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문제
속보 ‘바이러스에 감염된 일가족 발견. 격리 후 반경 3km 거주자 몰살 처분.’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말이 되는 상황일까? 그런데 이런 일은 실제로 벌어진다. 바로 가축 농장에서 말이다.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이런 일이 스스럼없이 벌어진다. 지역 관공서에서 일을 잠시 할 때 우연한 기회로 그곳에 지원을 나간 적이 있는데 정말 말이 안 나왔다. 처참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포크레인으로 큼지막한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비닐을 씌우고, 그 위에 정말 멀쩡해 보이는, 실제로 멀쩡한 소나 닭, 돼지가 무더기로 던져진다. 그리고 그 위에 그냥 흙을 뿌려서 생매장한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단번에 몰살시키는 이유는 가축은 국소적 생물다양성이 완전히 결여된 채 맛 좋은 종끼리만 교배시켰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처분하지 않는다면 바이러스에 대응하지 못할 가축들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같은 종이지만, 가축처럼 대를 이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어떠한 감염성 질병에 걸린다고 가족 구성원 전원이 걸리는 일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걸 알기 때문에 심각한 경우 격리를 할 뿐이지 가축처럼 몰살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 존엄성 문제는 제외하고 생각하자) 만약 인간도 가축과 비슷한 방식으로 대를 잇는다면 아마 큰 비극이 벌어질 것이다. (근친혼이 위험한 이유는 이와 같다. 함부르크 왕가의 근친혼 문제가 낳은 비극은 이미 유명하다) 한 생태계에 우세종(단일 종) 또는 다양성이 결여된 소수 종만 남는다면 그 생태계는 위험하다. 이처럼 생물 다양성 문제는 여러모로 중요하다. 그런데 기후 위기로 인해 생물 다양성이 점점 줄어든다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3장에서 대지와 해양에서 일어나는 이상 기상으로 인한 피해들을 간략히 소개했다. 하지만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는 이런 물리적 피해에 그치지 않는다. 지구 평균 기온이 오르면 각 지역에서 서식하는 모든 생물이 영향을 받고 생태계가 변한다.
최근 기사를 보니 요즘 사과 값이 정말 금값이 됐다는 게 실감 난다. 10kg에 9만 원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본가가 경북이라 제 작년까지만 해도 시장에 가면 10개에 1만 원 정도 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다. (물론 유통 과정에서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소리도 있지만, 실제로 사과 수확량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사과뿐만이 아니다 다른 채소나 과일의 가격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은 그리 기이한 일이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 동해안 수온이 올라가서 오징어 유생(유체) 생존율이 떨어지면서 북상한 탓에 오징어가 잡히지 않은지는 오래됐고, 그 빈자리를 다른 열대어들이 차지하고 있은 지 오래다.
우리나라의 농작물을 보면 적게는 50km. 많게는 200km까지 북상했다. 제주도에서 주로 기르던 한라봉은 나주, 정읍에서 키우고 이미 10년 전부터 충주에서 키웠다. 반면 동남아에서 주로 기르던 열대 과일인 망고, 용과, 바나나가 제주에서 수확된다. 영주, 충주에서 주로 기르던 사과는 이제 강원도 지역에서 제배가 가능해졌다고 한다. 작년에는 남쪽 지역(제주도)부터 피기 시작해서 북쪽 지역(서울)으로 서서히 피어야 할 벚꽃이 지역과 관계없이 거의 동시에 피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것과 비슷한 경우는 너무 많다. 그냥 딱 잘라 말해서 첫 문장처럼 됐다고 보면 된다. 한반도의 평균 기온이 올랐고, 남쪽에서 기르던 많은 작물이 북상했다. 이유는 당연히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이다.
해양도 비슷하다. 제주에서 유명한 생선 중 하나가 바로 방어다. 겨울철에 특히 유행하는 방어는 날이 추워지면 지방이 더 올라서 맛있어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방어가 남해를 거쳐 동해에서도 잡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키나와나 동남아 섬 지역에서 서식하던 열대어들이 제주도로 올라왔다. 그래서 해외로 프리 다이빙이나 스킨스쿠버를 나가던 사람들이 제주로 많이 간다고 한다. (한 가지 사설을 덧붙여보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물고기들이 화상을 입기도 한다) 결론은 땅에서든 바다에서든 관계없이 많은 생물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서식지를 옮겨 이주했다는 것이다. (번외로 해양 산성화도 큰 문제다. 해양 산성화는 말 그대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녹아들어 바닷물이 산성화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해양 생물의 호흡, 에너지 작용, 생리 현상에 악영향을 끼치고, 생태계가 무너져 수산업에 직격탄을 입힌다. 특히 조개류의 껍데기, 물고기 뼈 등의 형성 과정에 치명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해양 생물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생물은 좋든 나쁘든 이로 파생된 영향을 받게 된다.)
