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 2-3
카페 창가.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창문 밖으론 이른 오후의 햇살이 깔려 있었다.
나는 손바닥만 한 노트를 펼쳐 들고,
빈 페이지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펜을 들었다.
글을 쓰려던 건 아니었다.
오늘은 어쩐지,
침전하듯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순간,
오래 전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수업 시간, 그녀는 내 옆자리에 앉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우연처럼 보였지만, 자리를 고르던 그녀의 동선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은
내 노트에 적은 문장을
그녀가 힐끔 보는 걸 느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나는 옆에서 시선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돌렸고,
나는 괜히 노트 옆에 선을 한번 그었다.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이 이상하게 마음에 오래 남았다.
⸻
쉬는 시간이면
그녀는 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와 난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 사이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투명한 벽 같은 것이 있기도 한 것 같았다.
한 번은,
옆자리에 앉은 그녀에게
“이 수업 자료 어디서 받았어요?”라고 물어볼 뻔했다.
입술이 열릴 듯 말 듯하다가,
그 말은 결국 마음속에서 미끄러져 사라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한마디조차
당시의 나에겐 너무 큰 용기였던 것 같다.
⸻
그녀는 늘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그 풍경에서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몇 번쯤 말을 걸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 마음은 항상
‘괜찮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쉽게 접혀버렸다.
어쩌면 나는
말을 거는 것보다
그녀가 내 시선 안에 있어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때의 나는,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참 바보 같지만 말이다.
⸻
지금 생각하면,
그 감정은 ‘짝사랑’이라 부르기에도
조금은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어떤 사람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
유난히 마음이 흔들리는 상태.
그 사람의 웃음소리에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귀 기울이게 되는 마음.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했고,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너무 멀었지만
분명히,
그녀가 있는 공간에서는
내 마음의 결이 미세하게 달라졌었다.
그건 설명할 수 없지만
부정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
나는 여전히 카페에 앉아 있었다.
펜 끝에 감정이 쌓였지만,
단어로 옮기기는 쉽지 않았다.
‘그때,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사랑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보다 더 오래
내 안에 남아 있는 감정이기도 했다.
그 마음은 결국
그녀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어떤 감정은
전해지지 않아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머문다.
나는 그 사실을
그녀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