기 전 뭐라도 더 해보자 싶은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한 관람이 두 시간을 훌쩍 넘겼다. 그림에서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온기, 애정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호아킨 소로야는 가족을 모델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특히 부인 클로틸드를 향한 애정 때문인지 클로틸드의 그림이 많았다. 호아킨 소로야는 유명해진 이후에도 가족들을 영감의 원천으로 소중히 여겼다. 여름마다 가족과 함께 발렌시아 해변으로 휴양을 갔고, 그때 남긴 그림들은 지금도 그의 대표작으로 여겨진다.
발렌시아 해변을 산책하는 클로틸드, 해변을 뛰노는 아이들, 물놀이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는 아이들. 물결은 빛을 받아 일렁이고 소로야의 시선이 닿은 사람들의 몸도 세상과의 경계를 잊은 채 빛나는 순간과 하나가 되어 있다. 부러웠다. 그리고 지금도 부럽다. 다른 누구보다 호아킨 소로야의 아들 딸들이. 부모로부터 나의 존재가 ‘완벽한 행복’으로 기억된 소로야의 자식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스페인의 한낮은 뜨거웠다. 바깥의 모든 것들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 타들어갈 것 같았다. 소로야 미술관은 외부의 현실과는 상관없이 따뜻하고 안온했다. 작은 정원에서는 그림 강습이 한창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그러다 문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미술관을 나왔다.
어릴 때, 나는 바닷가 근처에 살았다. 여름 방학이 되면 친척들이 모여 해수욕장에 가곤 했다. 튜브를 타고 바다에 떠 있는 동안은 높은 파도가 두렵지 않았다. 모래사장을 뛰고, 모래성을 쌓고, 구덩이를 파 물길을 만들고, 컵라면을 먹었다. 여름날의 해수욕장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행복했다. 물론 금방 사라져 버릴 행복이긴 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부모는 다시 사이가 냉랭했다. 그들은 자식을 위해 해수욕장에 놀러 가고 끼니를 챙기고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아빠의 사업이 어려워지고 힘든 와중에도 여름마다 해수욕장 가는 것만은 멈추지 않았다.
아빠는 때로 어린 나를 안고 바다 위를 떠다녔고,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었다. 담배를 문 채 모래사장에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아빠의 웃음은 부드럽고 해맑았다. 이후에 더 힘든 일이 닥쳐왔을 때, 나는 그때를 떠올렸다. 아빠가 부드럽게 웃던 순간을. 그 순간은 아무리 그가 변하더라도 그의 곁을 떠나지는 않은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항암 치료를 하는 동안, 본가에서 부모의 간호를 받았다. 내 최악의 상상은 내가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며 그들을 병간호하는 것이었는데 반대로 이루어진 셈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일에 화가 났다. 정말 ‘어쩔 수 없어서’ 상황을 겪어나갈 뿐, 그 상황을 수용할 생각은 없었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감정 기복이 유독 심했다. 나는 서슴없이 화를 냈고 모든 감정을 쏟아냈다. 어린 시절 참았던 몫까지 모조리 토해내기라도 할 기세였다. 나조차 내가 낯설 정도였다. 심지어는 어릴 때도 하지 않던 반찬투정을 했다. 반찬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괜히 한 가지 반찬으로만 밥을 먹었다. 부모가 내 눈치를 보는 날이 많아졌고, 솔직히 나는 그걸 원했다. 내가 아프기 때문에 부모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저녁, 기분이 나빴던 나는 괜히 트집을 잡아 반찬투정을 하고는 밥을 먹지 않았다.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를 위해 닭백숙을 만든 참이었다. 다음날이 되자 극심했던 감정기복이 가라앉았고, 약간 머쓱해진 채 거실로 나갔다. 배가 고팠다. 부엌에선 닭백숙을 다시 끓인 냄새가 났다. 막 밥상을 차린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가 부드럽게 웃었다. 나도 웃었던 것 같다. 눈이 마주쳤다. 저절로 어릴 때의 해수욕장이 떠올랐다. 아주 오랜만에 그와 진심을 나눈 순간이었다. 물론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때로 내 삶에 닥친 모든 힘든 일을 부모의 탓으로 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가끔은 일부러 모든 일을 망쳐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들 나름 행한 최선을 떠올린다. 그건 여름날의 해수욕장을 연상시킨다.
소로야 박물관에서 기념엽서를 여러 장 샀다. 대부분 발렌시아 바다를 배경으로 한 엽서다. 2년 전, 내가 그의 그림 중 유독 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림에 끌린 것은 이유가 있었다. 아빠와 닭백숙을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