육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빙하 면적이 좁아져서 북극곰과 남극 펭귄이 살 곳을 잃고,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 처지가 된다는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들었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또 영구동토층이 녹아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있고, 땅속에 박혀있는 고대 바이러스들이 잠에서 깨어나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땅속에 매장된 메탄가스가 분출되면 당연히 탄소 농도는 올라가고 기온 상승이 가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박쥐 서식지가 이동, 확장되면서 박쥐에 잠재된 바이러스가 앞으로 더욱 위협적일 거라는 이야기도 앞서했다. 네이처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전 세계 양서류 중 41%가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주로 농업으로 인한 서식지 손실이 영향에 미치고 있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서식지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양서류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종의 멸종 수순을 보면 희귀 종들이 먼저 사라진다는 점이다. 즉 생태계 극단에 살고 있는 다양한 종들 먼저 사라진다는 말이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생물 다양성이 파괴된다는 것이다. 점점 더 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 폭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최재천 교수님의 말씀을 옮겨 보려 한다. 지구 평균 온도가 2도 이상 올라가면 생물 다양성의 절반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보이고, 그렇게 되면 인류는 당연히 멸종할 것이라고 96%에 달하는 생물학자들이 투표했다고 한다. 또 식물은 꽃가루받이가 필요한 작물이 대부분인데 꿀벌이 80%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기후 변화로 꿀벌이 많이 줄거나 사라지면 작물을 경작할 방법이 거의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식량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 당연하기에 몹시 우려된다고 했다.
인간이야 뭐 주로 닭, 돼지, 소를 먹고 사니 그게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착각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구는 하나의 생태계다. 결코 생태계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내 발가락에 있는 미토콘드리아와 내 귀에 있는 상피 세포는 일생 동안 결단코 만날 수도 없고, 서로 직접적인 교류를 해서 영향을 주고받는 일이 없다. 그런데 운이 나쁘게도 녹슨 쇠에 귀가 상처를 입어서 파상풍균에 감염됐다고 해보자. 그런데 또 운이 나쁘게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아 상황이 심각해져서 죽을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결국 발가락에 있던 미토콘드리아도 자신의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에 열대 과일이 열리고, 열대어가 살게 되니 동남아를 가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며 좋다고 하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간간이 보게 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기후보다 동남아 기후가 살기 좋은 기후라고 할 수 있을까. 기후 변화와 기후 위기를 이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게 아니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의 기후 위기는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하고 받아들일 문제가 결단코 아니다.
생물 다양성이 확보된다는 것은 한편으로 수많은 외부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장벽이 겹겹이 쌓여있다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런 장벽이 하나둘씩 무너지면 당연하게도 상대적으로 작은 자극에 침범당하고 큰 피해를 당할 수 있다. 그러다 한순간에 무너지고 끝을 보는 것이다. 사실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만 한다는 소리는 인간을 위한 소리다. 객관적으로 보면 기후 위기로 인해 치명상을 입는 종도 많지만, 그 덕에 한 생태계에서 우세종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인간은 두뇌가 발달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현재 최상위 포식자다. 돌멩이를 깎아 쓰는 수준이었던 호모 사피엔스가 이제는 가상 세계를 만들어서 현실에 없는 또 하나의 세계를 향유한다. 인간의 편의와 생존에 유리한 수많은 도구를 만드는 동안 인간의 육체는 나약해졌다. 불편함과 불쾌함을 극도로 싫어하고 심지어 불평한다. 인간은 지구, 자연 속에서 진화해 왔고, 지능도 결국 자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근원인 자연에 맞춰 진화해 왔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똑똑해졌지만, 나약해지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기후 위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말이다. 지구는 무관심하다. 다른 수많은 종은 결국 변화한 환경에 적응할 것이다. 우세종이었던 공룡이 사라지고, 그보다 작은 포유류가 번성한 것처럼 말이다. 그럼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될까. 좀 전에 기후 위기를 단편적으로 보면 안 된다고 했는데, 사실 단편적(지구 생태계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즉 인간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거다. 참 아이러니다. 기후 위기가 어디 이름도 알 수 없는 섬 몇 개에만 국한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고, 몇 개의 종이 멸종하는 수준에 그치는 일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결단코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