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를 하는 동안은 내내 면역 수치가 불안정했다. 조금만 부딪혀도 멍이 들고 쉽게 피로해졌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는 건 불안해서 주로 집 근처 카페와 집을 오가곤 했다. 몸이 개운한 날은 가볍게 하이킹을 하거나 바다를 보러 가고 그게 아니면 집에서 요가를 했다. 운동은 필수라는 담당 의사의 말 때문에 어떻게든 할당량은 채우려 한다.
개복수술을 한 탓인지 배에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아 요가의 모든 동작이 예전보다 어렵다. 하지만 어느 순간 팔이 바닥에 닿기 시작하고 배에 조금은 힘이 들어간다. 이런 사소한 변화를 알아채고 기뻐하는 것이 요즘의 일상이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할 것 같았는데, 일 년 간의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은 그 지루함이 바로 안녕이라는 것이다. 지금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굳이 누군가를 만나기보다 내 공간을 정리하고 차분하게 할 일을 한다.
되도록 요리를 직접 해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요리를 하는 동안 잡생각이 사라진다. 그냥 식재료를 씻고, 손질하고, 썰고, 냄비에 넣는다. 어떤 날은 요리를 하는 내내 기분이 좋고 어떤 날은 텅 비어있다. 기분이야 어떻든 나를 부양하는 일은 멈출 수 없으니 움직이고 먹고 씻는다.
꽤 익숙해진 루틴이 깨진 날은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일부러 침대 밖을 나오지 않았다. 무려 세 시간이나 휴대전화를 보거나 천장만 봤다. 오후에 있을 mri검사를 위해 8시간 동안 물도 마실 수 없었다. 항암 이후 첫 정기검진이었다. 관리를 성실히 했다고 생각하지만 긴장은 어쩔 수 없다. 거울을 보니 머리가 꽤 많이 자랐고, 날도 더워지니 굳이 가발을 쓸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냥 병원으로 갔다.
채혈을 하고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조영제 투여를 위한 주삿바늘을 손등에 꽂았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고 MRI 기계에 누웠다. 기계 소리는 귀마개를 해도 거슬린다. 눈을 감아 공간감을 잊으려 해도 답답하고 불안하다. 만일 재발된다면, 절대 항암 치료를 받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일기장에 적어둔 말이다. 그 과정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기적을 믿어서가 아니라 희망을 갖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다시 불행이 닥친다면 아무 희망도 없이, 누군가의 기적 같은 사연에 기대지 않고, 오롯이 내 힘으로 나를 바로 세우고 싶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상관없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의지를 쥐어짜 내야 하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동안 손등의 주사를 통해 조영제가 들어온다. 몸이 뜨거워진다. 그러고도 한참을 이어지다 드디어 기계의 소음이 멈췄다.
"수고했습니다. 괜찮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나는 습관처럼 웃는다. 이제 손등의 주삿바늘을 빨리 빼버리고 싶은 생각 밖에 없다. 주사실의 간호사는 인상이 선한 중년의 여자다. 나는 그녀를 기억하지만 많은 환자들 중에 날 기억하는 건 쉽지 않을 터였다. 그녀는 주사를 잘 놓고 잘 뺀다. 반창고를 붙이는 손길이 섬세하다. 혈관통이 있지만 그녀에겐 내 몸 어디든 주삿바늘을 꽂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발 안 써도 너무 예쁘네요."
예상치 못한 말에 내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는 좋은 간호사였다. 주사를 잘 놓고 섬세하고 심지어 환자까지 잘 기억하는. 남을 조용히 응원하고 위로하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주로 위로받는 입장에서 위로의 말을 논평한다 하면 배은망덕하지만, 암에 걸린 이후 내가 들은 최악의 위로는 이런 것이었다.
"아이고 결혼도 안 했는데 몸이 그래서 어째. 부모님이 너무 속상하시겠다." -직장 상사
"아이 낳아 길러보니 부모 마음 알겠더라. 너 아팠을 때도 부모님 마음이 어떠셨겠어." -최근 둘째 낳은 친구
"이 고통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신실한 종교인인 친구
"어떻게 그런 일이 있어. 세상에. 너무 고생했다." -직장동료
그들의 위로에서는 마치 자기 삶에는 일어날 일 없는 특별한 사건을 보듯 내게 닥친 일을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들은 나를 위로하고 있지만 나를 보지 못한다. 이미 인생에서 봄은 지난 시기인 것처럼, 떨어진 벚꽃잎처럼 처량하고 쓸쓸하게 나를 감상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는 선한 것이기에 나는 연락 오는 지인들에게 매번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다. 정작 진짜 위로를 해준 간호사에겐 당황해 애매하게 웃고 말았지만.
몇 년 전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가 내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연락을 해왔다. 집 근처에서 만나자고 해서 나갔더니 환하게 웃는 미소와 함께 축하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치료가 끝난 축하라는 것이었다. 한동안 그 꽃다발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고 주기적으로 연락을 나눈 사이도 아니었는데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연락을 해 준 것도, 그 방식이 꽃인 것도 고마웠다.
나는 어떤 위로를 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도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 주로 숨는다. 위로가 동정처럼 느껴질까 봐 몇 번을 고민하다 아예 아무 말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전해지지 않은 마음보다 안 좋은 건 전달이 잘못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하기를 포기하곤 하는 것이다.
병원에 갔다 온 후, 지쳐서 그냥 눕고 싶지만 1인 가구로서 나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이 있으니 또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양배추를 찜기에 넣고 된장을 물에 풀면서, 나도 다정하고 섬세한 위로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