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샤
우리는 모두 자유를 원한다. 하지만 그 자유란 무엇을 의미할까? 누군가는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상태를 자유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유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가 철학에서 말하는 자유, 곧 묵샤(Moksha)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묵샤는 단순한 해방이 아니라, 내면의 구속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Ātman)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요가 수행의 최종 단계로 흔히 사마디(Samādhi)를 떠올린다. 사마디는 명상의 절정이자, 수행자가 깊은 몰입 속에서 ‘이원성(dualism)’을 초월하는 상태를 뜻한다. 요가수트라에 따르면, 사마디는 마음이 완전히 고요해지고 감각과 생각의 작용이 멈춘 상태로, 궁극적으로는 초월적 의식(pure consciousness)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사마디는 어디까지나 해탈에 이르는 문 앞이라고 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사마디는 깊은 명상 속에서 진리의 문턱까지 다가가는 경험이며, 그 문을 진정으로 통과해야 비로소 완전한 자유, 즉 묵샤(Moksha)에 이른다.
묵샤는 사마디와 달리,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다. 단지 명상 중에만 체험되는 깊은 몰입의 상태를 넘어서, 삶 전체가 자유로워지는 변화를 의미한다. 집착이나 욕망, 두려움과 같은 내면의 구속에서 벗어나, 더 이상 바깥의 조건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 즉, 윤회의 고리를 벗어나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한 자아를 깨닫는 영원한 해탈의 상태가 묵샤이다.
산스크리트어로 ‘해방’ 혹은 ‘자유’를 뜻하는 묵샤(Moksha)는, 단순히 신체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차원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는 것을 말한다.
이 개념은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각각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인간이 무지와 집착, 윤회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에 이르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묵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무엇에 얽매여 있는지를 자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집착의 사슬 속에 살아간다.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 실패에 대한 두려움,
• 과거에 대한 미련,
• 미래에 대한 불안,
• 사랑받고 싶고, 버림받기 싫은 감정…
이 모든 것이 마음속에 끊임없이 얽히고설키며, 우리를 불안정한 상태에 머물게 한다. 우리는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면 괴로워하고, 얻고 나서도 더 많은 것을 원하며 다시 불안을 느낀다. 그리하여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고, 고통은 또 다른 고통을 부른다.
요가 철학은 이러한 고통의 근원을 ‘아비디야(Avidyā)’, 즉 무지(無知)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자신을 몸, 감정, 생각으로 착각하고 그 안에 동일시하기 때문에, 변화하는 현상에 휘둘리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요가의 물음은 늘 이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는 몸이 아니다. 감정도 아니다. 생각조차도 아니다. 몸은 늙고, 감정은 변하고, 생각은 흐르지만,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변하지 않는 순수한 의식(Puruṣa)—만이 진짜 나라는 것이다.
묵샤는 이 진실을 머리로 아는 것을 넘어서, 온전히 체험하고 살아내는 것이다. 내가 나라고 믿어왔던 모든 이미지, 역할, 기대, 감정을 허상으로 인식하고, 그것을 하나씩 놓아보는 과정. 그리고 그 허상을 모두 내려놓았을 때, 남는 것은 고요하고 평온한 본래의 나이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삶의 조건에 매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묵샤란, 그 온전한 자유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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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연스럽게 묻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묵샤에 다가갈 수 있을까? 누구나 이 자유를 원하지만, 그 길은 누구에게나 같지 않다. 그래서 고대 요가 철학은 각자의 성향과 삶의 방식에 따라 네 가지 다른 해방의 길을 제시했다. 이제, 그 길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묵샤로 가는 실제적 여정을 이어가 보자.
묵샤는 단지 깨달음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 전체를 통해 실천하고 걸어가는 과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고대 인도 철학자들은 이 자유에 이르는 길이 하나의 방식만으로 제한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사람마다 기질도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기 때문에, 바가바드 기타를 비롯해 묵샤를 향해 가는 네 가지 주요한 길(요가)이 제시되었다. 이들은 각각 고유한 방법을 지니고 있지만, 모두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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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길 – 갸나 요가(Jñāna Yoga)
갸나 요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무지(Avidyā)를 걷어내고 참된 자아(Ātman)를 깨닫는 길이다. 지식과 이성, 내면의 관찰을 통해 자신을 탐구하며, 점점 더 겉모습에서 벗어나 본질에 다가선다. 단순히 철학적인 개념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식이 통찰로 전환되어 삶의 방식까지 바뀌는 것이 이 길의 핵심이다.
갸나 요가 수행자는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몸인가?
나는 감정인가?
나는 생각인가?
이러한 질문은 궁극적으로 모든 동일시의 껍질을 벗기고, 순수한 의식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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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의 길 – 박띠 요가(Bhakti Yoga)
박띠 요가는 ‘신에 대한 사랑’으로 자아를 녹여내는 길이다. 이 길은 이론적 탐구보다는 전적인 헌신과 사랑, 신뢰를 통해 자아의 경계를 허무는 길이다. 신이 꼭 특정 종교의 신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존재의 근원, 우주, 자연, 또는 삶 자체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자신의 개인적 자아를 초월하는 더 큰 대상에 마음을 열고 맡기는 것이다.
기도, 찬트(Mantra), 의식 수행 등을 통해 수행자는 점차 ‘나’라는 경계에서 벗어나, 사랑이라는 매개로 통합된 존재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 사랑은 점점 조건 없는 사랑, 이타적인 사랑, 존재 전체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며, 그 자체로 해방의 문을 연다.
자신의 모든 행동을 신에게 받치는 마음으로, 완전한 헌신의 마음으로 행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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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길 – 카르마 요가(Karma Yoga)
카르마 요가는 행동을 통한 자아 초월을 추구한다. 핵심은 결과에 대한 집착 없이 행위 그 자체에 몰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결과를 기대하며 움직인다. 칭찬받고 싶고, 보상받고 싶고, 실패를 두려워한다. 이런 집착은 고통을 만든다. 카르마 요가는 묻는다.
“그 일이 옳은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행동을 통해 에고를 서서히 내려놓는 길이다.
이타적 행위, 봉사, 직업적 책임을 수행하면서도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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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길 – 라자 요가(Rāja Yoga)
라자 요가는 요가수트라에서 제시된 아쉬탕가 요가(8지 요가)를 기반으로 하는 수행 체계다. 야마(Yama), 니야마(Niyama)에서 시작해 아사나(Asana), 프라나야마(Pranayama), 프라티야하라(Pratyāhāra), 다라나(Dhāraṇā), 디야나(Dhyāna), 그리고 사마디(Samādhi)에 이르는 단계적 수련을 통해, 마음의 작용을 정화하고 고요하게 만든다.
명상의 길은 집중과 관찰을 통해 ‘생각 너머’의 나를 만나는 방식이다. 규칙적인 명상 수행은 마음속 불안과 혼란을 잠재우고, 더 큰 존재와의 연결을 일상 속에서 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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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네 가지 길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모두 ‘나’라는 경계를 넘어서 참된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실천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의 흐름에 맞는 길을 선택할 수 있으며, 때로는 이 네 길이 자연스럽게 겹쳐지고 교차되기도 한다.
묵샤로 가는 여정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자신에게 솔직하고 의식적인 발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 바로 자유로 향하는 시작이다.
오늘날 우리는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자유는 종종 겉모습에 불과하다. 우리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많은 것에 얽매여 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게 기대고,
성과에 의존하며,
비교에 휘둘리고,
미래에 불안해하며 오늘을 놓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묵샤는 더 이상 먼 종교적 이상향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절실한 실천일 수 있다. 묵샤는 언제나 거대한 철학이 아니라, 아주 작은 순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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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한 걸음 물러나기
하루에도 수십 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 완벽한 일상, 완벽한 외모, 빛나는 여행, 반짝이는 웃음. 스크롤을 넘길수록 우리는 더 초조해지고, 어느 순간, 나의 삶이 무언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편집된 삶의 일면일 뿐이다. 필터와 각도, 선택된 순간들이 전부인 가상의 무대에서
우리는 실제보다 훨씬 더 외로워지고, 훨씬 더 ‘덜 가치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완전한 차단이 아니라, 의식적인 거리 두기이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타인의 삶이 아닌 나의 숨결과 나의 감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나의 오늘은 어떤 색이었는지, 어떤 감정이 스쳐갔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어떤 공간에 앉아 있는지를 바라보는 것. 그 짧은 ‘멈춤’이 하나의 속박을 끊고, 자기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통로가 되어줄 수 있다.
오늘의 질문
• 오늘 하루, 내 손이 몇 번이나 SNS를 향했는가?
• 지금 이 순간, 나는 나의 삶에 충분히 머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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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이상의 소유 줄이기
현대 사회는 더 많이 가질수록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더 큰 집, 더 빠른 차, 더 새로운 기기, 더 많은 옷…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와 불안 역시 함께 커진다.
요가는 말한다. 진짜 풍요는 덜어내는 데 있다. 더 가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정말 필요한지를 분별하는 데서 자유가 시작된다.
‘있으면 좋을 것’과 ‘정말 필요한 것’을 구분해 보자.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기 전에 한 번 더 묻자. “이게 없으면 나는 부족한 사람일까?” “이건 나의 삶에 진짜 기쁨을 줄까, 아니면 잠깐의 위안일까?”
물건을 덜어내면 공간이 생기고, 공간이 생기면 시선이 바뀌고, 시선이 바뀌면 삶의 중심이 외부에서 내부로 옮겨간다. 그 변화의 축이야말로, 아파리그라하(무소유)의 실천이자 묵샤로 향하는 하나의 길이다.
오늘의 질문
• 지금 당장 떠나보낼 수 있는 ‘불필요한 하나’는 무엇인가?
• 나는 어떤 감정이나 관계를 쥐고 있는가? 그건 여전히 나에게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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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통한 자기 관찰
묵샤는 고요한 산속에서의 명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심 속 소음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여전히 해방의 문을 열 수 있다.
매일 단 몇 분이라도 조용히 앉아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그 시간 동안 우리는 ‘해야 할 일’에서 벗어나, ‘존재하고 있는 나’ 자체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된다.
감정은 구름처럼 흘러가고, 생각은 끊임없이 생겨난다.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 감정이나 생각이 ‘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불안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손님이고,
분노는 잠시 들렀다 가는 바람일 뿐이고,
자책은 오래된 패턴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걸 지켜보는 ‘관찰자 의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 우리는 점점 더 고요한 중심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나는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바라보는 존재다.’ 그 깨달음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해방의 길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질문
• 지금 내 안에는 어떤 감정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는가?
• 그 감정은 내가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일까, 붙들고 있어야 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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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샤는 먼 철학이 아니다
우리는 늘 ‘해탈’이라는 단어 앞에서 주춤하게 된다. 하지만 묵샤는 언젠가 거창하게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의 작고 구체적인 실천일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물러서기,
물건 하나 덜어내기,
오늘의 감정을 놓아주기.
이 작은 실천들이 쌓일수록
우리 마음은 가벼워지고,
시야는 넓어지고,
삶의 중심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으로 옮겨온다.
묵샤는 바로 그곳에 있다.
불필요한 것을 놓는 그 순간,
비로소 지금 이 순간에 나를 두는 그 자각 속에서.
삶은 끊임없는 속박과 해방의 반복이다. 우리는 때로는 집착하고, 때로는 내려놓고, 다시 집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다. 묵샤는 언젠가 도달해야 할 목표라기보다, 매 순간 의식적으로 살아가며 집착을 내려놓는 하나의 태도이다.
묵샤를 향해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불필요한 생각을 하나 내려놓는 것, 집착을 하나 놓아보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보는 것.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 우리는 이미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요가수트라의 한 구절을 떠올려 본다.
비로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자는, 영원한 평온 속에서 존재한다.
묵샤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집착을 내려놓기로 결정하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